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에 진출한 한국 철강회사의 생산라인 모습 한중 수교 10년인 2002년을 전환점으로 우리 대기업의 중국 투자도 봇물을 이루었다. 하지만 다시 십수년 지금, 위기를 맡고 있다 | |
ⓒ 조창완 |
그런데 그때 내 눈에 들어온 중국 속 한국은 뭔가 위태로웠다. 그런 내용들을 정리해 2002년이 시작될 즈음부터 나는 <오마이뉴스>에 '차이나 드림'이라는 연재기사를 7차례 썼다. '중국은 있지만 우리가 얻기엔 멀다' '식지 않는 열기, 뒹구는 상처들' '그나마 10% 정도가 성공했다고 할까' '개인은 물론이고 대기업도 진출에 쓴맛' 등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 진출에 대한 우려와 신중을 요청하는 기사였다.
사전에 학습을 하고 시스템을 갖춘 대기업은 괜찮았지만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의 환호는 10년 만에 곡소리로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다.
▲ 황사 발원지인 네이멍구 주도인 후허하오터에 닥친 황사 오후 3시께인데도 황사로 인해 밤처럼 어두워진 후허하오터 역전 풍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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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중국을 확실히 각인시킨 사건이 일어났다. 대지를 어둡게 할 정도로 강한 황사가 베이징, 톈진을 지나 한국에도 몰아닥친 것이다. 이 황사는 중국의 환경 문제가 한국에게도 큰 위협이라는 것을 각인시켰다.
▲ 황사 발원지인 쿠푸치 사막 한국 황사의 절반 이상은 네이멍구 남쪽 마오우스 사막과 쿠푸치 사막에서 발원한다. 이곳은 사막화를 막기 위해 목양을 금지하지만 주민들이 생업인 목양을 버리기는 힘들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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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활동은 2008년 끝났다. 다른 일로 급거 귀국한 후 나는 중국 기상청 자료 등만을 근거로 황사 예측기사를 보도했다. 나는 그해 황사가 많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그해 황사는 약했다. 황사철이 지난 후, 나는 더는 '황사 예보'를 하지 않겠다는 기사를 썼다. 가장 큰 이유는 봄철에 강하게 불어 황사를 몰고온 편서풍이 지구 대기의 혼돈으로 인해 이제 힘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 2000년초 베이징 왕푸징에 등장한 중국의 헌혈차 매혈이 큰 수익이던 시기에 헌혈차는 신기했다. 하지만 헌혈 인구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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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세계는 한일 월드컵의 열풍 속에 빠져 들었다. 첫 본선 진출을 이룬 중국도 들떴다. 한국이 16강, 8강, 4강으로 가는 시간은 유학생들에게도 가슴 벅찬 시기였다. 한국인회나 유학생회가 주최한 응원장소에서 경기를 본 이후에는 거리로 나와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민국'을 외쳤다.
군중에 대한 두려움이 있음에도 공안도 이 순간만은 별다른 제제를 하지 않았다. 반면에 중국은 본선에서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실력차를 확인하면서 한국의 4강 신화를 씁쓸히 바라봤다.
척박한 지역인 농부인 천씨는 큰 아들이 공부를 제법하자 시안(西安)의 대학으로 유학을 보냈다. 한 학기 5000 위안에 달하는 학비를 댈 방법이 없어, 그는 9개 매혈소를 돌아다니며 전혈과 혈장을 파는 방식으로 한달에 300~400위안을 벌어 아들의 학비에 보탰다.
결국 분노한 천씨는 여론재판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대화'에 참여해 아들에 대한 감정을 풀어보려했다.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이 사건을 통해 독생자녀제도 이후 소황제가 된 아이들과 자신의 관계를 돌아보는 씁쓸한 사건으로 기억됐다.
▲ 삼협 물담기 전에 벌어지는 마지막 용주경기를 보기 위해 모인 우산사람들 장강 삼협의 중간인 우샤의 도시인 우산에서 축수전에 벌어지는 마지막 용주경기를 보기 위해 모인 시민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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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의 마지막날 창지앙 중류에 건설되는 산샤댐의 물막이 공사를 위해 뱃길을 끊었다. 1994년에 시작되어 2009년에 마치는 산샤댐은 호수 면적만 1만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용이었다.
▲ 굴원 고향 표지 장강 수몰로 마을을 옮긴 후 관리가 부실해 풀이 난 즈구이 굴원 고향 입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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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정치가이자 시인이었던 굴원(屈原 BC 343?~BC278)은 동양의 호메로스라 할 수 있는 비극 작가였다. 뛰어난 학식과 문장력으로 초 회왕(懷王)의 신임을 받아 두루 관직 생활을 했다. 그런 굴원을 막은 것은 유명한 연횡설을 추진한 진나라 장의(張儀)였다. 굴원은 약한 나라들이 힘을 합쳐 진에 대항하는 합종설을 추진하다가 결국 정치 일선에서 쫓겨난다.
▲ 운우지정의 고사가 나온 백제성에서 본 구당협 삼협 가운데도 가장 아름다운 구당협으로 들어가는 협곡 입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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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물막이 공사를 시작한 삼협댐은 2008년 10월 26일 완공됐다. 댐이 완공되기 얼마 전인 5월에 쓰촨성 원추안(汶川)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그 지진의 원인에 산샤댐이 있다는 주장도 많았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무엇보다 전력이 급했다. 매년 10% 경제가 성장하는 상황에서 산샤댐의 역할은 컸다. 산샤댐이 생산하는 전력량은 시간당 846억8000kw로 원자력 발전소 18기에 해당한다.
이 전기의 사용권에는 광둥성 지역은 물론이고 상하이도 포함되어 있다. 이곳은 산샤댐으로 전력난을 극복했다. 산샤댐의 환경적 위험을 알지만 그 대신 원자력 발전소 18기를 세우는 게 옳은가를 물어보면 쉽게 답을 하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10개월 후 내가 중국철학기행 취재를 위해 한 달 넘게 대륙을 헤맬 때, 용우가 태어났다. 귀국해 안산 처남집에서 잠시 머물던 아내와 막 태어난 용우를 보자 눈물이 났다. 아이를 생각해 다시 배를 타고, 톈진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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