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경보! 12.19 '노무현'이 상륙한다.
글쓴이 : 시다의꿈 날짜 : 2012-09-17 (월) 16:00
지구는 자전하면서 태양의 주위를 돌기 때문에 낮과 밤, 계절의 변화가 생기며 이로 인해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받는 열량의 차이가 발생한다. 적도에서는 태양 일사에 의한 열에너지가 풍부하고, 극지방과 같은 지역에는 열에너지의 결핍에 따른 열적 불균형이 일어난다.
이런 열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현상 중, 저위도 지방의 따뜻한 공기가 바다로부터 수증기를 엄청나게 공급받으면서 강한 바람과 많은 비를 동반하며 고위도로 이동하는 기상 현상을 태풍이라 한다. 태풍은 전 지구 에너지 및 물 순환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즉 태풍은 지구 생태계에 에너지와 물이라는 필수요소를 분배하여 공존 가능한 환경을 유지하는 ‘생명의 파수꾼’ 인 것이다.
각각 2002년과 2012년 대한민국을 뒤집고 흔들어 정치 사회적 불균형을 해소하고 경제적 부와 국민적 자긍심을 분배할 운명을 가진 사나이 둘이었다. 두 사람은 첫 만남에서 동기감응(同氣感應)의 진기한 경험을 했다. 무언가 단단한 끈으로 오래 전부터 둘을 이어온 느낌! 마치 오래 전에 헤어진 쌍둥이 형제를 상봉한 그런 인상을 서로 주고받았다. 어쩌면 그 느낌은 그제까지의 공통된 삶의 경험에서 나온 것인지 모른다.
술과 담배도 배우고 쌈박질도 하던 조숙했던 두 사람은 이후 비슷하면서도 다른 청춘을 보낸다. 한 사람은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막노동과 공장 노동자로 70년대 처참한 노동현실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야 했고 다른 한 사람은 4년 장학생으로 대학에 진학했으나 유신독재의 폭거에 맞서 싸우다 영어의 몸이 된다.
이후 두 사람은 군제대후 사법시험의 합격으로 입신양명의 위치에 자신들을 일으켜 세웠으나 자신들의 길은 다른 곳에 있음을 깨닫고 고향에 돌아와 새 길을 찾았으니 바로 힘없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인권 변호사의 길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80년 대 초반부터 부산경남지역의 시국관련 재판의 무료변론과 노동 상담을 전개했으며 그 후 많은 동지들을 규합하고 시민들을 모아 민주화운동을 주도하고 적극 참여하여 87년 부산지역 재야운동의 구심이 되었다.
그 진기한 인연은 운명처럼 서로를 묶어서 이후 30여년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꾸는 주역이 되게 하였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얘기는 2002년 이후부터 2012년 현재까지와 2012년 이후부터 전개될 두 사람의 지속되는 이야기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이처럼 변방의 세력도 금력도 없는 고졸 출신의 비주류 정치인이 최고 권좌에 등극한 사례는 전무했으며 후무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역사의 진짜 주인인 다수 국민 대중의 뜻이 민주적 절차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할 수 있는 선거제도의 힘이었다.
노무현은 세 번에 걸친 국민의 적극적 의사표시로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그 첫째가 민주당의 국민경선이었고 두 번째가 정몽준과의 후보 단일화를 결정한 여론조사였으며 세 번째가 정몽준의 막판 단일화 파기에도 흔들림 없이 역대 최다 표를 몰아준 대통령 선거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당시의 헌재는 7대 2의 결정으로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켰을 것이다. 헌재의 결정문은 기각과 가결 두 가지로 작성되어 회람되고 논의되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총 4번에 걸쳐 국민의 직접적 의사표시로 그 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치에선 절차적 민주주의의 교본이라 할 만큼의 철저한 법치주의를 확립했다. 헌법과 법률이 정한 권한 범위 안에서 법적 절차에 따라서 그 권한을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사용하여 권위주의 타파와 수평적 토론 문화의 사회적 정착에 기여했다. 그야말로 인터넷 논객의 전성시대였다.
정치에 입문한 이후에는 수구 기득권 세력이 키운 ‘지역주의 망령’이란 괴물과 모든 걸 던지고 투쟁했다.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선 온갖 궁물들의 기회주의적 반칙에 맞서 대결했다. 대통령이 돼서는 수구세력 전체와 건곤일척 양보 없는 전쟁을 벌였다. 몇 번의 실패와 좌절은 있었지만 결코 항복하지도 후퇴하지도 않고 국민의 위임권력을 수호하며 국민이 명한 전장의 최전선을 지켰다.
그리고 퇴임 후 마지막 운명을 건 싸움에서도 그는 끝끝내 타협하지 않고 자신에 투영된 국민의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표표히 생의 본능마저도 던져버렸다. 노무현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설치류 정권의 하이에나들이 계획한 은팔찌를 채워 죄수복을 입혀 감방에 가두고 능욕하려는 시나리오는 실연되지 못했다.
그들의 조소는 공포로 변했고 아들을 잃은 국민은 부모된 심정으로 그의 마지막을 애통해했다. 그리고 다시 복수를 다짐하며 노무현을 부르고 있다.
이제 노무현이 국민에 소환되어 대통령 후보로 나선지 정확히 10년 후 노무현 보다 7년 젊은 부산의 한 사나이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전장에 나섰다. 그는 노무현과 아주 닮은 사람이지만 또 다른 기질의 사나이다. 노무현이 목적의식적으로 상황을 돌파해 나가고 저돌적으로 부딪히는 바람의 파이터 라면 이 사나이는 태산처럼 흔들리지 않고 미동도 없이 나타나 적진을 가만히 응시하기만 하는데도 적들이 사기를 꺾고 혼비백산하는 내공을 가졌다.
제 아무리 날고기는 책사와 술사가 모여 지략과 꾀를 내어 함정을 파고 뒤를 캐도 무소의 뿔처럼 소리 없는 바람처럼 적진을 하나하나 돌파하여 나아간다. 적들이 분열과 공포를 무기로 아군을 교란하자 이 사나이는 통합과 단결을 내세워 아군의 사기를 높이고 긍정과 화합의 다리를 놓아 대선의 대결장에 우뚝 섰다.
청계천에서 시작해 온 나라 강토를 죽음과 파괴의 돈놀이 삽질로 파괴한 저 박정희 날강도, 살인마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근혜 세력에 의해 난도질당해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어머니 대지위에 다시 생명과 소망의 씨를 뿌리기 위해 저 썩은 무리를 걷어치워야 한다. 바로 이 간고한 국민의 염원을 실현하기 위해 그 굳게 닫힌 희망의 문을 열기위해 문재인이 이제 국민 앞에 나선 것이다.
노무현의 정치 인생역정에서 그가 얻은 지혜와 청와대 5년간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성취한 깨달음이 그대로 복제되어 전수한 사람이 바로 문재인인 것이다.
노무현이 말한 구시대의 막차는 이제 문재인의 새 시대의 맏형에게 그 바톤을 넘겨주게 되는 것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 못하게 됐습니다.” 문재인의 저서 『운명』의 마지막 문장이다.
문재인 이후의 운명의 바톤은 누구에게 전해질 것인가? 국민이 주목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문제인 보다 일곱 살 어리다. 그 또한 정치역정 내내 시련과 좌절 비난과 공격에 시달리며 묵묵히 제 길을 가고 있다. 문재인이 노무현의 정치적 샴 쌍둥이 라면 그는 노무현의 분신이다.
문재인은 그를 노무현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풍운아적 도전정신이 정말 노무현을 빼닮았다고 느낀다. 그리고 고난 속에서도 더욱 영글어가는 눈동자에서 승부사를 넘어 고독한 수도사의 고뇌를 본다. 이렇게 노무현의 사람들이 3대만 정치를 주도 할 수 있다면 내가 꿈꾸는 사람 사는 세상의 마지막 고개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아마도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 최초로 이 고개를 넘어서는 나라가 되지 않을 까? 그리하여 우리의 자녀들이 그 세상에서 활껏 개성과 창의를 발휘하여 인류문명의 미래를 열어가는 그 날이 올 것을 믿는다.
이 강도 정권 5년간 누적된 부정과 부패의 거적더기를 날려버리고 기득권의 철옹성에 파열구를 낼 초대형 태풍이 북상 중이다. 벌써 멀리서 파랑이 일렁이고 바람 소리 거칠어지고 죄지은 자들은 숨을 죽이고 있다. 이 태풍은 3년 전 하늘로 소멸해간 그 태풍을 닮아있다. 처음 발생한 곳과 처음 이름을 불러준 사람도 같다.
그러나 지난 5년간 이 쥐새끼 정권의 패악무도한 학정에 질린 사람들의 분노의 열기를 빨아들여서 그 반경과 세기는 훨씬 크다고 알려졌다. 북상하면서 점점 그 크기와 위력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이명박근혜 진영에 피해있는 사람들은 주의하기 바란다. 태풍의 방향과 속도로 보아 그 진영의 성곽을 싸그리 무너뜨릴 것 같으니 말이다.
살고 싶은 사람들은 국민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들으라. 그리고 신속히 대피하기 바란다. 사람 사는 세상의 이정표를 따라 가다보면 살 길이 생길 것이다.
키워드 : 문재인,노무현.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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