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재정적자 GDP 1% 미만이라 극약처방 불필요"
(서울=연합뉴스) 김준억 기자 = 이른바 '버핏세'로 시작된 부자 증세 바람이 미국과 일본 등을 돌아 국내에도 상륙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야당은 물론 한나라당에서도 소득세 최고세율을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이미 추가 감세를 철회한 데다 증세의 실익이 없다며 반대 견해를 굽히지 않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가 23일부터 올해 세법 개정안의 쟁점 사항을 심의하면서 버핏세 논란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22일 한나라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강행 처리로 정국이 극도로 경색된 상태여서 일정은 유동적이다.
◇한국판 버핏세, 소득세 최고세율 신설로 가닥
버핏세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 19일 의회에 제출한 재정 적자 감축 방안의 5대 원칙 중 하나다. '버핏룰'(Buffet Rule)을 제시하면서 세계적 논란의 대상이 됐다.
버핏룰은 워런 버핏이 지난 8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비롯했다. 연소득 100만달러 이상인 부자가 중산층보다 세금을 적게 부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미국 정부는 버핏룰이란 원칙만 내놓고 구체적 정책은 발표하지 않았다.
진 스펄링 백악관 국가경제회의(NEC) 의장은 버핏룰과 관련해 백악관 홈페이지에서 연소득 100만달러 이상인 가구가 받는 각종 비과세·감면 혜택을 줄이는 데 초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재정적자 감축 방안에는 지난 2월 발표한 예산안의 자본이득과 고소득층 증세안이 포함됐다.
버핏세 논의는 고소득자에 대한 부가세(surtax) 부과로 발전했다.
지난달 해리 레이드 민주당 상원 원대대표는 오바마 행정부가 발표한 일자리법 개정안에 연소득 100만달러 이상인 고소득 가구(단일 신고는 50만달러 이상)에 5.6%의 부가세를 부과할 것을 제안했다.
공화당은 현재 세율도 매우 높고 버핏세가 빈부 갈등을 자극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일본 총리 자문기구인 세제조사회는 소비세를 현행 5%에서 2015년까지 10%로 올릴 것을 제안했다.다만, 저소득층 부담 상승을 해결하고자 수입과 자산이 많은 부유층을 대상으로 소득세를 인상을 검토하기로 했다.
상속세도 최고세율을 현재의 50%에서 55%로 높이고, 기초공제액을 40% 정도 줄이는 방향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야당과 시민단체 중심으로 논의되던 버핏세가 정치권의 현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지난 6일 정책 쇄신의 하나로 부자 증세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인 정두언 의원이 7일 버핏세를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힘을 실어줬고 당내 쇄신파는 국회 예결위 등을 통해 소득세 최고세율을 신설하는 내용의 '한국판 버핏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버핏세 불씨'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다. 22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주최 국가전략포럼 강연에서 "(가진 자들이) 같은 세금을 내는 것은 옳지 않다"며 소득세 최고세율 신설을 지지했다.
소득세 최고세율 신설은 민노당 이정희 대표가 이미 지난해 9월 발의한 소득세법 개정안에 담겨 있다. 이 개정안은 현행 4단계인 과세표준에 1억2천만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40%의 최고세율을 매기도록 했다.
◇감세정책 흔들…정부 "득보다 실이 많아"
이런 부자 증세 요구에 맞서 정부는 반대 논리 개발에 나섰다.
이미 'MB노믹스'의 상징적 정책인 감세 기조를 거둔 정부는 한국판 버핏세에 대해 '절대 불가론'을 펴고 있다.
정부는 지난 9월 7일 한나라당의 제동으로 세법개정안에서 내년부터 적용될 예정이던 법인세와 소득세의 최고세율 추가 인하를 철회했다.
여기에 소득세 최고세율 구간을 신설하면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소득세 개편은 '서민감세·부자증세'로 귀결된다.
이렇게 된다면 '부자감세' 비판이 나올 때마다 정부가 내세웠던 '감세정책이 근로·투자의욕과 기업가 정신 고취, 소비 여력 향상을 통해 경제성장을 유도한다'는 논리를 뒤집는 것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7, 8일 국회 예결위에 출석해 부자 증세에 대해 "득보다 실이 많다"면서 정부의 반대 논리를 보강해서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얼마나 세수에 도움이 되느냐는 점과 투자 의욕, 근로 의욕, 저축 동기를 떨어뜨리는 문제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그는 최고세율을 35%에서 40%로 올리고 지방세와 사회보험료 등을 더하면 실질세율이 50% 가까이 될 것이라면서 "100원을 버는데 50원 이상 누가 가져간다면 일하고 싶은 의욕이 많이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외국과 비교해 재정건전성이 매우 양호해 `극약처방'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도 했다.
박 장관은 부자 증세에 대한 세계적 논의와 관련해 "재정 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매년 3% 이상씩 나는 국가에서 3%로 낮아질 때까지 한시적으로 하자는 식으로 논의가 정리되고 있다"며 "우리는 이미 재정적자가 GDP 대비 1% 미만인 상황이라 극약 처방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했다.
justdus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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