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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과 박승대”>>>★★

◆의사결정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11. 8. 11.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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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과 박승대”
‘한국인들이여 최강팀의 마인드를 가져라.’

 구조론연구소 김동렬슨생 2011.08.10 

 

 

 

노예계약의 박승대를 옹호하는 네티즌이 의외로 많더라. 물론 박승대도 옹호할만한 작은 근거는 있을 터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중요한 것인가? 구조론으로보면 판단의 우선순위가 있다. 예컨대 인권문제라면 작은 문제라도 크게 다루어야 한다. 파업이 일어나면 조중동은 ‘몇 조원 손실’ 이렇게 제목을 뽑지만 그건 겁주려는 수작이고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잔업하고 특근하면 바로 만회다.

 

‘무엇이 중요한가’를 논하면 절대적으로 성민의 편에 서야 한다. 그래야 최강팀 대한민국호에 플러스가 된다. 박승대와 PD와 성민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내막이 어떻든 상관없다. 구조론은 내막 무시하고 포지션만 본다.

 

대중은 목적지향적이어서 사건의 경중을 판단하기보다 ‘현장에서 과연 먹히는가?’를 위주로 판단한다. 왜냐하면 개인의 의견개진은 공동체 내에서의 의사결정을 목표로 하는 것이고, 어떻게든 공동체의 의사결정이 성공해야 자신의 의사발표가 유의미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겁 많은 양떼와 같은 대중들은 의사결정이 안 되고 우왕좌왕 하는 그 자체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대중들은 박정희와 같은 최악의 리더도, 리더가 없는 혼란상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하긴 양떼라면 무조건 몰려있기만 하면 몇몇이 희생되더라도 어떻게든 살기는 산다. 그러나 조중동 빼고 우리는 겁쟁이 양떼가 아니다. 양떼들은 그렇게 살라고 하고 우리 깨어있는 시민은 진도 나가야 한다.

 

최선의 리더 선출하기를 우리가 겁낼 이유가 없다. 비겁하기 짝이 없는 등신들의 구호 ‘최악 보다는 차악’타령 하지 말고 우리 끝끝내 ‘최선의 리더’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 이상 멍청이가 아니고, 끝까지 가는 최강팀 대한민국호의 자부심있는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포지션이 결정한다는게 구조론이다. 보수적인 대중은 자신이 어떤 주장을 냈는데 그것이 현장에서 먹히지 않으면 무의미하다고 보고 포기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먹히든 안 먹히든 하나의 경험이므로 일단 훈련삼아 진보적인 주장을 내본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젊은이들이 더 판도를 길게 보기 때문이다.

 

반면 대부분의 무개념들은 경험을 따른다. 박승대는 갑이고 성민은 을인데 갑과 을이 싸워서 을이 이기는 꼴을 못봤다. ‘어차피 질텐데 그러니 을인 니가 참아라’는 식이다. 약자인 노동자가 참고, 약자인 학생이 참고, 약자인 여성이 참아라는 식이다. 배우지 못한 사람은 보통 이렇게 한다. 근대 시민교육 말이다.

 

대중의 판단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결과를 예측해서 결과에다 끼워맞추기 식의 판단을 내린다. 87년 6월항쟁때 많은 어른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왜 독재타도에 나서지 않느냐고. 어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너희들이 어려서 세상물정을 몰라서 그러는데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데모해서 뭐라도 하나 되는 꼴을 못봤다.”

 

봉건시대에 대중은 무력했다. 의견을 내놔봤자 상층부에서 묵살되기 일쑤다. 그들은 현장에서 먹히는 의견만 내놓기로 한 것이다. 노예근성이다. 젊은이들은 다르다. 먹히지 않더라도 경험을 쌓기 위해 일단은 덤벼본다. 더군다나 지금은 인터넷 시대이다. 안먹히더라도 인터넷에 데이터는 축적된다.

 

촛불항쟁은 결과적으로 먹히지 않았지만 길게 보면 대중의 마음 속에 여전히 살아있다. 흐름이 계속 이어져서 지자체 선거 승리를 이끌고, 다음 총선 승리를 예고하고 있다. 그렇다. 촛불은 실패한 것이 아니다. 이미 한번 승리를 이끌었고 앞으로 있을 두 번의 전투에서 에너지 공급을 맡는다.

 

필자가 유시민을 지지하는 것도 그렇다. 지금 지더라도 데이터는 축적된다. 국민의 마음 속에는 남아서 계속 간다. 끝까지 가면 이기는 거다. 질싸움이라도 첫째 경험을 쌓기 위해, 둘째 데이터를 축적하고 에너지의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할 도리는 해야하는 것이다.

 

김성근이나 박승대 개인을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최강팀 대한민국호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를 말하려는 것이다. 김성근은 우수한 지도자일 뿐 이상적인 지도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김성근이 최고가 아니라는 점에 방점을 찍을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호의 미래가 당연히 최고라는 점에 방점을 찍어달라.

 

필자가 이 글을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뛰어난 감독의 귀신같은 역량’에 대한 환상을 버리자는 것이다. 히딩크 이후 한국인들은 명장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오판을 저지르고 있지 않은가 싶다. 16강으로 만족하지 못하여 허정무 모욕주고 조광래 앉혀놓고, 국대감독에게 과중한 부담을 주고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풀어가야 한다.

 

물론 수준이 낮은 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려면 김성근과 같은 명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아니다. 그리고 우리의 목표는 끝까지 가는 것이다. 중간에 잠시 올린 건수로 만세부를 일은 아니다. 더 길게 보자는 거다.

 

감독의 역량이 과대평가되면 일정한 성적을 낸 감독은 팀워크를 깨는 유능한 선수를 배제하고, 실력은 없어도 말을 잘 듣고 열심히 하는 선수를 데려온다. ‘감독의 야구’를 펼치고 싶어서다. 그래서 성실성의 노장 최동수 데려왔다. 명장이 한 동안은 잘 가다가 점차 망가지는 공식이다.

 

프로야구로 논하면 올시즌 초반 7게임 했을 때 필자가 쓰기를.. 올해는 기아, LG, SK, 두산, 롯데, 삼성, 넥센, 한화 순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썼는데 과연 지금 그 흐름으로 가고 있다. 필자가 야구를 알아서 하는 말은 아니다. 구조가 그렇다는 거다. 구조로 보는 눈이 전문가의 눈보다 더 잘 맞을 때가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유능한 감독은 5게임 정도를 보탤 수 있다고 한다. 무능한 감독은 5게임을 날려먹을테니 합치면 10게임이다.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김성근은 괴력을 발휘하여 혼자서 10게임 이상, 20게임 이상의 승리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감독이 경기를 다하도록 놔두는게 좋은가? 장기적으로는 망가진다. 지금은 다른 구단도 다 따라하는 김성근만의 앞서가는 부분이 분명히 있고, 김성근의 ‘생각하는 야구’는 좋은 가르침을 주지만 위험하다. 생각하는 야구도 좋지만 보조적이어야 한다. 감독이 선수보다 위에 있으면 결국은 좋지 않다.

 

왜 맨유는 바르샤에 졌을까? 만약 수십경기를 붙었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메시를 막을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게임만 하면 절대적으로 바르샤가 유리하다. 딱 한게임만으로 승부를 낸다면 작년에 롯데가 프로야구에서 우승했을지도 모른다. 진정한 최고의 팀은 선수의 잠재력을 극대화 하는 팀이다. 즉 작년의 롯데와 같은 팀이다. 그러나 롯데는 지금 자기 팀의 장점을 다 날려먹고 SK를 배우려 하다가 이상해졌다.

 

기아만 제대로 가고 있다. 하긴 조범현 감독은 배울거 왕년에 다 배웠기 때문에 이제는 스승을 넘어설 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필자가 기아를 평가하는 이유는 다른거 없고 구조론의 정석과 맞기 때문이다. 조범현 감독도 조갈량 노릇하다가 초반에 몇 게임은 날려먹었다고 본다. 감독이 어떻든 전체적인 팀의 구조로 보아서 지금 기아 야구는 구조론의 정석과 가깝다.

 

코리안시리즈도 아닌데 지는 게임을 감독이 머리 써서 억지로 이기면 반드시 뒷탈난다. 그 경우 당장은 관객이 모르고 점수를 주지만 알고보면 대들보 빼서 비 새는 지붕 막은 격이다.

 

왜?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감독이 능력을 발휘할수록 선수들은 서로 비슷해져간다. 그 과정에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다 비슷해진 다음에는 다시 역시너지효과가 나타난다. 즉 김성근과 박승대가 과거 성공한 이유와 지금 실패하는 이유는 완전히 같은 것이다.

 

대부분의 착각은 이 지점에서 일어난다. 이광환의 신바람야구를 비롯해서 한번씩 새로운 것을 들고나와서 잠시 잘나가다가 일정한 한계를 보인 예는 매우 많다. 그 이유는 시너지효과가 단기적으로 플러스가 되지만 장기적으로 마이너스가 되기 때문이다.

 

구조로 보면 이렇다. 수우미양가의 불균일한 실력을 가진 다섯 선수가 있다. 이때 미양가의 낮은 실력을 가진 선수들이 수우의 실력을 가진 선수 덕을 봐서 전체적으로 상향평준화 된다. 이때 전력은 우우우우우로 나타난다. 그러나 점점 미미미미미가 되더니 양양양양양으로 한계단씩 내려간다. 왜?

 

수우미양가의 불균일한 성적을 가진 팀에서 미양가의 못난이들이 수우의 우등생을 배우면서 플러스 효과를 얻지만 곧 오만에 빠져서 그게 자기 실력으로 된줄로 알고 뻐기다가 망하는 것이다.

 

구조론에서 중요한건 질서다. 계에 질서가 주어지면 전체적으로 플러스 된다. 그래서 우승하면 후유증이 나타난다. 다른 선수로 인하여 시너지 효과로 플러스 혜택을 입은 선수들이, 그것이 자기실력 덕인줄 알고 오버하면서 팀 내부에 질서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망한다.

 

시너지효과 - 갑은 우수하고 을은 형편없다. 을이 갑을 따르면서 질서가 생겨나고 실력이 상향평준화 되어 막강해진다.

 

역시너지효과 - 갑 덕분에 성적을 낸 을이 기고만장해서 갑을 따르지 않게 되면 질서가 붕괴되어 다시 팀이 무너지고 만다.

 

이런 현상은 지난 10여년간 진보진영에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노무현 대통령 덕에 뜬 굴러봤자 도토리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무시하고 오버질 하다가 줄줄이 개박살이 났다.

 

구조의 효율성은 불균일한 팀이 균일해지는 과정에서의 낙차에서 얻어지며 이미 균일해진 다음에는 낙차가 없으므로 효율성이 없다. 촌넘이 서울대에 들어가면 시너지효과가 나타나지만, 강남애들이 서울대 가봤자 효과가 없다. 에너지는 불균일에서 균일로 변하는 과정에서만 얻어진다. 그러므로 불균일이야말로 보배가 된다. 우리 사회에 아웃사이더가 소중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감독이 너무 능력을 발휘하면 안 된다. 삼국지연의에는 제갈량이 우상화 되지만 제갈량과 같은 모사꾼이 너무 능력을 발휘하면 그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신출귀몰한 용병술의 환상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실전에서는 잔머리 굴릴 필요없이 순간적으로 괴력을 발휘하는 맹장이 필요하다.

 

야구라면 큰 경기에서 등장하는 ‘미치는 선수’다. 새가슴 김영덕 감독이 모든 것을 컨트롤 하자 ‘미치는 선수’가 나타날 확률이 줄어든 것이 과거 빙그레가 송진우, 장종훈 데리고도 해태 선동렬에 막혀 우승을 못한 이유다.

 

구조론은 최고의 조합을 제시한다. 여러 포지션들 중 하나가 특출나면 시너지 효과로 일제히 상승하지만 그 다음에는 전체적으로 마이너스가 된다. 노무현 시너지 효과로 진보진영이 일제히 상승했지만 그 사이에 질서가 없어졌다. 정동영 김근태, 천정배부터 강기갑, 노회찬까지 다들 저 잘난줄 하고 깝치다가 총체적으로 말아먹었다.

 

감독의 장점이 선수의 장점을 제한한다. 옛날에 그야말로 김미화, 김한국이 ‘음메 기죽어’, ‘음메 기살어’ 하던 시절에 필자는 코미디는 ‘음악과 율동’을 삽입해서 막간의 어색함을 물타기해야한다고 쓴 적이 있는데, TV를 안 보는 필자가 10년만에 TV를 보니 웃찾사에서 개그맨들이 음악과 율동만 하고 있었다. 재미가 없어지는 것은 당연지사.

 

왜 박승대는 웃기지 못하게 되었을까? 물론 필자가 TV를 보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구조만 봐도 안다. 박승대가 웃기지 못하게 된 이유는 박승대가 웃길 수 있었던 이유와 정확히 같다.

 

박승대는 성실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성실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배일집과 구봉서인데 별로 웃기지 않았다. 성실한 그들은 땅달이 이기동, 비실이 배상룡, 살살이 서영춘과 같이 튀는 사람 덕에 슬그머니 묻어간 것이다. 시너지효과 본 것이다. 묻어간 주제에 원로라고 방송에 나와서는 ‘코미디언은 선배 잘 섬겨야 되고,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하고’ 하면서 주접 떨더라.

 

김병만은 아이디어로 웃기지 않는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는 것이 구조론이다. 개콘은 형식이 중요하며 그 형식은 작가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의 기괴함에서 나온다. 마빡이 정종철이 대표적이다. 달인은 김병만이니까 되는 거다. 남은 결코 흉내낼 수 없고 반드시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그런 개그를 해야 한다. 그게 진짜 개그이기 때문이다.

 

웃긴 소리 해서 웃기는 것은 누구나 할 수있지만, 인간 자체가 웃겨야 진짜다. 전유성은 원래 웃긴 인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분은 삶 자체가 웃긴 것을 봐도 알만 하다.

 

아이디어를 짜고, 팀웍을 조직하고, 성실성을 강조하고.. 오래 못간다. 2류다. 원래 인간이 웃긴 괴짜들을 모아놓아야 진짜다. 개콘은 형식미가 강조되며, 그런 여러 가지 형식의 코너를 모아놓은 그 자체가 개콘의 형식이다. 웃찾사는 통일성이 강조되어 코너가 달라도 모두 박승대 색깔이 묻어나서 망가진 것이다.

 

박지성에게는 안된 이야기지만 맨유보다는 바르샤가 최고의 팀이다. 팀웍보다 선수의 개성있는 장점을 발휘하게 하는게 더 윗길이기 때문이다. 팬들은 어느 팀의 승리를 보는게 아니라 ‘최고의 경기는 이런 것이다’ 하는 것을 보고 개인이 영감을 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영감을 받는 것이 팬들 자신에게 실질적인 이득이기 때문이다. 팀이 이겨봤자 팀이 이긴 거고 박수친 관객에겐 남는거 없다. 최고의 시합에 대한 영감을 관객의 손에 쥐어주는 것이 진짜다.

 

한국은 낸시랭 비판하고, 강의석 비판하고, 김기덕 감독 욕하고, 노무현 대통령 비난하고, 유시민 욕하고 그러면서 튀는 사람은 다 씹고 보는데, 그 마인드로 경쟁에서 한 두 번 이길 수는 있어도 최고의 팀을 조직하기는 불가능하다. 지금은 글로벌 경쟁 시대다. 세계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

 

최고의 팀은 결국 겸손하고, 예의바르고, 선배 존중하고, 후배 잘 이끌고, 스캔들 안 만드는 착한 사람보다, 여러 결점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장점을 가진 사람을 조합하여 만들 수 있다. 수호지의 108 두령들처럼 말이다.

 

그 한가지 장점을 가진 사람은 백청강과 같은 연변총각일 수도 있고 닉쿤이나 셰인과 같은 외국인일 수도 있다. 아웃사이더들에서, 외인구단에서, 변방에서 빛나는 그 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 그 한 사람의 작은 허물은 덮어주고 장점은 국물까지 우려먹어야 한다.

 

감독의 시합? 그것도 좋다. 그러나 최종적인 것은 아니다. 감독은 3류를 훈련시켜 1류 근처까지 데려올 뿐이다. 마지막 정점은 선수가 직접 찍어야 한다. 성실한 2등 마인드 버리고 버릇없는 최고의 스타를 키워야 한다.

 

왜? 글로벌 경쟁 시대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일본은 지금 무너졌다. 세계최강팀 대한민국호가 뭔가를 보여줄 타이밍이 왔다. 이제 2등은 필요없고 우리가 최고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들도 다들 한번씩은 거쳐간, 그리고 역사의 요청에 의하여 마침내 우리 차례가 돌아온 그 최고의 팀 말이다.

 

말 잘듣는 선수보다 성질이 더러워도 해줄 때 해주는 선수를 데려와야 한다. 준수한 2등 말고 최고의 팀이 되려면 그렇다. 최고의 팀은 단점의 보완이 아니라 장점의 극대화다. 말 잘듣는 손학규는 잘해봤자 이인제다. 유시민과 같이 말 안듣고 튀는 사람이 마지막에 귀중한 득점을 올려준다는거 알아야 한다.

 

선수가 뜨고 감독은 숨어야 한다. 2002년에 한국은 감독 덕에 사강갔다. 이번에는 감독 덕이 아니라 선수 덕에 사강가야 한다. 그래야 진짜다. 그래야 세계인들 앞에서 자존심 세우고 제대로 뻐길 수 있다.

 

박승대가 감독 이야기 하더라. 웃기셔 정말! 김성근과 같은 우수한 감독도 물론 필요하다. 김성근 감독에게도 배울건 배워야 한다. 그걸 부정하는게 아니다. 그러나 계속 배우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졸업하고 진도 나가야 한다. 최고의 팀 대한민국호를 성공시키려면 마지막 순간에는 선수를 믿어야 한다.

 

최고가 되려면 최고의 눈높이를 가져야 한다. 97년과 2002년의 아슬아슬한 승리 말고 압도적인 승리를 우리가 꿈 꾸어야 한다. 압도적인 승리를 원한다면 손학규로 안 된다. 2012년에 압도적인 승리를 원한다면 참여당이 지금 민주당에 흡수되어서는 안 된다. 감독보다 선수가 튀어야 한다. 최강이 되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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