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의 조강지처들
작성자 : 손승락님 2014.0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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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극도로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모르는 사람과 말 섞는 건 커녕 눈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고교 시절 가장 끔찍하게 여겼던 것이 점심시간이었다. 사람들 북적이는 카페테리아(학생 식당)에 가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그 때마다 그는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서 책이나 보는 게 마음 편했다. 그러던 중 사서 일을 돕고 있는 한 여학생에게 꽂혔다. 둘은 짝이 됐다.
그는 졸업 후 메이저리거가 됐다. 하필이면 빅리그에서도 가장 인기 없는 시골 팀 캔자스시티 로열스로 들어갔다. 어쩌면 사람 많은 걸 싫어하는 그에게는 딱 맞는 팀이었는 지 모른다. 그러나 3년째, 코치들과 한판 붙고는 유니폼을 벗었다.
여친은 그에게 의사를 만나보라고 설득했다. 병원에 갔다. 진단명은 중증 사회불안장애(social anxiety disorder)였다. 극도의 대인기피증과 걸핏하면 폭발하는 공격성도 그 때문이었다. 방치하면 일상적인 사회생활도 어려울 지 모른다는 의사의 말이었다.
절망이었다. 수많은 대중을 상대해야 하는 프로야구 선수에게 치명적인 장애였다. 끝없이 추락하는 그를 끝까지 붙들어준 것은 여자 친구였다. 1년이 넘는 치료기간 동안 그녀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다행히 증세가 호전되고 다시 마운드에 설 수 있었다. 그로부터 3년 뒤. 2009년 늦가을이었다. 그의 휴대폰 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그가 받을 리 없다. 잠시 뒤 확인한 음성 메시지에는 이런 말이 남겨져 있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사이영상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그로부터 3주 후 그와 그녀는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다저스의 선발투수 잭 그레인키다. 그의 조강지처는 에밀리 쿠차, 지금 이름은 에밀리 그레인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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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때까지 술,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오로지 야구 밖에 없었던 모범생이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은 어이없게도 단 하루였다.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쳐 잠시 야구를 쉬던 때. 심심해서 문신 업소를 찾은 날이었다. 거기서 만난 친구와 난생 처음 스트립바를 갔고, 난생 처음 위스키와 코카인을 경험했다.
이후 엄청난 탐닉에 빠졌다. 길거리에서 파는 마약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섭렵했다. 알콜은 더 심했다. 매일 위스키 1병을 마시지 않으면 견디지 못했다. 입단하면서 받은 400만 달러 가까운 계약금은 금새 탕진됐다. 살고 있던 집마저 경매로 넘어갔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영구 제명 처분이 내려졌다.
그러고도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잠시 끊었던 코카인을 사기 위해 또 아내에게 손을 벌렸다.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더 이상 아이들에게 마약에 찌든 아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어요." 남편은 집에서 쫓겨났다. 그후 그는 재활원을 8번이나 들락거렸고, 무려 11차례나 자살을 기도했다.
결국 마지막 순간 그에게 손을 잡아준 것은 할머니, 그리고 그를 내쫓았던 아내였다. 독실한 기독교도였던 아내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야구 공을 손에 잡았다. 화장실 청소와 그라운드 뒷정리를 해주는 조건으로 훈련장을 구했다.
간절함은 MLB 사무국을 움직였다. 조건부 복귀를 허락한 것이다. 일주일에 세차례씩 소변검사를 받아야 하는 치욕적이면서 까다로운 조항을 걸었다.
빅리그 복귀전은 3년만에 이뤄졌다. 그의 첫 타석을 알리는 장내 방송이 나가자 스토리를 아는 모든 관중이 일어나 22초 동안이나 박수를 보냈다. 그 중의 한 명은 그의 아내였다.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그는 현재 LA 에인절스의 외야수 조시 해밀턴, 그의 아내는 케이트 해밀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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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삭의 여자가 혼자 차를 몰고 병원으로 향했다. "저 지금 애가 나올 것 같아요." 긴 시간 진통 끝에 어려운 출산을 마친 이 여인은 병상에서 일어나 "집에 가겠다"며 병원 문을 나섰다. 의사와 간호사가 "지금 뭐하는 거야"며 말렸지만 막무가내였다. "다섯 살짜리 아이가 집에 혼자 있어요. 내가 가서 돌봐줘야 해요."
마이너리그를 떠도는 통에 객지에서 아이 둘을 혼자 키우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갑자기 우울증이 찾아왔다. 하지만 남편에게 내색도 할 수 없었다. 남편도 그 때 팔꿈치 수술을 받고 많이 힘들어 할 때였다. 속으로 꿍꿍 앓다가 심각한 자살 충동까지 느꼈다.
생활고와 극도의 스트레스가 겹친 탓인지 어느 날부터 그녀의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병원을 찾았다. 의사가 "잘못하면 영원히 시력을 잃을 지 모른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몇년만 기다려줘. 야구 그만두면 내 눈을 이식해 줄게"라며 아내의 손을 잡고 눈물 흘렸다. 아내도 한참을 따라 울었다.
긴 마이너리그 시절 통장 잔고는 늘 마이너스였다. 집세를 아끼려고 월 700불짜리 아파트에서 다른 선수 부부와 함께 살아야 했다. 그게 그들의 신혼생활이었다. 구단에서 한끼에 20불 씩 주는 식비를 아끼려 남편은 구장에서 먹다 남은 빵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들의 다음날 아침 식사였다.
그녀는 하원미, 남편의 이름은 추신수다. 아직 변변한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부부다.
중국 후한의 광무제가 미망인이 된 누나 호양공주의 새로운 배필감으로 신하 중 한명인 송홍을 점찍고 의중을 떠봤다. "사람이 귀해지면 사귐을 바꾸고, 부자가 되면 아내를 바꾼다고 하는데 그것이 인지상정아니겠는가?"
그러자 송홍이 조용히 대답했다. "아닙니다. 신은 가난하고 비천한 때에 사귄 벗은 잊으면 안 되고, 지게미와 쌀겨를 함께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쫓아내면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
지게미는 조(糟), 쌀겨는 강(糠)이라는 한자로 쓴다. 조강지처(糟糠之妻)가 유래된 고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