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희의 야구탐사] 원더스의 기적은 왜 멈췄나(1편)기사입력 2014-09-12 17:25 |최종수정 2014-09-12 18:03
지금의 이스라엘 예리코(Jericho, 여리고)로 떠나던 한 이가 강도를 만났다. 그는 강도에 재산을 빼앗겼다. 그것도 모자라 몰매까지 맞았다. 피 흘리고 쓰러진 채 길옆에서 신음하던 그는 마지막 삶의 가는 숨을 쉬었다.
마침 제사장이 그곳을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쓰러진 이를 무시했다. 그냥 지나쳤다. 그 옆을 지나던 신앙심 깊은 레위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선을 돌려 가던 길을 갔다. 그때 죽어가는 생명에 다가가 천에 기름과 포도주를 적셔 상처를 보듬어준 이가 있었다. 바로 유대인들의 배타와 멸시 속에서 살던 사마리아인이었다.
이 사마리아인은 죽어가던 이를 부축해 주막으로 갔다. 그리고 밤새 그를 간호했다. 바쁜 일 때문에 떠날 땐 주막 주인에겐 돈을 주며 잘 간호해달라 부탁했다. 돈이 부족하면 돌아오는 길에 주겠다고 약속했다.
훗날 예수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유대인 율법사에게 물었다. “네 의견엔 이 세 사람 가운데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유대인 율법사는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예수는 법정에 선 증인처럼 짧고 간명하게 말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가장 선행과 기부로 시작한 고양 원더스
9월 11일 국내 최초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가 마지막 보도자료를 보냈다. 원더스는 보도자료에서 ‘우리 야구단은 도네이션 컨셉으로 순수하게 시작해 운영했던 만큼 마지막도 좋은 모습으로 팬 여러분들에게 기억되길 희망한다’며 ‘올 시즌을 끝으로 원더스 운영을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기자는 곧바로 메일함에서 과거 이메일을 찾았다. 그건 2011년 9월 14일 KBO(한국야구위원회)가 보낸 이메일이었다. 당시 KBO는 이메일로 보낸 보도자료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 야구단이 창단된다’며 ‘독립야구팀은 신인지명회의에서 지명받지 못하거나 구단에서 방출된 선수 등 재기를 꿈꾸는 야구선수들에게 도전의 기회를 부여하며, 야구 저변을 확대하고, 유소년 및 사회인 야구육성, 지방자치단체와의 유대를 통해 지역사회에 공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덧붙여 ‘독립야구팀(가칭 “고양원더스”)은 고양시(시장 최성)와 (유)원더홀딩스(이사회 의장 허민)가 공동 운영하게 되며,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이 야구단을 함께 운영하는 것은 국내 최초가 된다’고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KBO는 ‘고양원더스 독립야구팀은 내년 시즌부터 프로야구 퓨처스리그 팀들과 경기를 가질 예정’이라며 ‘한국 야구발전에 큰 시작점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시계를 3년 전으로 돌려보자.
국내 최초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창단이 발표됐을 때 야구계는 환영 일색이었다. KBO의 설명대로 프로에서 실패하거나 프로에 입문하지 못한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마지막 도전의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당시 야구계는 9구단 창단과 함께 야구 저변 확대를 위해 다양한 고민을 할 때였다. 그 다양한 고민 가운데 대표적인 게 바로 야구 선수들의 취업이었다.
그즈음 KIA 사령탑이던 조범현 현 kt 감독은 “해마다 수백 명의 아마추어 선수가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채 야구 실업자가 되고, 프로에서도 시즌 종료 후, 수십 명의 실업자가 쏟아지는 게 우리 야구의 현실”이라며 “이 선수들에게 마지막 패자부활전의 무대이자 재취업의 기회가 될 수 있는 원더스의 탄생은 야구계가 두 손 들어 반겨야할 낭보 중의 낭보”라고 환영했다.
특히나 조 감독은 “원더스를 창단한 허민 구단주가 아무 대가 없이 구단 운영을 하겠단 소식을 들었다”며 “요즘 같은 세상에 사재를 털어가며 다른 이의 꿈을 실현해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고마워했다.
조 감독은 “2012년부터 원더스가 퓨처스리그(2군 리그)에서 활동한다면 물심양면으로 돕고 싶다”는 뜻을 밝히며 “원더스의 참여로 퓨처스리그가 보다 알찬 리그로 성장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광길 NC 코치도 비슷한 의견을 나타냈다. 이 코치는 “한 해 800여 명의 아마추어 선수들이 프로 지명을 받으려 노력하지만, 그 가운데 프로 지명을 받는 선수는 80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운을 떼고서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90%의 선수들은 당장 실업자 신세가 된다”며 “갈 곳 없고 상처받은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새로운 직장이자 프로 진출의 소중한 기회가 될 원더스는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과 비교될 만하다”고 말했다.
두 손 들어 독립구단 창단을 환영한 조 감독과 원더스를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비유한 이 코치의 생각은 많은 야구인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두 이의 말대로 당시 야구계는 프로야구 확장에만 목을 매고 있었지, 프로야구의 근간이 되는 야구 저변 확장과 아마추어 선수들의 취업 확대에 대해선 원론만 되풀이했다.
야구계 일부에서 “프로야구 취업률이 10% 이하이고, 설령 취업했어도 3, 4년 내 대부분의 선수가 프로야구판을 떠나야 하는 현실에서 어느 부모가 자식이 야구하는 걸 환영하겠느냐. 항구적 야구발전을 위해 독립구단, 실업야구단 창단에도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할지에 대해선 별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국내 최초 독립구단 원더스가 창단한 건 야구계의 숙원이던 ‘야구 저변과 아마추어 야구선수 취업 확대’의 출발점이나 다름없었다. 2011년 9월 21일 원더스 창단을 발표한 허민 구단주의 영상 메시지(동영상=스포츠춘추 박동희)
허 구단주는 원더스 창단 배경을 다음과 설명했다.
“저는 사회로부터 큰 혜택을 받으면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이제는 제가 사회로부터 받은 걸 다시 사회로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해왔어요. 그래서 이런저런 구상을 했어요. 제가 벤처 출신이니까 ‘1년에 한 번씩 벤처대회를 열어 10억 원의 우승상금을 주자. 그 상금으로 사업하게끔 유도하면 좋지 않을까?’ 그런 아이디어를 생각했죠.
마침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허구연(MBC SPORTS+ 해설위원) 선생님께서 독립구단 창단을 제안하신 거예요. 듣고 보니까 ‘기부 차원에서 독립구단을 창단하는 것도 좋겠다’ 싶더군요.”
사실이었다. 당시 ‘위메이크프라이스닷컴’ 나무인터넷 이사회 대표였던 허 구단주는 허 위원으로부터 독립구단 창단을 제의받고, 아무 조건 없이 독립구단을 창단해 후원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애초 KBO는 “1년에 8억 원이면 된다”고 했지만, 허 구단주는 “그것보단 더 쓰고 싶다. 8억 원은 계산하기도 어려우니까 10억 원을 내겠다”고 밝혔고, 덧붙여 누가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지원금을 내는 대신 일체의 수익사업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기자는 허 구단주에게 “1년에 10억 원씩이나 내며 일체의 수익사업도 하지 않겠다면 처음부터 적자 구단 운영을 하겠다는 뜻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허 구단주는 “제가 하고 싶은 건 독립구단 운영이 아니라 독립구단을 통해 많은 이에게 기회를 주는 일입니다. 기부 차원에서 하는 일인데, 수익을 고려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요”라며 “만약 독립구단이 돈의 문제였다면 저도 수익사업을 하고, 팀명에 회사 이름을 붙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그런 행동들이 아무 의미도 없고, 제가 바라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같은 이유로 다른 이도 행복하길 바랍니다. 그것뿐이에요”라고 답했다.
허 구단주는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데 인색함이 없는 이였다. 그는 원더스 창단 이후 구단을 통한 일체의 수익사업을 하지 않았고, 원더스를 활용해 회사를 알리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약속했던 것보다 몇 배는 많은 기부를 실천했다.
애초 그는 “1년에 10억 원을 구단 운영비로 내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론 그 4, 5배에 해당하는 돈을 기부했다. 원더스 관계자는 “구단주님께서 ‘꿈이 허기진 선수들이 배까지 허기지면 안 된다. 돈이 부족하면 내가 더 낼 테니 걱정하지 말고, 늘 프로에 준하는 환경을 선수들에게 제공해주라’고 말씀하셨다”며 “우리 구장으로 원정 경기 온 프로 2군 선수들이 원더스 선수들을 부러워할 만큼 구단 직원 모두가 선수단 지원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털어놨다.
고양구장으로 원정경기를 하러 온 프로 2군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자기 구단 제공 식사를 마다하고, 원더스 식당에서 맛난 식사를 하는 건 생경한 장면이 아니었다. 특히나 원더스 선수들은 아침, 점심, 저녁 모두를 구단 측으로부터 받았는데, 이는 다른 프로 2군 선수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더 많은 선수가 원더스에서 꿈을 꾸고, 운명에 재도전할 수 있다면···”
구단주의 확고한 기부 의지와 풍부한 지원, 그리고 구단의 진심 어린 선수단 지원을 발판 삼아 원더스는 2012년 데뷔해를 무사히 마쳤다. 아니 무사히 마친 것 그 이상이었다.
2012년 원더스는 총 48경기(북부리그 30경기, 남부리그 18경기)를 치렀다. 북부리그 팀들을 상대론 14승 6무 10패, 남부리그 팀들과의 대전에선 6승 1무 11패를 기록했다. ‘20승 7무 21패’는 프로에서 방출되고,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아마추어 선수들이 뭉친 팀의 첫해 성적치곤 대단히 좋은 것이었다.
언론과 야구계도 새내기 독립구단이 오랜 전통의 프로 2군 팀들을 차례로 꺾자 ‘기적’ ‘파란’이라는 수식어를 써가며 놀라워했다. 더 놀라운 건 원더스가 흥행에서도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뒀다는 데 있었다. 2012년 원더스 주말 홈경기엔 평균 491명이 몰렸는데, 이는 프로 2군 팀들과 비교하면 많은 관중수였다. 일본 독립구단들의 데뷔 시즌 주말 평균 관중(542명)과 비교해도 전혀 떨어질 게 없었다. 원더스 관계자들은 “올 시즌처럼 번외 경기가 아니라 퓨처스리그에 합류해 정식 경기를 치르면 더 많은 관중이 찾아오실 것 같다”며 흐뭇해 했다.
무엇보다 큰 성과는 원더스가 본연의 목적이던 선수들의 프로 진출 꿈을 이뤄줬다는 것이었다. 원더스는 2012년 이희성의 LG행을 시작으로 총 5명의 선수를 프로로 보냈는데, 이 가운데 이희성(LG)과 안태영(넥센)은 각각 넥센과 삼성에서 방출됐던 선수들로, 원더스를 통해 재도전의 꿈을 이룬 셈이었다.
김영관(LG), 강하승(KIA), 홍재용(두산)처럼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선수들도 원더스에서 뛴 덕분에 큰 꿈을 향해 점프할 수 있었으니 원더스는 그야말로 야구계의 숙원을 풀어준 복덩어리나 다름없었다.
원더스는 데뷔 시즌의 눈부신 성과를 바탕으로 2013시즌을 준비했다. 당시 허 구단주는 “구단 측으로부터 ‘프로 미지명 아마추어 선수 22명과 각 구단에서 방출된 10명 등 총 32명의 선수를 새로 뽑았다’는 이야기를 전달받았다”며 환한 표정으로 “그렇게 되면 내년 시즌엔 선수단 규모가 48명(2012시즌 최대 45명)으로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기자는 “선수들이 늘어나면 구단 운영비도 덩달아 증가할 텐데, 괜찮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이미 허 구단주는 KBO와 약속한 10억 원의 4, 5배에 달하는 구단 운영비를 기부한 터였다. 그래선지 일부 야구계 인사는 허 구단주의 기부에 감사함을 나타내면서도 한편으론 미안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허 구단주가 들려준 답은 지극히 허 구단주다운 발언이었다.
“그렇겠죠. 선수단이 늘어나면 구단 운영비도 덩달아 증가할 겁니다. 그럼 우리가 짊어져야 하는 부담도 커질 겁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이 대목에서 허 구단주는 헛기침을 한 뒤 잠시 말문을 닫았다가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가장 중요한 건 선수들이 늘어나고, 운영비가 증가하고, 우리 책임이 불어나면 날수록 더 많은 선수가 원더스에서 꿈을 꿀 수 있고, 엄혹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올 시즌 보세요. 많은 분이 기대하지 않으셨지만, 원더스에서 열심히 땀 흘린 선수 5명이 다시 프로로 돌아가거나 난생처음 프로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선수 5명이 기적을 연출했고, 그 기적에 많은 분이 용기를 얻었다면 그보다 더한 가치가 어딨겠습니까.”
허 구단주는 “저와 원더스가 소망하는 게 있다면 선수들이 자신의 기량을 확인할 수 있는 그리고 많은 프로 관계자가 원더스 선수들의 기량을 점검할 수 있도록 올 시즌보다 더 많은 경기를 치렀으면 하는 것”이라며 “KBO와 프로 구단들이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접근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항상 KBO와 기존 프로구단을 존중하는 자세를 견지한 허 구단주는 ‘바람’이라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실은 이는 약속의 문제였다. 사정은 이랬다.
어제와 오늘이 달랐던 KBO
2011년 7월 18일 KBO는 <국내 최초 독립 프로야구단 유치 제안서>를 독립구단 준비위 측에 보냈다. 이 제안서에서 KBO는 ‘독립야구단 창단 시 한국 프로야구 2군리그에 참여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한 달이 지난 8월 하순엔 보다 구체적으로 ‘북부리그에 포함시켜 총 102경기를 편성해주겠다’며 독립구단 참가를 전제로 만든 2012시즌 퓨처스리그 경기 일정을 허 구단주 측에 보냈다. 항간엔 준비위 측이 처음부터 2군 리그 참여를 요구했다고 알려졌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던 셈이다.
그러나 KBO는 그해 9월 6일 MOU 체결을 일주일 앞두고 갑자기 “여러 문제점이 제기돼 2012년 1년간은 정식 퓨처스리그 가입이 어렵다”며 “2013년부터 정식 퓨처스리그에 가입시켜 주겠다”는 말로 기존 약속을 뒤엎었다. KBO의 수정안에 따른다면 독립구단은 정식 퓨처스리그 102경기에서 성적이 인정되지 않는 번외 30경기를 치러야 할 판이었다. 한술 더 떠 KBO는 “30경기를 치르게 되면 예치금 10억 원을 내놔야 한다”는 갑작스런 통보까지 했다.
그렇다면 KBO가 내세운 ‘여러 문제점’ 가운데 핵심 문제점은 무엇이었을까. 당시 KBO는 ‘퓨처스리그 11개팀(경찰청, 상무 포함) 소속 선수가 팀당 50, 60명인데 반해 독립팀은 30명 수준일 게 분명하기에 그 정도 선수단 규모론 102경기를 치르기 무리’라고 주장하며 ‘경기력에서도 기존 프로 2군 팀과의 차이가 클 게 자명하다’고 답한 것으로 확인됐다.
KBO는 ‘만약 2013년 정식 퓨처스리그 가입을 수용한다면 정상적으로 9월 15일 MOU를 체결하고, 그렇지 않다면 창단을 유보하겠다’고 알렸다.
준비위 측은 창단 유보 결정을 내렸다. 처음과 말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KBO는 “9구단 NC도 퓨처스리그에서 1년간 뛰고, 다음해 1군리그로 진입하지 않느냐”며 재차 ‘1년 유예 후, 정식 퓨처스리그 참가 보장’을 약속했다. 여기다 “정식 퓨처스리그 경기가 아닌 번외경기라면 예치금을 낼 필요까진 없다”며 다시 입장을 바꿨다.
준비위 측은 처음부터 독립구단 창단을 기부 활동으로 생각했기에 KBO의 약속을 믿기로 했다. 9월 15일 MOU 체결 이후, KBO는 원더스에 두 가지 시즌 일정안을 내놓았다. 1안은 ‘북부리그 5개 팀과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12경기씩을 치러 총 60경기를 소화’하는 일정이었다. 2안은 역시 ‘북부리그 5개 팀과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붙되 9경기씩을 치러 총 45경기를 소화’하는 일정이었다.
원더스는 “독립구단이 상무, 경찰청 야구단처럼 우수 자원을 발굴하고, 잠재 선수를 육성해 프로로 보내려면 퓨처스리그 정식경기를 많이 치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하지만, KBO는 MOU 체결 이후 태도를 바꿔 “북부리그 5개 팀과만 경기를 치를 순 없다. 남부리그 팀들과도 대전해야 한다. 특히나 남부리그 팀들과 경기 시엔 전부 원정 경기로 치러야 한다”며 또다시 말을 바꿔 예치금 10억 원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KBO는 “예치금을 내지 않을 경우 경기 편성이 어렵다”며 “심판비 등 경기 운영에 필요한 경비도 모두 원더스 측에서 지불해야 한다”고 통보했다.
원더스는 KBO의 잦은 말 바꾸기에 당황하면서도 “KBO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말로 ‘반발’ 대신 ‘이해’로 KBO의 요구를 수용했다. 결국 원더스는 예치금 3억 원을 내고, 남부리그 원정 경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KBO는 그제야 ‘팀 순위 및 개인 성적이 일절 인정되지 않는’ 번외 교류 48경기를 최종 편성해줬다.
문제는 KBO가 2013시즌을 앞두고 또다시 말을 바꿨다는 것이다. 애초 KBO는 원더스에 “2013년부터 정식 퓨처스리그에 가입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정작 2012시즌이 끝나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2012년 12월 21일이 돼서야 ‘2012년과 동일한 총 48경기(번외 교류경기)를 배정한다’고 일방 통보했다.
원더스는 KBO의 통보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당시 원더스 핵심 관계자는 “세상에 어떻게 다른 누구도 아닌 KBO가 우리한테 이럴 수 있느냐”며 “그토록 철석같이 ‘2013년부터 정식 퓨처스리그에 가입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해놓고, 지금 와 ‘내년에도 올 시즌처럼 번외 교류 48경기를 치르라’고 통보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아쉬운 한숨을 토해냈다.
이 관계자는 “퓨처스리그 참가는 원더스 창단을 결정할 때 가장 핵심적인 사항이었다”며 “ 퓨처스 팀과 함께 경기를 펼치고, 동일한 일정을 소화해야만 선수들에게 현실적인 재도전의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원더스는 KBO로부터 일방 통보를 받은 일주일 뒤 ‘2013년 경기 일정 재검토 요청’ 공문을 보내 “꿈을 향해 도전하는 선수들을 위해 전향적인 결정을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KBO는 해가 바뀐 2013년 1월 18일이 돼서야 ‘퓨처스리그 소속 구단간 경기 편성의 형평성, 독립리그의 설립 취지, 예상 경기력 등을 감안해 2013년에도 지난해와 동일한 전체 48경기를 본 위원회 소속 퓨처스 팀과 번외 경기로 편성할 예정’이라는 회신을 보냈다.
원더스는 5일 후 다시 한 번 경기 편성 재검토 3차 공문을 보냈으나, KBO는 ‘총 48경기(번외)로 경기 일정을 편성했다’는 마지막 회신으로 입장 변화가 없음을 밝혔다.
KBO와 구단들이 내세운 ‘원더스 퓨처스리그 참여 불가 이유들’
KBO가 원더스에 밝힌 퓨처스리그 정식 참가 불가 이유는 ‘소속구단간 경기 편성의 형평성, 독립리그의 설립 취지, 예상 경기력’ 등이었다. 여기서 일단 소속구단간 경기 편성의 형평성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었을까. 당시 KBO 관계자가 들려준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퓨처스리그도 KBO 회원사(구단)들이 참여하는 정식 프로리그에요. 경찰청, 상무 빼면 모든 2군 구단들은 회원사들이 운영하는 구단들이에요. 미국, 일본도 마찬가지겠지만, 프로야구는 회원사들끼리만 참여하고 활동할 수 있는 무대입니다. 그래서 수백억 원에 달하는 가입비를 내고, 해마다 회비를 내는 겁니다.
그런데 원더스는 어떻습니까? 원더스가 회원사에요? KBO에 가입비를 낸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해마다 회비를 냅니까? 아니잖아요. 원더스는 그냥 독립구단이에요. 원래 퓨처스리그에도 뛸 수 없는 팀이란 말이죠. 그걸 기존 구단들이 양해해주고, KBO가 도와줘서 2012년에 48경기나 치를 수 있던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어느 나라 2군리그와 마이너리그에 독립구단이 뛴 답니까? 정식 퓨처스리그에 가입시켜달라? 말이 되는 소릴 해야죠. 그건 무리에요, 무리. KBO가 약속하지 않았느냐고요? 음, 그때 (KBO에) 계셨던 분들은 다 떠나셨는데….”
사실 설명은 KBO 관계자가 했지만, 정작 이런 이야기를 가장 크게 하고 다닌 이들은 몇몇 구단 수뇌부들이었다. 이들은 “원더스는 KBO 정식 회원사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거듭하며 “왜 원더스가 퓨처스리그 팀들과 경기를 치러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볼멘소릴 냈다.
KBO 내에선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원더스 입장을 적극 이해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구단들의 파워와 입김이 원체 강하게 작용하는 터라, KBO는 회원사들의 의견을 일부 대변할 수밖에 없었다.
KBO가 독립리그의 설립 취지를 퓨처스리그 정식 참가 불가 이유로 내세운 것도 ‘원더스는 KBO 정식 회원사가 아니다’라는 몇몇 구단 입장의 연장선상이었다. 이 구단 수뇌부들은 “원더스는 독립리그에서 뛰어야지, 프로팀들이 활동하는 퓨처스리그에서 뛰면 안 된다. 세상천지에 독립구단이 프로구단과 함께 뛰는 리그가 어딨느냐”며 원더스를 향해 “노는 물이 다른데, 왜 자꾸 우리와 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원더스에 무척 가혹했던 한 구단 수뇌부는 기자가 “그럼 경찰청과 상무는 기존 회원사도 아닌데 어떻게 같이 노십니까”하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 “경찰청과 상무는 병역 문제라는 회원사들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구단들”이라며 “군 팀들은 회원사에 도움을 주지만, 원더스는 우리 구단들에 도움을 주는 게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기자가 “그럼 어째서 원더스 선수 5명을 구단들이 데려간 것이냐. 선수 수급이야말로 기존 구단들에겐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냐”고 묻자 그와 관련해선 대답을 유보한 채 “중요한 건 우린 하나뿐인 독립구단 원더스를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함께 경기를 뛰어준 것이지, 퓨처스리그 정식 가입을 허락한 적도,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KBO로부터 들은 적도 없다는 점”이라고 강변했다(이 문제는 2편에서 자세히 설명)
가장 설득력이 떨어지는 불가 사유는 예상 경기력이었다.
원더스 관계자는 “KBO 분들이 ‘원더스 경기력이 문제’라고 하셨지만, 2012년 데뷔 첫해 48경기를 치러 우리가 거둔 성적이 20승 7무 21패였다”며 “5할 승률에 가까운 팀 보고 ‘경기력이 문제’라고 하는 건 다소 어폐가 있는 말씀이었다”고 반박했다. 덧붙여 이 관계자는 “게다가 48경기 가운데 33경기가 원정이었다”며 “만약 경기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면 어떻게 48경기 가운데 원정 33경기를 치르고도 승률이 5할에 가까울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일부 야구계와 구단들이 원더스를 가장 비판했던 것 가운데 하나가 운영비였다. 모 구단 단장은 “원더스가 2012년에 운영비로 40억 원을 넘게 썼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며 “무슨 독립구단이 그렇게 많은 돈을 쓰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 단장은 “40억 원이면 솔직히 웬만한 2군 구단 운영비와 견줘도 떨어질 게 없다”고 밝히고서 “원더스가 그 정도 돈을 쓰면 앞으로 생겨날 독립구단은 어떻게 하란 소리냐”며 “원더스가 국내 최초 독립구단이긴 하나, 향후 독립구단 창단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나쁜 선례가 되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운영비뿐만이 아니었다. 일부 구단 현장 책임자들과 프런트 관계자들은 원더스가 외국인 선수를 영입한 것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이들은 “무슨 독립구단에 외국인 선수냐”며 “독립구단의 존재 목적은 프로 진출을 위한 선수 육성이지, 팀 성적이나 특정인의 명예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런 비판에 직면할 때마다 원더스는 가슴을 치며 답답해했다. 당시 원더스 측은 허 구단주처럼 기존 프로구단을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구단에 과감하게 투자한 건 경기력 향상을 통해 KBO와의 약속을 지키려한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KBO와 기존 구단들이 가장 걱정하셨던 부분이 경기력 문제였다. 원더스가 데뷔 첫해 퓨처스리그에서 정식으로 뛰지 못한 것도 경기력에 의문표가 달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 구단이 중점을 둔 게 경기력 강화였다. 창단이 확정된 2011년 10월부터 첫 시즌이었던 2012년 9월까지 1년간 총 41억 3천만 원을 투자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여기저기 돌아오는 말은 ‘독립구단이 무슨 돈을 40억 원이나 쓰느냐’ ‘원더스가 야구계 질서를 무너트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야구계의 우려를 불식하려고 노력한 게 잘못이라고 지적한다면 도대체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여기까지만 본다면 KBO와 기존 구단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려던 원더스를 매몰차게 대한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이보다 더 복잡했다. KBO와 기존 구단들이 원더스와 구단주에 대해 고마움을 나타내면서도 원더스에 비협조로 일관한 덴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었다.(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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