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례로 돌아보는 ‘주택 소유 정책’의 결말
공돌이 (ding****)
부동산에 대한 마지막 규제완화를 앞둔 상황에서
1. 4.11총선의 여파 - 마지막 남은 규제 풀기
4.11총선이 야당의 패배와 보수 집권 여당의 승리로 결론나면서 웃었던 것은 여당의 대선후보 박근혜의원만이 아니었다. 우선 재벌들이 희색이 되었다고 각 언론매체들이 분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재벌들이 야당의 패배를 반긴 것은 공인된 분위기다. 물론 야당이 이겼다고 한들 이들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강도 높게 재벌개혁을 추진했을지, 그리고 그에 대해 과연 당사자인 재벌들이 두려워 하기는 했을지는 미지수다.
재벌과 함께 총선 결과를 크게 반긴 세력은 부동산 부양에 이해관계가 큰 집단이 아닐까 싶다. 총선이 끝난 바로 다음날인 4월 12일, 건설업계를 대표하는 한국주택협회가 19대 국회에게 1) 분양가 상한제 폐지 2) DTI(총부채상환비율) 등 금융규제 완화 3) 투기지역 해제 4) 다주택자 양도세 일반세율 적용 5) 매입임대주택사업 규제완화 등에 대한 협조를 요청키로 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던 것이다.
투표결과가 미처 정리되기도 전에 차기 국회에게 이런 보내는 요청을 언론에 내보낼 정도이니 얼마나 이들의 요구가 간절했던 것인가?
기업 친화적일뿐 아니라 지독히 건설업 친화적인 이명박 정부가 무려 6차례를 통해 부동산 규제완화를 해주어 거의 다 풀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가격규제, 금융규제, 조세규제, 제도규제들마저 최종적으로 풀어달라는 것이다. 규제라고 이름붙이기도 민망한 마땅히 기초적인 시장질서가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만이 남아있는데도 말이다.
또한 현재 인구학적 주택 수요로 보나, 가계부채와 같은 금융여건을 보나, 소득수준 등 어떤 측면을 보아도 과거 10여 년 동안의 과잉 거래, 과도한 가격, 과도한 차입을 지속할 수 없는 데도 불구하고, 그 수준으로 복귀하려는 부질없는 열망을 담고 있다.
지금은 자산 투기장 노릇을 해온 주택시장을 마감하고 다수 국민들의 주거를 위한 복지정책으로 전환하려는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다. 그런데 건설업자와 다주택 소유자들, 투기세력과 금융업자들이 총선결과를 등에 업고 다시 이를 되돌리려는 것이다.
사실 6월에 개원하는 19대 국회를 기다릴 것도 없다. 임기를 1년도 남지 않은 현 정부가 5월 안으로 건설업자들이 바라는 강남 투기지역 해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완화, 매입 임대주택 규제완화 등을 발표할 준비를 서두른다는 소식이 들리기 때문이다. 물론 마지막 남은 규제를 푼다고 해서 시대를 되돌릴 가능성이 많아보이지는 않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여전히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거래 활성화’라는 명목이, 위에서 사례를 든 부동산 규제완화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른바 ‘주택을 소유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주택을 소유하는 것이 진정 우리 국민의 염원인가, 아니면 안정된 주거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국민의 바램인가?
주택 소유가 염원이라면 어떻게 해든 많은 국민들에게 자기 소유의 집을 갖게 만들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주택거래시장에 넉넉한 주택을 공급해야 하며 거래가 활성화되도록 정부가 각종 정책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소유가 아니라 주거 공간이 필요하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주거복지 정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주택 소유’를 정책적으로 극점에까지 밀어붙인 결과 전대미문의 부동산 시장 붕괴와 가계 파산, 그리고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초래한 미국의 사례를 돌이켜보고 교훈을 찾을 필요가 있다. 마침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경제학자 출신인 시카고대학 라구람 라잔(Raghuram Rajan)교수가 금융위기를 다룬 2010년 저작『폴트라인( Fault Lines)』에서 이 문제를 실감나게 다루고 있어 일부 논지를 확인해 보겠다.
2008년 금융위기를 금융시스템 문제 뿐 아니라 미국 정부의 주택 소유정책과 연계시키면서 잘 풀어나간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이하의 인용 글들은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라잔 교수를 인용한 것이다.
2. 소득 불평등을 가계대출로 은폐하라.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위기가 소득 불평등을 주택 소유로 은폐하고자 했던 미국 정치의 유혹이 작동했음을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사람이 바로 시카고 대학 라구람 라잔(Raghuram Rajan)교수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경제학자 출신이기도 한 그는 금융위기를 다룬 2010년 저작『폴트라인( Fault Lines)』에서 소득 불평등과 주택 소유를 조장한 정치세력, 그리고 이를 지원하며 고수익을 올린 금융회사들의 행위를 상당히 실감나게 묘사해주고 있다.
우선 1980년대 이래 미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로 라잔 교수가 지목한 것은 ‘소득 불평등’이다. 로버트 라이시 교수가 소득 불평등이 경제위기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불평등이 위기를 일으킨 근본 원인이기도 하고, 또 위기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 핵심 이유이기도 하다는 분석이 훨씬 더 광범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라잔 교수가 풀어냈던 논지는 이렇다. 미국 정치권은 심화되어가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유럽처럼 세금을 걷어 소득 재분배를 시행하고 복지를 확대하는 정책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의 생활수준을 개선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금융 대출 규정을 완화하는 것이었다.
소득 불평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미국의 중산층 가구들은, “원래 하던 소비 패턴을 계속 유지할 수만 있다면, 몇 년에 한 번씩 차를 바꾸고 외국으로 가끔 휴가를 떠날 수 있다면, 월급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사실을 정치인들은 눈치 챘다.
그리하여 정치권이 소득 불평등 심화 대응책으로 찾아낸 것이 바로 저소득 가구에 대한 신용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이 대응책이 주는 소비증대와 고용 증가 효과는 바로 나타나는 반면 이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는 미래로 미룰 수 있다.”
“가계 대출 확대야말로 여러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정치인들은 믿었다. 가계 대출을 확대하게 되면 집값이 상승하고, 집값이 상승하면 국민은 자신들이 더 부자가 되었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의 소비가 자연스럽게 증가할 것이다.
가계 대출 확대는 금융 산업 뿐 아니라 부동산 중개업, 주택 건설 분야의 수익과 고용증대를 가져오는 효과도 유발할 것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모든 면에서 안전한 방법으로 보였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1990년대 클린턴 정부가 선택한 것이 ‘저소득 계층위한 서민용 주택 건설’이었다. 저소득 계층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시켜준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집을 살 자금이 있을 턱이 없으니 저소득 계층을 위한 대대적인 대출 규제완화 방안들이 강구되었고 실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정책의 정점에 2000년대 부시행정부의 선거공약이기도 했던 ‘주택소유사회(Ownership Society)'가 있었다. 2002년 행한 부시 대통령의 연설 일부를 보면 주택 소유사회라는 환상을 미국 시민들에게 어떻게 심어주었는지를 금방 알 수가 있다.
“무엇인가를 보유한다는 것은 아메리칸 드림의 일부이기도 하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국민 누군가가 내 집을 마련한다면, 그들의 아메리칸 드림은 현실이 되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어제 아틀랜타에서 새롭게 집을 마련한 주민들의 신규 주택단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그곳에서 아메리칸 드림이 실현되는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집 주인은 자부심 넘치는 얼굴로 ‘내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얼굴은 자부심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와 같은 자부심이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기를 바랍니다.”
3. 2008년 금융위기와 물거품으로 돌아간 소유의 꿈
2000년 부시 대통령 집권 이후 집권 마지막 해인 2008년 금융위기가 발발하기까지 미국사회에서 부동산 광풍이 어떻게 휘몰아쳤고 어떻게 파산했는지는 이제 너무 알려져 있어서 생략한다. 다만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외형적으로는 1990년대초 64% 전후였던 주택 소유비율(주택소유가구/전체 가구)이 부동산 거품이 정점에 올랐던 2004~2006년 사이 69%수준까지 올라가기는 했다. 부시 대통령이 주창했던 주택 소유자 사회(ownership society)가 막 실현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
그러나 2006년 말부터 주택거품이 꺼지기 시작했고, 서브 프라임 대출을 받는 저소득 계층들이 부채 상환을 하지 못해 파산하면서 경제위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2011년까지 5년 동안 주택소유비율은 급격히 재 추락하기 시작하여 66%까지 내려 왔다.
작년 여름 기준 통계를 보면 모기지 대출 상환이 연체된 주택이 438만 가구이고 압류가 임박한 주택은 350만 가구, 그리고 압류 절차를 밝고 있는 주택이 215만가구라고 집계되었다. 부동산 거품이 꺼진지 5년이 지난 2011년에도 여전히 약 1천만 가구가 압류 위협에 시달리거나 곧 시달리게 될 처지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주택 소유비율이 66%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추락할 것임을 암시한다.
이것이 지난 20년간 주택이라는 재산의 사적 소유 열망을 정부와 금융회사가 부채질하여 얻은 결말이다. 라잔은 이렇게 지적한다. “저소득 계층 가구들에게 원래부터 내 집을 마련하려는 계획이 있었을까? 앞에서도 강조했듯이 이들 저소득 계층의 소득은 당시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오히려 감소 추세에 있었다.
그런 점에서 저소득가구에게 무리해서 집을 구입하려는 계획 따위는 원래 없었을 것이다.” 있지도 않은 소유욕을 부추기고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가계 대출을 쏟아 부었다고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정부가 조장하고 금융이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긴 주택 소유의 꿈은 거대한 부채를 남긴 채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처음부터 숙제를 다시 풀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소득 불평등 말이다. 깊어만 가는 소득 불평등을 부채로 감추기 위해 주택소유자 사회라는 화려한 간판을 내걸었던 것 아닌가. 그런데 그런 게임은 완벽하게 실패했고 또 다시 소득 불평등이 액면 그대로 미국사회에, 아니 전 세계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보면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물론 둘 다 ‘소유’와는 관계가 없다.
하나는 강력한 증세를 통해서 국가가 소득을 재분배하고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다.
2012년 미국 대선의 최대 쟁점이 이른바 버핏세로 불리는 증세논쟁이고 공화당 롬니 후보의 감세 주장과 오바마의 증세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보편복지 담론이 급속히 확산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하나의 선택지는 정치권이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을 때, 아래로부터 시민들의 저항이 조직되는 것이다. 이는 이미 2011년 초 아랍에서, 여름에 스페인과 유럽에서, 그리고 2011년 9월 17일 월가 주코티 공원에서 시작되었다. 과연 미국에서 소득 불평등 해법은 무엇이 될 것인가. 그리고 역시 대통령 선거를 올해 치러야할 대한민국의 미국을 뺨치는 불평등 문제는 또 어떤 해법을 찾을 것인가.
라잔은 앞서 인용한 책의 맨 뒷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살짝 곁들였다. “사회 및 정치 네트워킹 사이트를 통한 인터넷의 힘이 점점 강해지고 사이버 민주주의가 점점 확산됨에 따라 대중의 아래로부터 힘(bottom-up power)이 정치 지도자들의 전형적인 힘(top-down power)에 맞설 만큼 강해져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 는 것이 유리한 판단을 내릴 날이 곧 올 것이다.
따라서 각국의 국회의원을 변화시켜 어떤 정책을 채택하도록 만들고 싶다면 그들의 선의에 호소하기 보다는 그들의 주인, 즉 국민을 직접 설득하는 편이 더 빠를 것이다.” 선거의 시기에 특히 우리 국민들과 진보운동이 새겨볼 만한 대목이다
저자- 김병권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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