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 송지유 기자 | 입력 2011.09.10 05:32
[머니투데이 송지유기자][편집자주] '1차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의 은퇴가 시작됐다. 한국전쟁 이후 태어나 산업화 초기 유년기를 보낸 이들. 콩나물시루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소 판 돈으로 대학을 다닌 사람들. 자신의 노후준비보다 부모 봉양과 자녀 뒷바라지가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세대. 728만명. 전체 인구의 14.9%에 달하는 이들의 '집단퇴장'은 한국 경제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른다. 2011년 9월 사는 곳, 하는 일이 제각기 다른 '베이비부머' 4인의 현실을 시리즈로 들여다본다.
[[은퇴시작한 베이비부머 4인4색 < 1 > ]올초 은퇴한 대기업 임원]
-억척같이 살다 50대 조기은퇴
-차례 비용에 조카 용돈도 부담
-아내에 집 지켜주고 싶지만…
"추석을 맞는 기분이 작년같지 않네요. 가족·친지들은 아직 제가 퇴직한 지 모르거든요. 혹시 이번 명절때 (퇴직 사실이)알려지면 다들 한마디씩 할텐데…. 5개월째 예금까먹고 있자니 차례 비용에 조카들 용돈줄 일도 부담됩니다. 동창 모임에 지인들 경조사는 왜 이리 많은지…. 새 일자리 구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쉽지 않네요. 아이들 학업·결혼 비용 마련하려면 펀드·보험 깨는걸로는 턱없이 부족하니 큰일입니다."
대기업 임원으로 근무하다 지난 3월말 퇴직한 김윤수씨(가명·56)는 고향 가는 발길이 무겁다. 대기업 임원까지 지냈으니 퇴직후 생활도 넉넉할 것이라고 다들 생각하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예금 4000만원이 있지만 불안하다. 큰 딸은 대학 졸업후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들 2명은 아직 대학 공부도 마치지 못했다. 군복무중인 막내아들 대학까지 졸업시키려면 앞으로 5년은 매학기 학비걱정을 해야 한다. 매달 조금씩 납입해온 연금저축과 보험이 있지만 노후를 위해 남겨둬야 한다. 퇴직금으로 받은 목돈 대부분은 현재 거주중인 경기 용인시 수지구 아파트 주택담보대출금으로 상환했고, 나머지는 펀드에 투자했다.
김씨는 요즘 친구·동창 모임에 갈때 광역버스를 탄다. 올초까지만해도 회사에서 지급한 중형세단을 몰았지만 요즘엔 아파트 주차장에 승용차를 세워놓고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김씨가 좋아하는 약속장소는 용인 집 근처에서 광역버스 노선이 많은 서울 강남역이다. 강북은 이동시간이 긴데다 저녁자리가 길어질 경우 대중교통이 끊겨 택시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스럽다.
술자리를 좋아하는 그지만 퇴직한 후에는 친구들을 먼저 불러낸 적이 없다. 통상 먼저 만나자고 모임을 주도한 친구가 밥값이나 술값을 내야해서다. 하지만 매번 얻어먹을 수만은 없으니 자연스럽게 모임에 참여하는 횟수가 줄고 있다.
지인들의 부모님 장례식, 자녀들 결혼식 소식이 잇따르는 나이. 고정수입이 없는 김씨에겐 한달 평균 2∼3번씩 내야 하는 경조사비용도 부담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전 임원', '고향 동네에서 가장 출세한 6남매네 큰아들' 등 그에게 붙어 있는 꼬리표 때문에 그는 지난주에도 친척 결혼식에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다.
그의 꼬리표는 재취업 걸림돌로도 작용한다. 퇴직 후 등산, 여행 등을 하며 꼬박 한달을 쉬었다. 지난 5월부터는 이력서를 들고 돌아다녔지만 아직 적당한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지만 우리 사회는 퇴직한 50대 중반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중소기업 수십곳에서 면접을 봤지만 "명색이 대기업 전무였던 사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나", "원하는 월급을 맞춰 줄 수 없다" 등 거절이 이어졌다.
한 때 김씨의 집 거실 창에는 커튼이 없었다. 많게는 일년에 2번, 적게는 2년에 1번 꼴로 이사를 했기 때문에 부인이 일부러 커튼을 달지 않은 것이다. 형편이 어려운 집안 장남으로 태어나 부모님의 도움없이 서울 외곽 사글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탓이었일까. 부인은 그야말로 억척스럽게 돈을 모았고 집을 옮겨 다녔다.
결혼생활 30년. 김씨 부부가 보유한 자산은 경기 용인 169㎡ 아파트(매매가 8억원, 가족과 함께 거주중)와 분당 59㎡ 아파트(매매가 3억원, 현재 2억원에 전세계약) 등 부동산 약 90%를 차지하고 있다. 다행히 대출금 등 부채는 없지만 자녀들의 결혼비용 등 목돈이 들어갈 일이 많아 조만간 분당 소형아파트를 처분할 계획이다.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집값, 몇개월새 잔고가 확 줄어든 펀드도 김씨의 고민이다. 부인이 '내 생애 마지막 집'이라며 공을 들여 구입한 용인 아파트는 분양가(10억원)에서 2억원이나 떨어졌다. 퇴직금 일부를 떼 가입한 펀드(거치식)는 최근 한 달새 잔고가 절반 이상 날아갔다.
김씨는 부인의 애착이 큰 용인 집 한채 만큼은 마지막까지 지켜주고 싶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없다. '정말 어려워져서 급하게 집을 처분하는 날이 오지않기를….' 김씨의 간절한 바람이다.
머니투데이 송지유기자 cl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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