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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밤중에 통일대박론' 미스터리

자연환경·국방. 통일

by 21세기 나의조국 2014. 2. 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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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밤중에 통일대박론' 미스터리

경향신문 | 권순철 기자 | 입력 2014.02.08 16:34

 

 

'아닌 밤중에 통일대박론' 미스터리

국내외 잇단 통일발언 우연의 일치인가… 지방선거 겨냥한 국내정치용 분석도


갑자기 봇물이 터지고 있는 최근의 통일론은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월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 대박론'을 언급한 게 신호탄이 됐다. 박 대통령은 당시 "저는 통일은 대박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통일이 되면 우리 경제는 굉장히 도약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때만 해도 통일의 시너지 효과를 언급한 말 정도로 여겨졌지만 그게 아니었다. 박 대통령은 이후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와 기고문을 통해 '통일 대박론'을 강조하고 있다.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통일 대박론을 앞장서 전파하고 있으니 뭔가 있다는 추정을 해도 이상할 게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집권 2년차 국정운영 구상을 밝히는 취임 후 첫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북한 급변사태 감지, 통일 대비하나


박 대통령뿐만이 아니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1월 14일 "통일시대를 대비해 통일 이후 공정거래법 운영방안에 대해 독일 사례 등을 연구해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고,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는 1월 17일 통일헌법 등 통일 관련 연구를 위해 통일연구센터를 설치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21일 남재준 국정원장이 송년회에서 "2015년에는 대한민국 체제로 조국이 통일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역시 2월 1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안보회의에서 "한국·일본과 남북한 통일문제를 협의하고 있으며, 중국과 이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물꼬를 트자 피리 부는 남자 뒤를 줄지어 따라가는 아이들처럼 고위당국자들의 통일론이 이어지는 형국이다.

 


통일에 대한 장밋빛 기대를 가질 만하다. 정말 일반 국민들이 모르는 사이에 (어떤 형태의 통일이든) 통일이 우리 앞에 성큼 다가서고 있는 것일까.

 


일부 북한 전문가들과 정보 관계자들은 한국과 미국의 고위 관계자들이 '통일'을 얘기하는 것을 뜬금없는 소리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전문가들 사이에선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 발언이 전혀 생뚱맞은 소리는 아닐 것이라는 기류가 힘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박 대통령이 '통일 대박론'을 주창한 배경과 관련해 세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첫째는 정부가 흡수통일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시각이다. 정부가 북한이 몇 년 안에 급변사태 발생으로 붕괴될 것을 감지하고 적극적으로 통일에 대비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추론은 북한의 정세 변화에 대한 분석에 기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 간부들로부터 일종의 '통일 플랜'이 공개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 조선일보 > 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1일 남재준 국정원장 주재로 열린 간부 송년회에서 남 원장은 "우리 조국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시키기 위해 다 같이 죽자"며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고 한다.

 

 

국정원이 예상한 통일 시점은 박근혜 정권 임기 내인 2015년이었다. 참석자들은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 아 이슬같이 기꺼이 죽으리라/'라는 내용의 '양양가'라는 독립군가를 합창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남재준 국정원장은 국회 법사위에서 '2015년 통일' 발언은 부인했지만 "북한의 불확실성이 증대됐기 때문에 북한 붕괴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그런 상황을 눈을 부릅뜨고 예의주시하라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평양에 있는 고아양육시설인 육아원과 애육원을 방문했다고 노동신문이 1월 4일 보도했다. / 연합뉴스

3월, 4월 남북문제 관련 중대 발표설



이와 관련, 여권 일각에서는 정부가 북한의 2인자였던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숙청을 계기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체제가 오래 못 갈 것이라고 보고, 북한의 급변사태를 염두에 둔 흡수통일 방안을 수립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정보기관에서 북한의 붕괴와 관련한 보고서가 청와대로 계속 올라가는 것 같다"며 "특히 북한의 급변사태 시기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고 있기 때문에 통일 얘기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 붕괴론에 따른 통일은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남한에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다. 경제력 등 여러 조건을 고려해볼 때 북한을 흡수하는 것은 남한에도 감당하기 힘든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한국개발연구원에 의뢰해 추정한 통일비용에 따르면 북한 급변사태 시 통일비용은 30년간 총 2조1400억 달러(약 2525조원)로 점진적 통일비용(약 379조9600억원)보다 7배나 많았다.

 


이 경우 통일은 자칫 '대박'이 아닌 '쪽박'이 될 수도 있다. 전문가들도 박근혜 정부가 흡수통일을 염두에 두고 '통일 대박론'을 얘기했다면 통일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통일'이라는 결론만 강조했지 어떻게 통일을 할지 그 과정은 설명하지 않고 있다.

 


특히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은 국제정치적으로도 쉽지 않다. 당장 중국이 남한의 북한 흡수통일을 지켜만 보고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국은 통일한국이 미국의 영향력 하에 있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 오승렬 한국외대 중국학부 교수는 "중국은 전략적 입장에서 북한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은 미국의 영향력 하에 놓이는 통일한국을 가장 염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둘째는 그동안 남북한이 물밑에서 접촉해 왔던 성과가 가시화되면서 '통일 대박론'이 나왔다고 보는 시각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남북간의 비공개 접촉설은 끊이지 않고 있다. 국회 정보위원인 정청래 의원은 정보위에서 실명(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을 거론하며, 청와대 관계자와 북한 고위관계자 간의 중국 접촉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남북이 공식 라인이 아닌 비선 라인을 통해 접촉해 왔다면 일반인이 알기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3월 또는 4월에 남북문제와 관련해 중대발표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남북한의 교류를 제한하고 있는 5·24조치 해제와 함께 남한 정부가 신의주~평양~개성을 잇는 고속도로 및 고속철도 건설 국제컨소시엄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최근 북한과 중국은 신의주~평양~개성을 잇는 380㎞의 고속철도와 왕복 8차선의 고속도로를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한 정보 소식통은 "최근의 여러 정황을 보면 남북한의 물밑접촉이 긴박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며 "여러 흐름상 3~4월쯤에 남북문제와 관련한 이벤트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재준 국정원장(왼쪽)이 2013년 12월 31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개혁특위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통일 기본입장일 뿐 확대해석 경계"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통일에 대한 기본입장을 밝힌 것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통일 무용론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로서 통일을 얘기한 것뿐"이라며 "북한과 관련해 특별한 정보를 갖고 '통일 대박'을 얘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에선 '통일 대박' 발언이 통일이나 남북문제와는 관계없이 지방선거 등을 겨냥한 국내 정치용으로 나왔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과정에서 복지담론을 통해 정국을 주도했듯이 올해부터는 '통일'이라는 어젠다를 갖고 정국을 이끌어 가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통일부가 2월 6일 업무보고에서 박 대통령의 공약인 DMZ 평화공원 건립과 관련해 북한과 합의 도출 및 사업 착수를 하겠다고 한 것과 러시아의 하산과 북한의 나진을 연결하는 물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정부가 경제계획을 다시 짜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도 남북통일이 핵심 어젠다에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전문가인 정창현 민족21 대표는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 발언은 복지담론에 이은 통일담론으로 정국을 주도하겠다는 표현"이라며 "청와대는 통일담론이 지방선거 등 정치분야뿐만 아니라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통일 어젠다는 지방선거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것이 여권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외교분야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박 대통령이 통일 어젠다까지 선점하고, 새누리당이 그 여세를 몰아 지방선거에서 승리한다면 박 대통령은 통치기반을 확고히 구축할 수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가장 염려하는 것은 지방선거 패배와 그에 따른 통치기반 약화, 새누리당에서 박 대통령을 대체할 새로운 인물의 부상"이라며 "'통일 카드'는 지방선거와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박'의 사전적 의미는 '운 좋게 어떤 일이 크게 이뤄지는 것'이다. 하지만 통일은 운 좋게 이뤄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남북한 간에 화해와 협력의 신뢰를 구축하고, 중국과 미국의 이해도 구해야 하는 고도의 정치적 노력의 결정체다.

 


알맹이가 생략된 '통일 대박론'이 뭔가 미스터리하고, 공허하고, 위험해 보이는 이유다.

 


<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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