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석의 유머론 "야구해설은 '팩션'이다"
출처 스포츠경향 안승호 기자 입력 2014.04.09 07:03
'대포'와 '선봉' 같은 전쟁 용어들이 습관적으로 쓰이는 스포츠판에서 그라운드를 실제 전쟁터로 부르는 이는 많지 않다.
그는 당당히 말한다. "야구장은 내 인생의 전쟁터였다"고. 또 "현장의 삶은 고3 수험생의 일과처럼 치열했다"고 말한다.
LG 투수코치 타이틀을 떼어내고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으로 변신한지 불과 몇개월. 차명석(45)은 생존을 위한 싸움터를 그라운드에서 중계석으로 옮겨놨다. 차명석 해설위원. 그는 중계석에서도 싸우는 방법이 독특하다. "나만의 방법으로 풀어가고 싶다"고 했다.
↑ 차명석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MBC스포츠플러스 제공
차 위원이 10년 전 LG 코칭스태프로 합류하기에 앞서 메이저리그 해설위원으로 활약한 것을 기억하는 팬들은 꽤 많았다. 그가 마이크를 다시 잡는다고 하자 과거 유행했던 '어록'이 인터넷상에 재등장하기도 했다.
복귀 멘트부터 웃겼다. "레다메스 리즈가 빠진 LG의 2014시즌을 냉정히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차 위원은 답변을 너무 쉽게 내놓았다.
"LG 트윈스는 새 시즌 엄청난 전력 보강을 했습니다"는 말로 좌중의 시선을 한데 모으더니 "LG는 투수코치를 바꾼 게 가장 큰 전력보강"이라고 답했다. 제법 곤란할 수 있는 상황을 재치있게 넘긴 것이다.
차 위원은 "남이 하지 않는 해설을 하겠다"고 했다. 시청자와 대화를 연인과 속삭임처럼 풀어가고 싶다고 했다. "해설은 사랑하는 여인과 대화하는 것과 같다"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늘어놓는 게 아니라 팬들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원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차 위원 해설의 배경에는 유머가 깔려있다. 수많은 어록이 탄생한 것도 김장 배추에 양념 배듯 말 속에 녹아든 유머 덕분이다. 차 위원은 "유머는 길면 안된다. 단문에 다 들어가야한다. 그 안에 함축돼 있어야 한다"고 '유머론'을 펼쳐냈다.
차 위원은 해설을 풀어가는 통로로 이른바 '팩션'(Faction)도 필요하다고 했다. 팩트(fact)를 기본으로 하되 픽션(fiction)도 살짝 배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어록 중 하나를 들면 "선수 시절 저도 1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투수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우리 투수코치님이 저한테는 '넌 10분에 한번 나오는 투수'라고 해서 상당히 기분이 나빴습니다"라는 식이다.
중계방송 중 유머가 툭툭 튀어나오는 것은 타고난 감각 때문이지만, 적잖은 독서량 덕분이기도 하다.
차 위원은 코치 시절에도 전지훈련지에 가면 책을 수북히 담아 고시생처럼 읽었다. "난 책 읽는 것도 여유있게 하는 편이 못된다. 전투적으로 본다"며 "그 덕분에 좋은 얘기들이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책장을 넘기다 결정적 힘을 얻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난해 시즌 중 신장 종양제거 수술을 받고 실의에 빠져있던 중에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Man is not made for defeat'(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구절이 눈에 들어와 용기를 얻었다.
LG를 떠난 뒤 중계석에 앉는 것을 놓고 갈등하면서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답을 찾았다. 차 위원은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싸운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또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한다'는 문구를 여러번 곱씹었다. 내가 깨뜨려야할 세계는 무엇인가 하는 고민 끝에 결심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역발산 넥센, 역발상 '염갈량' >>> (0) | 2014.04.18 |
---|---|
텍사스 추신수, 1억 쾌척으로 기부 '홈런' (0) | 2014.04.12 |
류현진의 불운과 리의 행운, 이것이 야구다 (0) | 2014.04.05 |
美 메이저리그는 하늘, 마이너리그는 땅 출처 (0) | 2014.03.16 |
김희애 "'꽃누나' 나영석PD, 그런 발상 누가 할까" (인터뷰) (0) | 2014.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