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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21세기 나의조국 2014. 9. 19.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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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러는 누구인가?

세일러 (idca****) 2014.09.21 07:38 

 

 

 

안녕하세요?

 

지난 번 글을 올리고 나서 4주만에야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좀 더 자주 글을 올릴 것이라는 말로 죄송한 마음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저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공개하겠노라고 약속드렸습니다.

 

그동안 저는 오프라인의 저와 온라인의 세일러를 철저하게 분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지내왔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는 privacy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었고,

둘째는 세일러라는 존재가 오프라인의 저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아고라에 세일러라는 이름으로 썼던 첫번째 글을 돌아보니 08 12 9일에 썼군요

그 뒤로 어느새 5년하고도 9개월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돌이켜보면 인연이라는 것이 참 묘한 것 같습니다.

 

한 지인이 아고라에 글을 써보면 어떠냐고 권해주셨고, 에이 뭘하고 마다하다가 세일러라는 필명으로 아고라에 글을 쓴 순간, 저의 인생이 확 바뀌어버렸습니다.

 

지난 6년 가까운 시간은 질풍노도처럼 정신없이 흘러갔고, 그 기간 동안 온라인의 세일러와 오프라인의 저는 끙끙 씨름을 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의 세일러는 오프라인의 저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존재입니다.

 

이라는 것이 정제과정을 거친 후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글로 표현된 세일러는 오프라인의 저보다 훨씬 훌륭한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오프라인의 저는 온라인의 세일러만큼 훌륭한 존재가 되지 못하므로, 세일러는 저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로 인해 오프라인의 제가 자극을 받아서 이전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글쓰기를 끈질기게 계속할 수 있었던 동력 중의 하나는 이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세일러의 존재가 부담이 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저는 오프라인의 저를 노출시키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웠습니다. 그 때문에 양자를 철저하게 분리해서 프라이버시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초에 저는 상당한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수개월 동안 한 달 간격으로 띄엄띄엄 간신히 인사 글 정도나 올리는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사실 그 때는 세일러로서 글쓰기를 중단한다는 글을 쓰려고 몇 번이나 마음 먹었습니다. 차마 쓰지 못해서 망설이고 있었을 뿐입니다.

 

내심으로는 맥 빠진 제 글에 실망해서 세일러가 잊혀진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제 블로그를 찾는 분이 확 줄어들면 편안하게 잊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헤매던 저를 구해주신 것은, 지난 번 글에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여러분들이십니다.

실망스러운 상황에서도 저를 잊지 않고 계속 찾아주시고, 변함없이 격려해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앞으로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의 생각이 명료하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세일러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오프라인의 제가 세일러에 가까운 존재가 되고자 꽤 노력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노력을 완전히 접겠습니다, 정도는 아니지만 ^^

 

오프라인의 저 자신의 모자람에 대해 좀 너그러워지고자 합니다.

 

그리고 가급적 재미있게 살기로 했습니다. 제가 최근 사업을 새로 시작한 동기 중에 하나는 재미있게 살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세일러 2.0은 실수를 하더라도 더 많이 오픈하고 여러분들과 더 많은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보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번 글에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때 제가 가장 두려운 것은,

그동안 세일러를 너무 좋게 봐오신 분들께 실망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합니다.

그렇게 하라고 여러분들이 가르쳐주셨기 때문입니다.

 

혹시 앞으로 세일러가 실망을 시켜드리더라도 조금 너그럽게 보아주시고,

모자란 부분을 님들께서 채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 님들로 인해 모자란 부분을 채운 존재가 되는 것이 세일러 2.0의 목표입니다.

 

 

ㅇ 세일러는 누구인가?

 

우선 제 나이를 공개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댓글을 통해 보여주시는 여러분들의 반응을 통해, 저에 대해 실제의 제 나이 이상으로 느끼는 분들이 꽤 많이 계신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 때문에 좀 저어됩니다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68년생입니다.

이제 47세이니 인격을 완성할 수 있는 나이가 못됩니다.

 

대학 학번으로는 87학번입니다.

 

법학과로 진학한 제가 경제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법경제학강의를 들어면서부터입니다.(요새 주목받고 있는 서울 법대의 조국 교수가 당시 대학원생으로 수업조교를 맞아 학부생들의 강의실을 들락거리던 시절입니다 ^^)

 

그때 사용되었던 거시경제학 교재가 아주 좋았습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책이지만 그 때 받았던 인상이 강렬해서 프로이엔이라는 저자의 이름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 책은 일반적인 대학교재와 달리, 여러 가지 사회현상을 경제원리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학이 내놓을 수 있는 정책은 어떤 것인가를 다루는 책이라서 매우 흥미 있었습니다.(어찌보면 요새 교재로 큰 인기가 있는 맨큐의 책과 조금 비슷한 스타일인 듯도 합니다)

 

당시 법학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던 저는 법학보다 경제학을 더 열심히 공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뒤로도 경제학 과목들을 찾아다니며 들었습니다.

 

당시 담당 교수님께 교재가 제공하는 설명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일이 있는데, 웃으시며 당신은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하신 적도 있고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재경행시에 합격한 하숙집 선배로부터는, 어떻게 자기보다 경제학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있느냐,는 말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저의 약력 중에 대기업 근무 부분이 있는데, S그룹의 인터넷사업부에서 팀장으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인터넷사업부라는 특수성 때문에 비교적 젊은 나이에 대기업에서 팀장으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S그룹은 후계체제와 연계하여 인터넷사업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중시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저는 그룹의 H부회장과 독대하여 보고했던 적도 있고, 그룹 비서실(당시는 구조조정본부로 불리고 있었습니다)의 연락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덕택에 대기업의 생리에 대해 꽤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 인터넷기업에서 임원으로 일한 적도 있습니다. 당시 그 회사에서 스톡옵션을 받았고 덕분에 꽤 큰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회사의 기업공개 과정에 참여했던 경험을 계기로, 흔히 부띠끄라고 불리는 작은 투자회사를 차려서 여러 비상장주식에 투자했습니다.

 

투자에 재미를 느껴서, 그 외에도 부동산, 채권, 파생시장, 외환 등 투자가 가능한 거의 모든 분야에 의식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 이유는, 처음에는 투자 차원이었지만, 나중에는 경제 공부 차원에서 각종 투자 분야를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투자는 2000년 초의 IT버블, 이후의 부동산 버블과 맞물리면서 꽤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때의 경험들이 경제학 이론 공부와 맞물리면서 신용팽창에 대한 깊은 관심을 제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IT버블만 해도 전무후무한 신용팽창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론적으로는 버블 붕괴 후의 수축기가 훨씬 길게 이어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버블이 재차 일어났지요.

 

저는 당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서 혼란에 빠졌습니다.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미국이 버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수습할 생각일까

지켜보고 고민하던 와중에, 2008년 하반기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사태를 맞이했던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저의 이론 체계에 커다란 구멍(아직 이해하지 못한 부분)으로 남아있던 부분이 채워지면서,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듯한 경험을 했습니다. 일련의 사태가 일관된 맥락 하에 이해되고 눈에 보였던 것입니다.

 

이후 아고라에 세일러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기에 이르렀습니다.

 

세일러(sailor)라는 이름과, 처음 글이 선박회사의 선물환 매도에 관한 글이었기 때문에, 저를 선박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꽤 많았습니다.

 

하지만 세일러는 글자 그대로 뱃사람을 뜻합니다. 제가 요트동호인 클럽에서 배를 타고 있기 때문에 세일러라는 이름을 필명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요트라고 하면 호사취미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소속된 클럽은 글자 그대로 동호인 클럽으로 수수한 곳입니다.

 

예전에 노무현 대토령이 요트를 소유하고 있다고 호사취미라고 언론의 비판을 받았다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진 일이 있습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소유했던 요트는 흔히 470 이라고 불리는 배(길이가 4.7미터여서)인데, 저도 이 배로 대회에 출전했던 적도 있어서 잘 아는 배입니다.

 

중고라면 수백만원이면 살 수 있는 배이고, 탑승자가 끊임없이 곡예(?)를 부리지 않으면 뒤집히는 배이기 때문에 럭셔리와는 거리가 먼 배입니다.(노무현 대통령이 다른 배가 아닌 이 배를 소유한 것으로 봐서, 몸을 움직이는 운동을 꽤나 좋아했던 분인 듯 합니다…)

 

어쨌든 온라인의 세일러라는 존재가 탄생했습니다. 세일러가 쓴 글이 굉장한 조회수를 기록하고(당시에는 수만에서 10만에 이르렀으니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죠 ^^), 책이 출간되었는데 꽤 많이 팔렸습니다.

 

당시 책을 출간하면서 썼던 글 중에, 원래 언젠가는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 책이 경제학 책은 아니었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제가 원래 꿈꾸었던 것은 역사를 공부하고 역사책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한 때는 심각하게 사학과 대학원 진학을 고민했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늦은 나이에 정규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은 쉽게 결심하기 어려운 일이었지요.

 

그런데 세일러가 뜨면서(?) 제가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렇다면하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오프라인의 저는 사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원 공부가 꽤 부담이 되면서 사업은 접고 역사 공부와 세일러로서의 글쓰기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저는 석사학위를 땄고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다 금년 초에 위기가 찾아왔고, 여러 가지 고민으로 힘들어서 대학원을 휴학했습니다.

글쓰기도 거의 중단상태였으니 꽤 방황한 셈입니다.

 

저의 아내는 저보고, 매일 역사 공부한다고 책보고, 경제학 책 쓴다고 책 붙잡고 있고 하니 그런 거라고 타박입니다. 정말 그렇다고 느꼈습니다. 결국 매일 매일 하루종일 만 붙잡고 있었던 셈입니다.

 

제가 사업을 다시 시작한 것은 이런 상황에 변화를 주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만나고 얘기하고 돌아다니는 시간을 늘리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달 초에 박사과정에 복학했습니다.

덕분에 세일러로 활동하는 데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든 셈입니다.

그 줄어든 부분은 여러분들께 도움을 청할 생각입니다.

그 계획에 대해서는 다음 번 글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 주에 대학원 발표가 잡혀있다 보니 시간이 없어서, 다음 글은 10 1()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동안 저를 좋게 봐주시고 격려해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세일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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