매경이코노미명순영입력2016.05.04. 17:36
일본인의 비참한 노후를 다룬 서적 ‘노후파산(老後破産)’은 한국 사회에도 큰 파장을 던졌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는 “한국은 노후파산을 넘어 노후지옥에 이를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내놓는다. 그도 그럴 것이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빨라 2050년이면 전체 인구 중 노인 비율이 세계에서 2번째로 높아진다. 반면 노인빈곤율은 2015년 기준 OECD 국가 내 세계 최고다.
암울한 미래를 예상하는 통계가 많지만 노후파산, 노후지옥을 막을 방법이 있다. 다양한 연금으로 보호막을 치는 것이다. 과거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으로 3개의 주머니를 차야 한다는 조언이 대세였다. 최근 정부가 주택연금을 확대하며 노후 대비 연금이 4층 구조로 늘어났다. 은퇴 전문가들은 “연령 구분 없이 노후라는 단어를 항상 머릿속에 넣어두고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민·퇴직연금으로 생활비 충당
개인·주택연금 덕에 취미생활까지
생쥐 한 마리가 지난해 세계 의학계 관심을 모았다. 미국 텍사스대 건강과학센터에는 3년 이상 살고 있는 쥐가 있다. 사람으로 치면 100살이 넘는다. 일반 쥐의 평균수명은 2년이 조금 넘고 가장 오래 생존했던 쥐도 3년을 넘기지 못했다. 이 쥐는 노화 억제 기능이 있는 약을 먹어 약 4년 정도 살 것으로 예상된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 쥐에 대한 연구 결과를 근거로 인간의 평균 기대수명이 142세까지 연장될 수 있다는 추론을 내놨다.
오래 살겠다는 인간의 소망은 빠르게 현실로 다가왔다. 100세 장수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얘기도 아니다. 쥐에 적용한 노화 억제약이 인간에게 통한다면 인간 수명은 100세를 훌쩍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수명 연장이 기쁜 일만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하다. 은퇴 이후 소득 없는 기간이 길어져 가난하고 아프고 힘겹게 말년을 보낼 가능성 역시 높아졌다.
특히 은퇴를 앞둔 베이비붐 세대(1946~1965년생) 고민은 더 깊다. 베이비부머 바로 앞 세대는 퇴직금을 노후생활 자금으로 썼다. 은행에 예치해두고 매달 이자를 받아도 충분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금리가 10%를 넘나들었기 때문이다. 1억원을 맡기면 연간 이자가 1000만원에 달했다. 적극적인 투자성향을 가진 이들은 주식을 샀다. 주가가 한창 오를 때라 연 수십% 이익도 냈다.
이런 시대에 연금은 절실하지 않았다. 은행 예적금이 됐든, 주식 투자가 됐든 노후 자금을 마련할 수단이 적지 않았다.
지금은 판이 바뀌었다. 은행 금리는 1%대다. 경제 불황이 이어진다면 제로금리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예적금으로 노후 대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목돈을 마련해도 불안하긴 매한가지다. 목돈을 그냥 은행에 넣어두고 꺼내 쓰면 원금이 줄어 30년을 지탱하기는 무리다.
은퇴 전문가들은 노후를 버티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다층(多層) 연금을 마련해두라고 조언한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주택연금의 4층 구조다.
국민연금은 공적연금으로 회사원과 개인사업자 모두 가입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만 18세 이상 60세 미만 국민이 의무가입 대상이다. 국민연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임의가입이 그중 하나다. 예를 들어 의무가입자가 아닌 전업주부도 임의가입으로 국민연금을 가입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물가 상승률을 반영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적연금보다 낫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고갈 논란이 있지만 정부가 보증하는 연금이라는 점에서 안전판도 확실한 편이다. 실제 임의가입자가 크게 늘었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올 1월 말 기준 임의가입자는 25만명을 육박한다. 1988년 국민연금제도 시행 후 사상 최대치다. 성별로는 여자가 20만명이 넘어 남자(3만8000여명)를 압도했다. 임의가입자 상당수가 전업주부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국민연금만 믿어서는 안 된다. 일반 직장인의 경우 평균 가입 기간이 25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25~30%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에 덧붙여야 할 필수 연금이 퇴직연금이다. 2012년 7월부터 확정급여형(DB) 제도와 확정기여형(DC) 제도에 가입한 근로자들은 퇴직 때 개인형 퇴직연금(IRP) 계좌를 통해 퇴직금을 받도록 제도화됐다.
IRP를 통해 퇴직금을 계속 쌓아나가라는 취지다. 그런데 취지가 무색하게 근로자 대부분 IRP로 퇴직금을 받고 바로 해지한다. 당연히 IRP로 연금을 수령하는 가입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많은 근로자가 중간 정산이나 잦은 이직으로 긴 노후 동안 쓸 퇴직금을 충분히 모아두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IRP를 활용하면 이직 때 수령한 퇴직금을 적립해 노후에 활용할 수 있고 세제 혜택도 받을 수 있다. 퇴직금이 IRP에서 현금으로 인출될 때까지 퇴직소득세(6.6~41.8%)를 과세하지 않는다. 또 퇴직금을 일시금이 아닌 연금으로 수령하는 경우 퇴직소득세를 30% 감면해준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은 “퇴직연금만큼은 은퇴 자산으로 모아두고 절대 중도에 찾지 말아야 한다”며 “일시금보다 연금으로 찾을 때 안정적으로 노후 소득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영업을 하는 개인사업자는 퇴직금이 없다. 대신 노란우산공제를 들면 된다. 노란우산공제는 별도의 퇴직금이 없어 노후가 불안한 소기업·소상공인들의 생활 안정과 사업 재기 목적의 자금 지원을 위해 중기중앙회가 운영한다. 공제금에 대한 압류 금지와 연간 최대 300만원의 소득공제 혜택으로 인기가 높다.
윤택한 노후를 원한다면 개인연금 가입도 필수다. 개인연금은 판매처에 따라 연금저축신탁(은행), 연금저축보험(생·손보사), 연금저축펀드(자산운용사)로 나뉜다. 연금저축신탁과 연금저축보험은 원금이 보장되지만 수익률이 낮다. 연금저축펀드는 원금은 보장되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을 수 있다.
과거 노후연금으로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3가지 ‘주머니’면 충분했다. 최근 한 가지가 더 늘었다. 주택연금이다.
정부가 주택연금을 확대 적용하며 노후 대비 연금으로 각광받는 분위기다. 부동산 전망이 어두운 것과 내 집이 있는 건 다른 차원의 얘기다. 주택연금은 만 60세 이상 고령자가 소유하고 있는 주택(9억원 이하)을 담보로 맡기고 평생 혹은 일정 기간 매월 연금 방식으로 노후생활 자금을 수령하는 국가 보증 상품이다. 국가가 연금을 지급보증하기 때문에 평생 자신의 집에서 거주하며 일정하게 안정적으로 노후생활비를 지급받을 수 있다. 주택연금 계약 만료 후 남은 주택 가치에 대해서는 자녀에게 상속된다. 최근 금융당국은 기존 주택연금의 가입 문턱을 낮춘 ‘내집연금 3종 세트’도 선보였다. 9억원이 넘는 주택을 보유해도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있도록 문호를 열었다.
이윤학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은 “주택연금은 3층 구조(국민+퇴직+개인연금)로 구성돼 있던 기존 연금제도를 4층 구조로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제도”라며 “내집연금 3종 세트 출시는 노후 대비를 위한 신의 한 수”라고 평가했다.
사족 하나 더. 4층 연금을 넘어선 5층 연금이 있다. 계속 일을 해 ‘월급’을 받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년 60세를 의무화해 2016년 시행을 앞두고 있으나, 실제 기업에서 퇴직하는 연령은 평균 55세에 불과하다. 은퇴 후 월 100만원씩 벌 수 있는 일을 계속하면 지금처럼 1년 만기 정기예금이 연 1%대 초반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수억원의 자금을 굴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다.
또 국민연금 수령 시기를 미룰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국민연금 수령 시기를 늦추면 늦출수록 월 수령액은 크게 증가한다.
최성환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은 “오래 일하고 빨리 시작하고 맞벌이하는 LED(Long work·Early start·Double income) 전략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금융사 내세운 수익률 따져봐야
사업비 떼내면 원금 회복 먼 길
연금 상품에 가입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많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한꺼번에 많은 돈을 내면 중도 해지 가능성이 높다. 자발적으로 가입하는 개인연금은 중도 해지하거나 목돈으로 찾으면 기타소득세(16.5%)를 내야 한다. 몇 년 이내에 써야 하는 자금은 넣지 않는 게 낫다. 개인연금을 절세 상품이 아닌 노후 자금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다.
높은 수익률을 준다는 상품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 김 모 씨는 20년 전 연 2000만원 가까이 받을 수 있다는 상품에 가입해 매달 24만원씩 15년을 납입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나 연금보험을 수령해보니 연 541만원에 불과했다. 한 달에 50만원도 안 됐다. 알고 보니 보험사가 내세운 확정금리 7.5%는 지급액이 확정된 기본금에만 적용됐다. 보험사가 수익에 따라 배당하는 배당연금은 회사가 제시한 예상치와 달리 금리가 턱없이 낮았다. 보험사들이 작은 글씨로 가입설계서에 배당연금은 변동될 수 있다고 써놔 법적으로 맞설 방법도 없었다.
변액연금도 조심해야 한다. 변액연금 상품은 사업비가 평균 11%다. 가입자가 100만원을 납입하면 보험사가 11만원을 회사 운영비로 먼저 떼어가고, 나머지 89만원만 적립된다. 이 89만원을 펀드에 투자해 12% 이상 수익을 내야 겨우 원금이 회복된다. 저금리 시대에 꾸준히 수익을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 지난해 모든 변액연금 상품은 평균 10% 손해를 봤다. 보험사는 사업비를 뺀 적립금만으로 수익률을 계산해 적립금 89만원이 98만원이 되면 10% 고수익이라고 발표하지만 사실상 원금을 까먹은 셈이다.
[특별취재팀 : 명순영(팀장)·박수호·류지민·서은내 기자 / 사진 : 류준희·윤관식 기자 / 그래픽 : 신기철]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56호 (2016.05.04~05.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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