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국제관계 정책 기조 ; 이경촉정(以經促政) (퍼옴)
KOTRA 중국사업단의 글을 올려놓은 까페에서 퍼온 글입니다. 중국을 이해하는데 좋은 내용이 많은 듯
합니다.
중국의 국제관계 정책기조는 ‘이경촉정(以經促政)’이다. 경제적 접근을 통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한다는 의미다. 어떤 이는 이를 경제 카드라 부르지만 엄밀히 말하면 ‘정치·경제 카드’라 해야 할 것이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외교 행보를 보면 이경촉정이 잘 나타난다. 당시 아시아 각국은 경제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화폐 평가절하 경쟁을 벌였다. 만약 그때 중국이 모두의 우려대로 위안화를 평가절하했다면 아시아 경제는 그야말로 파탄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환율을 유지했고 각국에게 거대한 중국 시장을 제공했다. 다른 한편으로 동남아 국가들에게는 통 큰 경제 원조를 하면서 아시아 경제의 버팀목이 되었다.
중국 위안화 <연합뉴스 제공>
중국이 이렇게 한 것은 국제사회를 위한 봉사라는 사명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경제를 주고 정치를 받으려는 이경촉정의 고려가 있었을 법하다. 실제 중국의 이런 노력은 큰 효과를 보았다. 중국과 아세안(ASEAN)의 관계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지렛대로 정치적으로도 매우 가까워졌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2009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2009년은 한국과 일본, 호주 등 아시아 태평양 지역 주요 국가들과 중국의 경제 관계에서 이정표적인 시기였다. 이들 국가의 최대 경제협력 파트너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옮아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의 급부상과 함께 중국에 대한 위기감도 고조됐다.
곧이어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인 ‘피봇 투 아시아(pivot to Asia)’가 본격화됐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에서는 중국의 ‘이경촉정’ 정책이 효과를 상실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런 관측이 나오는 배경은 간단하다. 아시아 국가들이 자국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면서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 아시아, 특히 동남아 국가들이 안보 이익과 경제 이익이 충돌하는 상황에 직면한다면, 당연히 안보 이익을 우선시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중국의 이경촉정 정책이 빛이 바랠 것이라는 주장이 적지 않게 들린다.
중국과 아세안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축하의 자리(2010.1.7) <연합뉴스 제공>
그렇다면 중국은 과연 이경촉정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
당장 이경촉정을 버리고 다른 카드(정치카드)를 쓰기에는 현실적인 여건에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중국은 30여 개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는 아직 많지 않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세계 유일의 최강국 미국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카드를 자칫 잘못 쓰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중국은 이경촉정을 전면 재검토하기보다는 ‘미세 조정(fine tuning)’을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정책의 기본 틀은 유지하면서 기술적으로 가다듬으려 할 것 같다는 소리다.
미세 조정은 흔히 경제학에서 쓰는 용어이지만, 이를 국제관계에도 대입해 볼 수 있다. 중국은 종래 이경촉정 카드를 구사하면서 모든 국가, 모든 지역에 일률적으로 경제적으로 이익을 주고 정치적으로 보상받으려는 듯한 정책을 펼쳐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같은 카드라도 대상국에 따라 차별적으로 구사할 것이 예상된다.
이런 가상 시나리오를 한 번 생각해보자. 중국은 몇 가지 기준을 만들어 각국에 적용하려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영토 등 지정학적인 안보 관계, 미국에 대한 의존도, 미중 관계에서의 중립성 정도, 중국의 경제적 실익 정도, 미래의 잠재적 활용도 등과 같은 다양한 지표를 기준으로 국제관계의 새로운 평가 틀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0을 중심으로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두고 화살표 선을 그은 다음, 관련국들을 대입해본다면 국가별 위치가 플러스인지, 마이너스인지 혹은 0인지에 따라 다른 정책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이 보는 이경촉정의 국제관계
이런 가정에 기초한다면 중국이 그려봄직한 이경촉정의 그림은 위와 같다. 양방향 화살표에서 일본은 지금 가장 마이너스 쪽으로 가 있다. 필리핀도 마이너스에 있다. 양국은 미국과 워낙 가까운 관계인지라 당장 중국이 개입해 바꿔볼 여지가 거의 없어 보인다.
인도의 경우 꾸준히 관계가 개선돼 왔지만 추가적으로 더 좋아질 공간이 제한적이다. 약간 플러스 쪽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반면 비슷한 지점에 있었던 베트남은 남중국해 충돌 이후 급격히 마이너스 쪽으로 넘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과 첨예한 영토분쟁 관계에 있으면서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려는 다른 동남아 국가들도 마이너스이겠지만, 같은 동남아 국가라도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국가라고 판단되면 플러스 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미얀마, 라오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은 현재는 0 주위에 있지만 중국이 플러스 쪽으로 끌어올리고 싶은 국가일 것이다.
한국은 태국, 호주 등과 함께 분명히 플러스 쪽에 자리 잡고 있다. 중국에서 볼 때 경제적 이익 확대가 비교적 큰 국가들이다. 이들 3국이 중국과 미국과의 관계에서 균형을 잘 잡고 있다는 점도 감안할 수 있다. 중국은 이들이 비록 미국과는 견실한 안보동맹관계를 맺고 있지만 자신들과도 매우 확고한 경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이 또한 개인적인 추정이지만 중국은 한국과 태국, 호주가 현재의 외교 포지션을 당분간 유지해주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중국과의 경제 관계도 잘 유지하면서 미국과의 동맹관계도 적절하게 지속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중국의 국익에 보다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만약 이들 3국 가운데 어느 나라가(현실적인 가능성은 없지만) 미국과 소원해지면서 중국 쪽으로만 급선회하려 한다면 중국도 고민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중국 자유무역협정 체결 <연합뉴스 제공>
중국이 당장 기존의 국제 및 지역 질서를 바꾸려는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보다는, 복잡하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시로 국제관계 정책을 미세 조정하려 할 것이다. 중국의 대외경제와 통상정책도 이런 바탕에서 미묘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없이 살아보기’라는 말이 큰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2007년 미국의 저널리스트 사라 본지오르니(Sara Bongiorni)가 그의 저서 《중국산 없이 한 해 살기(A Year Without Made in China)》에서 언급해 시작된 말인데, 국내에서는 이 같은 소재를 다룬 TV 다큐멘터리도 제작, 방영된 바 있다. 중국산 제품이 없으면 일반 가정은 당장 하루도 버티기가 쉽지 않다는 결론이 나오면서 한순간에 대중의 큰 주목을 끌었다.
중국은 크리스마스에 쉬지 않고 일한다. 그런데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크리스마스 용품의 거의 대부분을 이들이 공급한다. 중국과 날 선 대립각을 세우는 일본의 기념품 가게에서 팔고 있는 전통인형 역시 어김없이 중국산이다. 중국 경제의 글로벌 영향력이 지금보다 더 커지면 상황은 또 어떻게 변할까.
중국 업체들이 준비한 다양한 크리스마스 용품들 <연합뉴스 제공>
영국 〈가디언〉과 〈이코노미스트〉의 칼럼니스트인 조나단 프리드랜드가 흥미로운 질문 하나를 던졌다. “중국이 톱 도그가 되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What will life be like when China is top dog?)”
톱 도그(top dog)란 ‘경쟁의 승자’라는 뜻으로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정상G1에 오르는 현상을 의미한다. 그는 앞으로 전개될 중국의 톱 도그 시나리오가 과거 50년 동안 지속된 미국의 글로벌 패권과는 분명히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중국이 아무리 커져도 차(茶)와 딤섬이 코카콜라와 빅맥을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또 비록 중국의 완다 그룹이 2012년 미국의 AMC엔터테인먼트를 인수했지만, 그들이 세계가 보고 싶어 하는 영화를 만들어내기에는 역부족이라며 중국의 한계점을 지적한다.
완다 그룹이 AMC 엔터테인먼트 인수하였다. <연합뉴스 제공>
이어 그는 2005년 중국 레노버(Lenovo)의 IBM PC 사업부문 인수와 지리(Geely) 자동차의 2010년 볼보(Volvo) 인수 사례에 주목한다. 즉 중국이 계속 커져도 앞으로 상당 기간 서구의 브랜드는 사라지지 않고 단지 일부 소유권만 중국으로 바뀔 것이란 예측이다.
여기에 국제 정치이론을 연결해보자.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로즈크란스(Richard Rosecrance)는 “인구와 영토,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준으로 강대국, 중진국, 약소국으로 구분하는 전통적인 국가 분류는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대신 그는 21세기형 국가분류법으로 ‘머리국가(head nation)’와 ‘몸통국가(body nation)’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머리국가는 상품을 창조하고 디자인하는 나라이며, 몸통국가는 그 처방에 따라 제조하는 나라다. 그에 따르면 창조국과 제조국은 모두 이익을 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부자가 될 수 있는 나라는 창조국이다.
로즈크란스의 분류 틀과 프리드랜드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미국, 독일, 일본은 머리국가에 속한다. 중국은 머리국가로 도약하고 싶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이윤이 박한 몸통국가 쪽에 머물 것이다. 창조력이 약한 탓이다. 선진국 문턱에 있는 한국은 어깨국가(shoulder nation)쯤 될 터이다.
중국은 더 이상 호기심 천국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울렁증의 대상이 되어선 더욱 곤란하다. 중국을 옆에 둔 한국이 할 일은 중국이 진정한 톱 도그가 되기 전에 현실적이면서도 정교한 ‘차이나 시나리오’를 짜는 것이다. 동네방네 주워 모은 조각들을 끼워 맞추는 아전인수 식 중국 전략은 이제 그만 접어야 한다.
중국 최대의 명절인 음력 1월 1일 ‘춘절’ 풍경 <연합뉴스 제공>
프리드랜드는 차이나 톱 도그 시대의 변화를 이렇게
예시한다.
• 중국의 영향으로 전 세계가 갈수록 음력 1월에 비즈니스
활동이 부진해질 것이다.
• 올림픽과 월드컵 축구는 중국 시청자들을
고려해 경기시간 조정이 불가피해질 것이다.
• 서구 정치인들이 중국
기업 투자유치에 목을 매다시피 하게 될 것이다.
• 전 세계 기업들은 앞
다투어 중국 관광객 유치에 나설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들은 어김없이 중국 비즈니스의 기회 요인이자 도전 요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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