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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보수였던 날것의 노무현'을 다시 만나다

노짱, 문프

by 21세기 나의조국 2013. 1. 2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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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보수였던 날것의 노무현'을 다시 만나다
(서프라이즈 / 권종상 / 2013-01-23)

 


한국 대선 이후로 팟캐스트들을 아무래도 덜 듣게 되었습니다. 아픔이 자꾸 되살아나기 때문에 그랬겠지요. 이렇게 형편없고, 국가와 민족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인간들에게 또 정권을 넘겨 주는건가 하는 생각 때문에 무척 아팠고, 묵은 팟캐스트들을 다시 듣는 건 그런 아픔을 더더욱 심하게 되새기곤 했습니다. 마치 상처입은 자리에 소금을 뿌리는 것처럼.

 

반대로 말하자면, 그런 팟캐스트들을 다시 저장했던 폴더에서 꺼내어 들을 수 있는 지금은 약간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이라고 봐도 되는 걸까요. 물론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그때 이들이 어떤 근거로서 우리의 승리를 자신했었는지를 돌아보고, 우리가 어떻게 다시 완벽한 승리를 되찾아올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을 찾아본다는 의미에서도, 복기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래서 잡았던 책 하나가 노무현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를 주었습니다. '여보, 나 좀 도와줘'라는, 가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날것의 노무현' 그대로의 목소리입니다.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의 국회의원 도전 시절의 자서전입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돌아보며 가장 아픈 것은 선거결과는 차치하고라도 노무현 정신 자체가 부정되는, 그것도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 자신들이 노무현 정신을 이어받을 수 있는 적통이라 강조했던 사람들의 입과 손으로 노무현 정신이 부정되는 꼴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노무현은 진보가 아닌 정통보수쪽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평가하는 사람들이 노무현을 '진보'로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사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잘못된 잣대로 사상과 철학을 논하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예죠. 진정한 보수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가치를 지키려 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체제를 수호하려 하는 것은 보수가 아니라 극우입니다. 그들이 쫓아가는 가치는 공적 영역에서보다는 사적 영역으로 귀결된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야당이라고 하는 민주당에서조차 극우적인 성향을 보이는 인물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정당을 진보의 맏형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한국 사회는 가치의 혼돈으로 인한 일종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진단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노무현이라는 한 인물이 가장 진보적이었을 때는 대통령 퇴임 후 고향에서 시민 사회의 변혁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를 '진보'로 보았던 사람들을 적잖이 실망시켰던 대통령 재직 시절이 아니라, 농민들과 숨쉬고, 온라인을 통해 시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었던 그 때야말로 노무현이 가장 진보적인 고민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그가 부미방 사건의 변호사로 있을 때나 혹은 그 전에 부림 사건의 변호를 맡았을 때 그에게 의식이 생겨났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전 1년 정도의 기간은 아마 진보적 고민이 오히려 그의 의식 안에서 더욱 치열해지는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진보라는 말은, 그의 퇴임 이후를 두고는 고려해볼만한 말이지만, 그의 재직 당시의 모습은 분명히 보수입니다. 제대로 된 보수가 없다는 것은 이 땅에 지켜야 할 원칙들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보수에서도 표창원 교수나 윤여준 전 장관이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것은, 문재인 후보가 가지고 있는 진보성이 아니라 진정한 보수주의자로서의 문재인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한국 땅엔 진정한 보수가 없습니다. 그 때문에 진보 역시 진정한 진보로 서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극우들이 정권을 잡으면, 아무리 잘 해 놓은 개혁이라도 어떤 식으로 변하는가를 지난 5년동안 똑똑히 보아 왔지만, 그 반세기를 훨씬 넘어 달려온 극우의 관성은 그대로 선거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보수는 지켜야 할 룰을 압니다.

 

그러나 극우들은 그런 룰은 상관 없이 자기들이 마음대로 잣대 자체를 바꾸거나, 존재하는 자의 눈금을 무시해 버립니다. 그리고 그 잘못된 잣대의 관행으로 인한 피해는 아직도 극우와 보수조차 구분 못하는 우리 사회 안에서 지역주의의 암덩어리로, 봉건잔재의 종양으로 남아 있습니다.

 

노무현의 자서전, '여보 나 좀 도와줘'를 덮을 즈음, 저는 다시 그가 얼마나 진정한 보수주의자였는가를 새삼 발견하게 됐습니다. 우리 사회에 진정한 보수 우파가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런 보수 우파들조차도 '빨갱이'라는 낙인을 참 쉽게 받게 되는 이 사회 구조는 결국 남북의 분단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체제 우선을 외치며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남북의 권력층의 장악력만을 단단하게 만들 뿐입니다.

 

시민사회가 깨어나 민주사회를 이루는 것은, 잘못된 잣대를 제대로 되돌리고 분명히 지켜지는 룰을 만드는 것이며, 통일에 한발짝 더 다가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사회야말로, 사실은 가장 보수적인 동시에 진보적으로 나갈 수 있는 분명한 발판이 생기는 지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애틀에서...

 

권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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