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도 나이들어도 집이 원수다
"주택경기 부양" vs "집값을 싸게" 장·청년층 세대갈등 우려까지
하우스푸어 장년층은 집값 하락 방지를 요구
20, 30대 무주택자는 전·월세 지원 대책 주문
정부, 양자 요구 수렴할 해법 못찾고 우왕좌왕
한국일보 배성재기자 입력 2013.08.21 03:37 수정 2013.08.21 11:01
대기업에 근무하는 김모(29)씨는 이사에 이골이 났다. 전남 목포가 고향인 김씨는 대학 진학을 위해 상경한 뒤 8번이나 집을 옮겼다. 처지에 맞는 집을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고 인터넷을 뒤졌지만, 대부분 보증금 없이 월세(25만~30만원)를 내는 6.6㎡(2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지내야 했다.
김씨는 "취직 후 1억원을 저축했지만, 서울에 방 3개 딸린 아파트에서 살겠다는 꿈이 언제 이뤄질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 20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부동산중개소 밀집지역에서 행인이 전세와 매매 시세표를 유심히 바라보며 지나가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회사원 이모(53)씨는 2007년 구입한 경기 용인시 기흥구 집 때문에 속을 썩이고 있다. 부동산경기가 뜨겁던 당시 171.6㎡(52평) 아파트를 6억8,000만원에 분양 받아 2009년 11월 입주했다. 은행에서 3억원을 대출받아 월 이자로만 160만원을 꼬박 납부하고 있지만, 현재 시세는 6억원으로 분양가 아래다.
월급이 한 달에 500만원이지만 은행 이자 외에 한 달 80만원인 관리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어 5,000만원 짜리 마이너스통장 잔고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씨는 "실거주와 노후대비 투자를 동시에 노리고 다소 무리해 구입했는데, 두고두고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한탄했다.
요즘 주변에서 "집은 '있어도 원수, 없어도 원수'"라는 말이 자주 튀어 나온다. 하우스푸어를 비롯 대부분의 주택 소유자들은 금융권 대출이자와 집값 하락으로 힘들어 한다. 또 집을 살 돈이 부족한 세입자들은 폭등하는 전세금을 맞추려 빚을 내거나 이사를 해야 한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지금 부동산시장만큼 유주택자와 무주택자 모두에게 '집이 원수'인 시기는 없었다"고 말한다. 주택 소유자 중에서 특히 심각한 처지는 무리한 대출을 끼고 집을 산 '하우스푸어'. 대출 부담으로 가계지출을 줄이는 가정이 157만가구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470조원으로 가계부채의 절반에 육박해 심각성은 진행 중이다.
유주택자ㆍ무주택자 모두 집으로 고통을 받고 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해법은 상충된다. 한국일보 설문조사 결과 주택 소유 비율이 높은 50대 이상 응답자는 ▦한시적 취득세 감면(34.4%) ▦다주택자 거래 활성화 유도를 위한 규제 완화(15.6%) 등 거래 활성화를 통한 주택경기 부양을 정부에 주문하고 있다.
반면 전월세난에 시달리는 20, 30대 응답자의 절반 가량은 '전ㆍ월세 거주자들을 위한 지원 대책'을 요구했다. 집을 적당한 가격에 팔아야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장년층과 달리 청년층은 좀더 저렴하게 '집'에 들어갈 수 있는 여건을 개선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김규정 우리투자증권 부동산팀장은 "정부가 주택소유 계층과 전월세난을 겪는 세대 간 요구 사항을 수렴하는 해법 도출에 실패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주택문제 해결을 위한 장년층과 청년층간 견해 차이가 새로운 갈등 구도로 굳어질 가능성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50대의 전체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74.6%, 60세 이상은 75.1%로 80%에 육박한다. 거주주택 이외 부동산 보유 비율도 50대 39.2%, 60대 이상 36.3%다. 장년층 이상의 세대들의 노후대책에서 부동산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가격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반면 40대 이하의 연령층은 치솟는 전셋값과 월세로 수입의 큰 비중을 빼앗기고 있고, 결국 저축이 부족해 집을 살 능력도 소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 결과 대학생 833명의 평균 주거비용은 21만4,000원으로 전체 지출 60만3,000원의 30.5%나 차지할 정도다. 임대시장의 월세화가 계속 진행될 경우 20, 30대 무주택자들의 거주비용 증가는 불 보듯 뻔하다.
전문가들도 최근 임대차시장이 다주택자가 많은 기성 세대들이 전세금을 대폭 올리거나 월세전환을 유도하면서 전월세난을 부채질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는 "아직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주택 정책을 둘러싼 세대 간 대립구조가 점차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점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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