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를 팔지 못하는 이유
세일러 (idca****)
지난 2007년 말 아파트 가격이 최고점 근처였던 무렵에, 저의 아주 가까운 지인에게 아파트 매도를 권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직접 거주하는 집이라면, 이는 투자자산이 아니므로 이런 상황이었다면 매도를 권해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분은 나이가 많은 분으로서 아파트 2채와 상가를 가지고 계셨고,
상가에서 나오는 임대소득으로 생활해나가시는 외에는 비상금으로 쓸 수 있는 여유자금(예를 들어 병이 들어 목돈이 필요하거나, 상가가 공실이 되는 경우)이 없으셨으므로, 아파트 한 채를 팔고 여유자금을 확보해두는 것이 합리적인 자산배분이겠기에 권해드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분은 지금까지 아파트를 팔지 못했습니다. 당시 8억을 넘어 9억원에 육박하던 시세가 지금은 5억 5천 정도로 떨어졌으니 당연히 후회하고 계시지요.
그 분이 결국 아파트를 팔지 못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생각한 것이 있었기에 글로 써보고자 합니다.
제가 2007년 말에 처음 매도를 권해드릴 무렵에 그 분은,
가격이 오르든 내리든 상관없이 팔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하셨습니다.
돈 쓸 때도 별로 없고, 돈으로 갖고 있으면 결국 다 써 버리게 된다,
반면 부동산으로 갖고 있으면 죽고 나서도 남을 텐데, 나이도 들고 했더니 뭔가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데야 더 권해드릴 방법이 없어서 얘기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2008년 중순 무렵 만났더니 아파트를 내놨다고 하십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 분이 보유한 아파트는 2008년 초부터 가격이 줄곧 하락하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가격과 상관없이 팔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계속 오를 것 같은 생각이 드니 팔 생각이 없다고 하신 것 뿐임을 알았습니다.
이 분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내놓은지 꽤 되었는데 통 보러오는 사람이 없다가 한 사람이 나서긴 했는데,
부동산 중개인이 매우 조심스럽게 매수가격 7억원 소리를 꺼내더랍니다.
이 분은 ‘아니 이게 얼마 짜린데 7억원 얘기를 할 수 있느냐’ 역정을 내셨고,
그 중개인은 아무 소리도 못하더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매수 희망자가 아무도 없었고, 결국 아파트를 팔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 2008년 10월에 세계 경제위기가 본격적으로 터지면서 아파트 가격은 아주 가파르게 하락했습니다. (아래의 서울 아파트 매매가 추이 그래프 참조)
<서울아파트 매매가격지수 추이(계절조정치)> (5월말 기준)
(출처: 국민은행의 자료를 필자가 가공)
(그래프 설명: 최근 석달간의 가격 추이를 보면 99.8 -> 99.7 -> 99.6 로 하락추세가 눈에 띄게 완화되긴 했지만, 아직 상승으로 돌아선 것은 아닙니다. 서울 전체 평균이므로 지역에 따라서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제가 책에서는 우리나라 아파트가격 하락 추세가 앞으로 가팔라질 것이라 예측했는데, 정부의 부동산대책으로 인해 하락추세가 완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일시적인 효과뿐 다시 하락추세가 가팔라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분의 걱정은 대단했습니다.
이 분의 말씀 왈,
사실 그 때 나는 팔려고 했는데 집사람이 부정적인 의견을 비추었기 때문에 팔지 못한 것이었다,
7억원만 받을 수 있으면 당장 팔겠는데(당시 호가는 6억대 초반), 그렇게는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그 이후로 반전이 다시 일어납니다.
위 그래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09년 하반기에 서울아파트 가격지수는 거의 전고점 수준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이 분의 아파트는 전고점 수준은 아니었지만 7억원을 넘어서서 회복되었고, 이제 거래도 이루어졌으므로 충분히 7억원에 팔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분을 만난 기회에 이제 7억원이 회복되었으니 파시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씀드렸더니,
이 분 말씀 왈, 그냥 더 두고 보지 뭐~
그 이후 가격은 재차 하락했고, 이제 다시 거래가 완전히 실종되어서 파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그 분도 민망해 하실 듯 해서 만나뵈도 더 이상 얘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작년말,
제 3자를 통해서 그 분이 아파트 매도를 진지하게 고민중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당시는 대선을 앞두고 정부가 부동산 상승의 분위기 조성에 힘쓰던 시기였고 그에 따라 거래가 좀 이루어지던 시점이었습니다.
그 분을 만났더니 앞으로 한국 경제가 너무 암담할 것 같다는 얘기를 하십니다.
그 참에 아파트 가격이 지금보다 더 떨어질 것이니 지금이라도 매도하시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해드렸습니다.
팔겠다고 내놓더라도 ‘제 값’을 받겠다고 들면 팔리지 않을 것이니, 초급매보다 더 싸게 내놓으셔야 한다, ‘인정작업’이라는 거래관행도 있다는 것까지 조언해드렸습니다.
나중엔 지금 가격도 못 받게 될 것이고, 그 때가 되면 지금 가격에라도 못 판 것을 후회하게 되실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분은 제 말에 공감의 뜻을 표하셨고, 집에 가서 집사람만 설득하고(지난 번에도 집사람 때문에 못 판 것이라는 얘기를 반복하십니다. 제가 보기엔 그게 아닌데…) 내일 당장 초급매가보다 더 낮추어서 팔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후 만났더니, 이제는 아예 확신범(?)으로 돌아스셨습니다. 앞으로 아파트 가격이 100% 확실하게 오를 것이라고 주장하십니다.
아마도 저와 얘기한 후 밤새 잠 못자고 고민하셨을 듯 합니다. 그리고는 끝내 ‘매도’라는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고, 그 결과 이제는 스스로 확신범으로 변신(?)하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요사이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힘입어 강남 3구의 경우는 매매가가 좀 오르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거래량도 꽤 늘었다는 뉴스를 보게 됩니다. 지금의 시장 분위기라면 그 분이 결심만 하면 아파트를 파실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 분의 반응이 어떨지 뻔하므로, (그냥 더 두고 보지 뭐~)
만나게 되더라도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입니다.
이 분이 아파트를 팔지 못한 과정을 돌아보면,
결국 ‘탐욕’이 문제입니다.
제가 탐욕이라는 말을 쓴다고 해서 그 분을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 또래의 나이드신 분들은 거의 똑같으시기 때문입니다. 40년간 지켜보아온 경험(아파트 가격은 결국은 다시 올랐다…)이 그렇게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을 지켜보면서, 결국은 하늘의 순리대로 가고 있 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세대간 문제’이기도 합니다.
지금 그 분이 아파트를 판다면, 그 매수자는 그 분보다는 훨씬 젊은 세대가 될 것입니다.
이는 그 분이 이익을 실현하고 젊은 세대가 그 부담을 떠안는 꼴이 됩니다.
그 보다는 지금까지 부동산 버블을 쌓아올린 주역인 그 분 세대에서 부동산을 팔지 말고 계속 안고가서,
버블 붕괴의 부담도 그분들 세대에서 그대로 감당하는 것이 ‘세대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는 더 합리적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접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 분은 큰 문제가 없기도 합니다. 여유자금이 거의 없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최소한 그 분은 부채가 전혀 없으십니다. 나중에 혹시 곤란한 처지에 빠지더라도 부동산 3채가 ‘순자산’이니 헐값에라도 팔면, 그 분의 인생 자체가 심각한 사태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무리한 담보대출을 동원해서 아파트를 매입한 젊은 세대겠지요.
이 분들 역시 스스로는 아파트를 매도하지 못할 듯 하고,
그 점이 심각하게 걱정되는 것입니다.
새로나온 책 링크: 착각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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