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데이트족 '북적', 공방 밀집한 사이길이 신흥 상권으로
한경비즈니스입력2015.10.15. 09:17
서래마을은 국내 최고가 고급 빌라들이 곳곳에 들어선 부촌이다. 국내 톱스타들을 비롯해 전문직 종사자들이 주로 거주한다. ‘서울 속 프랑스 마을’이라는 색채가 강해 외국계 회사 임원들과 외교관들도 다수 거주하고 있다. 이 서래마을을 가운데 끼고 있는 ‘서래로’와 ‘사이길’ 상권은 모두 이 지역 주민들이 손쉽게 들를 수 있는 골목 상권에서 출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재는 각자의 색깔이 뚜렷해지며 점차 다른 영역으로 확장해 가고 있는 중이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강여름. 이지연 인턴기자
서래로 상권 "객단가 10만원 이상 '고급 레스토랑' 격전지"
서울 반포대교 남단의 사평로를 지나다 보면 잠원초 입구에서부터 시작해 방배중까지 이어진 그리 넓지 않은 폭의 길 하나를 만날 수 있다. 서래마을의 고급 빌라촌으로 향하는 이 길이 ‘서래로’다. 이곳이 바로 서울 시내 카페거리 중 가장 오랜 상권으로 꼽히는 서래마을 카페거리다.
상권 형성 초기인 200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이곳엔 고급 주거지역에 거주하는 고소득 수요층과 프랑스학교를 기반으로 한 외국인들을 타깃으로 한 이국적이고 독특한 외형의 카페·레스토랑·음식점·주점 등이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현재 이곳은 ‘카페거리’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다. 메인 입지라고 할 수 있는 서래로 주변에는 132㎡(40평)에서 165㎡(50평)대를 넘어서는 대형 매장에 스타벅스와 같은 프랜차이즈 커피숍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서래로 주변 메인 도로에서 밀려난 개인 레스토랑들과 커피숍들은 서래로 5~8길과 사평대로 22, 26길 등 이면에 자리한 골목으로 하나둘 자리를 옮기는 추세다. 안민석 FR인베스트먼트 연구원은 “머지않아 대로변에서 3~4블록 들어간 곳까지 상권이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기존 노후화된 주택을 허물고 뛰어난 외관을 가진 상가 주택으로 신축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택가와 상업 지역의 경계점이 점차 흐릿해지면서 상권의 반경이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곳은 자동차가 없으면 불편한 상권에 속한다. 더구나 인근에 고속버스터미널이라는 메가 상권이 자리 잡고 있다. 고속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넓게 뻗어있는 지하상가와 백화점 등에서 패션 상품 등 대부분의 쇼핑이 이뤄진다. 따라서 서래로를 중심으로 한 이면도로에는 주로 ‘먹고 마시고 쉴 수’ 있는 업종들이 포진해 있다.
서래마을에서 오랫동안 프렌치 레스토랑을 운영 중인 한 오너 셰프는 “서래마을 고객들은 새로운 곳이 문을 열면 호기심에 한번은 꼭 찾아가 본다”며 “하지만 한 번 가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는 발걸음을 하지 않을 정도로 까다롭다”고 말했다. 서형욱 서래부동산 대표는 “주요 소비층 자체가 경기가 나빠졌다고 해서 지갑을 닫는 이들이 아니다”며 “음식업을 하더라도 한식·중식·이탈리아 요리 같은 ‘업종’보다 셰프의 ‘브랜드’가 더 중요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객단가(1인당 평균 매입액)가 높은 고급 레스토랑이 즐비한 곳이다 보니 사실상 이곳의 임대료 또한 비싼 편이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66㎡(20평)를 기준으로 했을 때 서래로 메인 입지는 보증금 1억 원에 월세가 350만~400만 원, 이면의 골목 상권은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250만~300만 원 정도다. 권리금은 평균 1억 원 수준이다. 골목 상권의 경우 주택가를 개조한 신축 건물은 권리금이 없는 곳도 찾을 수 있다. 서 대표는 “서래마을에 유입 인구가 늘어나면서 임대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며 “최근 새로 유입되는 임차인이 많은 편이어서 임대주에게 인기 있는 상권”이라고 소개했다.
이곳에서 10년째 레스토랑을 운영 중인 C 씨는 “정통 다이닝을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 하나를 오픈하는 데 대략 10억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고객들의 취향에 맞는 인테리어와 와인 리스트를 갖추는 데만 1억 원이 넘는 비용이 소요된다. 그는 “창업비용을 낮추기 위해 2층이나 골목에 자리 잡는 곳들도 꽤 있다”며 “다만 단골손님을 확보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여유 자금을 넉넉히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서래로에서 9년째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운영 중인 J 씨는 “서래마을이 유명세를 타면서 유입 인구가 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매출의 대부분이 단골 주민에게서 발생한다”며 “대체로 주요 이용객의 70%는 거주민, 외부 유입 인구는 30%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레스토랑이 어느 정도 자리 잡은 J 씨는 한 달 평균 매출이 9000만 원에서 1억 원 정도다. 2인 테이블을 기준으로 손님이 들 때마다 대략 6만~10만 원 정도의 매출이 나올 만큼 객단가가 높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서비스나 음식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유지비가 만만치 않다. 높은 매출과 비교해 수익률이 그리 높지 않다는 얘기다. J 씨는 “셰프가 직접 일을 하면 대략 매출의 15% 정도, 일을 하지 않으면 8~10% 정도의 순익이 남는다”고 말했다.
사이길 상권 "‘사이데이 마켓‘ 열리며 화려한 변신"
길 끝에서 끝까지 300m 남짓.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40여 개의 점포가 다닥다닥 자리 잡고 있다. 편안한 차림으로 산책을 나온 마을 주민들이 드문드문 지나다니는 이 길은 그 어느 동네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골목길에 다름 아니다. 이 골목의 이름인 ‘방배42’길은 행정구역상 이곳이 실제로 ‘방배로 42길’에 자리해 있기 때문에 붙여졌다.
평범해 보이기만 하는 이 골목길의 진가는 매월 둘째 주 토요일이 돼야 알 수 있다. 이곳 상인들이 주축이 돼 마련하는 일명 ‘사이데이 마켓’, 즉 사이길 벼룩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지난 9월 12일 찾아간 방배동 사이길. 가게들 앞에 ‘소박한 규모(?)’의 판매대가 놓여 있다. 이 판매대 위에는 직접 디자인한 에코백, 액세서리부터 도자기, 향수와 같은 핸드메이드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사이길의 ‘화려한 변신’의 시작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만 해도 이곳엔 10여 개 미만의 업체가 띄엄띄엄 자리 잡고 있는 게 전부였다. 다만 보통의 주택가 상권이 세탁소나 미장원과 같은 생활 밀접형 업종이 몰려 있는 것과 비교해 이곳엔 특이하게 디자인 공방이나 갤러리 등이 밀집해 있는 것이 차이였다.
이곳에서 도자기 공방 세라워크를 운영하고 있는 이수진 사장은 “처음엔 업종의 특성 때문인지 밖에서 구경만 하는 손님들이 많았다”며 “이런 손님들을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상인들이 뜻을 모으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의기투합한 사장님들은 ‘방배사이길 아트거리 조성회’를 구성했다. 이왕이면 조금 더 재미있게 동네를 꾸려 보자는 취지에 맞게 두 가지 행사를 기획했다. 그 하나가 사이길 벼룩시장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방배동 사이길 축제다. 사이길 벼룩시장이 매달 펼쳐지는 조그만 플리마켓이라면 사이길 축제는 이보다 조금 더 큰 규모의 행사다. 2012년 첫 개최 이후 해마다 5월과 10월 두 차례씩 축제를 열었다. 축제 효과는 생각보다 컸다. 축제날이면 평소 조용하기만 하던 사이길이 멀리서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어 북적거렸다.
이 사장은 “2014년 가을 축제에는 행사 시작 이후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좁은 골목을 가득 채웠다”며 “몇몇 가게는 일평균 매출보다 3~4배 정도 높은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축제가 없다. 이 사장은 “기획 취지를 생각하면 ‘한 번의 큰 행사’를 치르는 것보다 규모가 작더라도 꾸준히 행사를 이어나가는 게 맞다는 판단”이라며 “그 대신 매월 벼룩시장에 더 중점을 두고 사이길만의 재미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이길은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상권인 만큼 최근 들어 보증금과 월세가 오르는 추세다. 하지만 서래로를 비롯한 큰 상권과 비교하면 여전히 임대료가 저렴한 편에 속한다. 2011년 처음 이곳에 인테리어 소품 가게를 연 J 씨는 “들어올 때만 해도 권리금이 없었다”며 “지금은 권리금과 월세가 많이 올라 가게를 확장하고 싶은 기존 상인들에게는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들에 확인한 결과 33㎡(10평)를 기준으로 했을 때 권리금 시세는 대략 4000만 원 정도다. 보증금은 1000만~2000만 원 사이, 임대료는 90만~100만 원 선이다. 성정숙 최보경공인중개사사무소 이사는 “사이길이 뜨면서 인근의 함지박사거리 대로변은 보증금만 억대가 넘어가는 곳도 많아졌다”며 “권리금이 비싼데도 이 지역 상가 투자 문의가 계속 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 늘어난 유동인구에 따른 매출 상승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이곳에서 커피숍을 운영 중인 L 씨는 “평일과 주말, 혹은 벼룩시장이 열리는 날의 편차가 있다”며 “유동인구가 많은 동네가 아니라 평일에는 매출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행사가 있는 날이면 일평균 매출이 2배 정도 뛰기도 한다. 이는 고객층이 다양해지기 때문이다. L 씨는 “평일에는 인근에 거주하는 40대 이상 여성이 손님의 대부분”이라며 “반면 행사가 있는 남을 20대와 30대 젊은 층은 물론 외국인들까지 고객군이 넓어진다”고 말했다.
사이길 축제를 통해 또 하나 얻은 효과는 이뿐만이 아니다. ‘온라인’ 판매가 늘어난 것이다. 이곳에서 커피숍을 운영 중인 L 씨는 “사이길에 있는 가게들은 리빙(완제품)과 핸드메이드(수제품)로 카테고리가 나눠진다”며 “온라인 판매를 적극 활용하는 곳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덕을 보기도 했다. 네이버에서 모바일을 통한 지역 상인들의 일대일 직접 판매를 기획하며 사이길이 포함된 것이다. 최근에도 디자인하우스에서 주최하는 디자인 페스티벌에 ‘사이길’이 들어가 홍보 효과를 톡톡히 봤다. 이 사장은 “이런 기회를 잘 활용해 온라인 매출 비율을 끌어올린 가게들이 적지 않다”며 “잘 알려지지 않았던 상권이지만 상인들이 노력해 축제를 통해 기회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말했다. J 씨는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단골 장사이기 때문에 보통 오후 8시에서 8시 30분 사이면 문을 닫는다”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모두 판매에 활용하는데 온라인 판매가 80%, 오프라인 판매가 20% 정도”라고 말했다.
전문가 창업 포인트 “임대료 전쟁 가능성…패션 업종 늘어날 것”
안민석 FR인베스트먼트 연구원
서래로를 중심으로 한 서래마을 카페거리가 가로수길·삼청동길 등 여타의 신흥 거리와 다른 점은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대신 객단가(1인당 평균 매입액)가 높다는 점이다. 이곳의 평균 영업 유지 기간은 최근 점차 짧아져 평균 2.7년 안팎을 보이고 있다. 빌딩 거래 횟수는 여전히 많지 않아 서울 시내 평균보다 적은 편이다. 향후 서래마을 카페거리는 점차 개성보다 업종 차별화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 임대료 수준을 따라잡기 위해 의류를 비롯한 패션 관련 업종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며 이동통신 복합 매장이나 대형 외국계 브랜드의 입점도 예상된다.
서울 시내 거리들 대부분이 카페와 음식점 혹은 의류 브랜드 위주로 고착화되는 가운데 소박하고 한적한 예술거리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사이길 점주들은 다양한 축제 등을 열며 안간힘을 쏟고 있다. 입지적으로는 지하철 내방역과 가깝고 이수지하차도 남단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찾아올 수 있는 좋은 여건이다. 배후에 중고소득층이 거주하고 있어 2~3년 내에 또 하나의 명소로 이름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일대 상권은 또 한 번 임대료 전쟁에 휩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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