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무법천지

층간소음 무법천지

세일러 (idca****)   2013.02.12 09:31

 

 

 

즐거워야 할 설 명절 연휴 기간 동안, 9시 뉴스에 층간소음으로 인한 살인사건이 두 건이나 보도되어 매우 충격적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칼로 찌르고, 화염병 던지고… 죽음 부른 이웃 간 층간소음 경향신문 2013.02.11

 

특히 두 형제가 칼에 찔려 숨진 사건에서 형은 결혼한 지 두 달밖에 안된 신혼부부로, 결혼 후 첫 명절을 맞아 부모집을 찾아왔다가 변을 당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접하고서 저는,

이 형제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 이 ‘사회’라는 사실에 화가 납니다.

 

이 형제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아래층에 사는 남자가 아닙니다.

오로지 ‘탐욕’ 밖에 모르는 이 잘못된 ‘사회’가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이 사건의 내용을 보면, 윗층과 아랫층 사이에 벌어진 ‘다툼’을 해결하기 위해 피해자가 ‘자력구제’에 나서다 보니 감정싸움, 몸싸움에 이른 것입니다.  이는 글자 그대로 ‘무법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 중세나 서부시대도 아니고, 어떻게 2013년도 대한민국에서 ‘무법천지’ 상태가 그대로 방치되어,

한창 장미빛 꿈에 부풀어 있었을 신혼의 젊은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일까요?

 

외국에도 아파트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유럽의 경우는 우리나라보다도 훨씬 역사가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유럽의 어떤 나라에서 층간소음 때문에 살인사건이 벌어졌던 적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사례는 매우 비정상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래 기사의 말미에 보면 스위스에서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 간에 몸싸움이 벌어질 일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앉아서 오줌 누는 남자들 주간조선 2012.09.09

 

한밤중에 위층 화장실에서 남자가 서서 오줌을 누면, 아래층까지 들리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남자들이 앉아서 오줌을 누는 것이 아파트 생활의 기본적인 예의가 되고 있습니다.

스위스의 경우에는 밤중에 집안에서 서서 오줌을 누는 소리가 들리면 곧바로 벌금형에 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오줌을 누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으로 곧바로 벌금형에 처하는 것으로 규칙이 명확하기 때문에, 아래층 위층간에 감정싸움, 몸싸움이 벌어질 여지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영국 런던의 경우도 산업혁명을 주도했던 도시인 만큼 아파트의 역사가 긴데,

층간소음에 관한 공동생활 규칙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든지, 애들이 집안에서 뛰어다니느라 아래층에서 층간소음이 들리면, 그 집은 아파트에서 그냥 ‘나가야 합니다’.

 

그 때문에 한국에서 건너간 교민들은 애를 키우는 경우 매우 당황하게 됩니다.

쫓겨날까 걱정하느라 숨도 제대로 못쉬고 산다고 하소연하는 경우를 자주 보았습니다.

 

이처럼 공동생활의 규칙이 명확하기 때문에 주민간에 감정싸움이 발생하고 무법천지인 ‘자력구제’가 횡행하는 일은 구조적으로 생겨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층간소음 처벌에 관한 명확한 법규정이 없습니다.

 

번거로운 절차를 모두 밟고서야 기껏 손해배상금 몇 십만원을 받거나, 상대방이 벌금형에 처해지는 정도인데, 그 경우에도 층간소음을 공동주택 생활에서 오는 불가피한 부분으로 보고 ‘용인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에만 처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처벌한다고 해도 몇 십 만원 정도의 벌금일 뿐입니다.

 

그 때문에 이웃간의 다툼이 사회제도를 통해 해결되지 못하고, 격분한 아랫층 사람은 감정적으로 격앙되어 끝내는 끔찍한 살인사건에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21세기 대한민국의 사회제도가 어째서 이토록 낙후된 상태로 방치되고 있을까?

를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 막강한 ‘건설족 카르텔’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달리 이유를 찾을 수 없다고 봅니다.

 

아파트의 층간소음이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부각되면,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위스나 런던처럼 아파트의 공동생활 규칙이 강화되면(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파트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파트는 결국 ‘내집’이 아닙니다.

 

아파트의 벽, 천정, 바닥은 다른 집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즉 아파트는 다른 사람과 ‘공유한 주택’이지 ‘내집’이 아닙니다.

 

내 아이가 아무 걱정없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내집’이 아닌 것입니다.

 

결국 아파트는 런던의 경우처럼 애가 있는 가족은 쫓겨날 것이 두려워 숨도 못쉬고 살아야 하는,

불편을 감내하며 잠깐 거쳐가는 곳이지, 영구히 정착할 수 있는 내집이 아니라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 때문에 그동안 우리 사회는 막강한 ‘건설족 카르텔’의 영향력으로 인해, 아파트의 층간소음 문제에 대해 애써 고개를 돌리고 외면해온 것입니다.

 

 

작년에도 층간소음 문제로 인해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고 보면 최근 수년간 층간소음 문제로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는 경우가 유달리 잦다는 느낌입니다.

 

저는 그 이유가 역시 아파트 가격 하락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봤습니다.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던 동안에는 무의식 중에 층간소음도 참을 만 했습니다.

 

하지만 수년째 아파트 가격이 계속 하락하는 상황이 되자 층간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더욱 강하게 인식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봤습니다.

 

어쨌듯 이번 설 명절 연휴에 벌어진 사건은, 전국적으로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회자되었던 만큼 앞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래 언론기사들에서 보듯이 주요 언론들도 이 문제를 외면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살인 부른 층간소음 … 대한민국의 비극 중앙일보 2013.02.12

 

[사설] 층간소음 갈등,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2013.02.12

 

[사설] 이웃 살인 부른 층간 소음, 명확한 규제 기준 세울 때 조선일보 2013.02.12

 

[사설]층간 소음문제 정부가 나서라 경남도민일보 -38분전

 

 

이처럼 층간소음 문제가 주요한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결국 앞으로 이 문제에 관한 규칙과 법제도가 정비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21세기 대한민국의 ‘무법천지’, ‘자력구제’의 상황이 해소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공통주택’인 아파트의 실체가 제대로 인식되면서, 아파트 가격의 대세하락은 더욱 촉진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새로나온 책 링크: 착각의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