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권의 건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금액은 약 66조원. 이 중 25조원의 대출 만기가 올해 안에 돌아온다. 만약 이 안에 대출금을 못 갚으면 건설사 연쇄 도산과 금융사 부실화가 불가피하다.
-----------------------------------------------------------------
건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부실을 매개로 금융회사와 건설사들이 얽히면서, 올해 우리나라 경제에 또 다른 불안 요인이 등장했다. 지난 1월 삼화저축은행을 시작으로 2월까지 연속 8개 저축은행이 PF 대출 부실 충격에 따라 영업정지를 당했다. 이 같은 저축은행 영업정지 ‘도미노 사태’가 소강상태로 접어드는가 싶더니, 3~4월 들어 그 불똥이 건설사 쪽으로 튀었다.
시공 능력 기준으로 업계 30~40위 규모의 중견 건설사인 삼부토건·동양건설산업·LIG건설 등이 PF 대출 부실과 금융권의 자금 회수 압박에 못 이겨 법정관리 신청을 하면서 건설사들의 줄도산 공포가 현실화되었다. 이 와중에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해 일시적으로 풀었던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해제 시한이 3월 말로 다가오자 정부 당국의 고민은 깊어졌지만, PF 대출 부실보다 더 큰 시한폭탄인 가계의 주택담보대출 증가를 걱정한 정부는 해제 연장을 포기해야만 했다.
급기야 경제 영역을 넘어서 정치권까지 문제가 비화되었다. 4월20~21일에는 저축은행 부실 사태를 두고 국회 청문회까지 열려 치열한 책임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제위기가 어느 정도 완화되고, 지난해 6.2%라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경제 회복을 향해 가고 있다는 우리 경제가 어쩌다가 PF 대출 부실 국회 청문회까지 여는 상황을 맞게 되었을까.
먼저 문제가 되고 있는 PF 대출의 규모부터 따져보자. 전체 금융권이 지난해 말 보유한 PF 대출액은 66조원이 넘는다. 이 가운데 시중은행이 38조7000억원으로 규모 면에서 가장 많다. 그나마 금융위기 와중에 줄여놓은 금액인데, 2009년 초에는 55조원까지 늘어난 바 있다. 나머지 28조원가량을 제2 금융권이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저축은행이 12조2000억원을 차지했다. 총대출 가운데 PF 대출이 18.9%나 될 정도로 저축은행은 PF 대출에 크게 의존해왔다
그런데 아래 그림에서 보듯 금융위기를 통과하면서 부실 규모가 급격히 늘어났고, 시중은행의 PF 대출 연체 규모는 2년 만에 세 배가 뛰어 1조6000억원가량 된다. 저축은행의 경우 무려 총 PF 대출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조원가량이 연체 상태에 놓이면서 이를 견디지 못한 저축은행들이 먼저 부실 상태에 빠졌고, 결국 건설사 연쇄 부도로 확산된 것이다.
금융사-건설사-부동산 정책 합작으로 키운 부실
더 걱정스러운 점은 전체 PF 대출 66조원 가운데 40% 가까운 25조원의 대출 만기가 올해 안에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그중 6월이 만기인 대출금만 14조원이다. 지금과 같은 급박한 상황에서 만기 연장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따라서 별도로 수습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건설사나 보증이 걸린 건설사들의 연쇄 도산이 불가피하다. 건설사들이 빌린 대출 채권을 쥔 금융회사들의 부실화도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안타까운 사실은 금융권과 건설업계를 일대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는 PF 대출 부실 사태가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금융위기 초반기(2008년)에도 PF 대출에 대한 부실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이는 당시 제2 금융권의 연체율이 평균 10%를 훨씬 상회했다는 자료에서 잘 나타난다. 때문에 자산관리공사(캠코)는 이미 2008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세 차례에 걸쳐, 66개 저축은행으로부터 5조원이 넘는 부실 PF 대출 채권을 인수하며 현장실사를 해왔다.
이처럼 충분히 예견된 PF 대출 부실 사태를 잡지 못하고 오히려 키워온 배경에는, 어떻게든 부동산 경기를 진작해서 내수를 성장시켜보겠다는 정부 당국의 오랜 집착이 있었다. 건설 경기의 미래 수요에 대한 정확한 예측도 없이 무작정 주택 건설에 몰두한 건설업계 또한 부실을 키웠다. 특히 금융 규제 완화 분위기에 편승해 당장 대규모 고수익이 보장된다는 사실에 안주해 부동산 경기에 엄청난 실탄을 쏟아부어온 금융회사들의 영업 행태가 현 PF 대출 부실 사태를 부른 실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07년부터 세계적으로 꺾여가는 부동산 경기를 한국이라고 비켜갈 수는 없었다. 대다수 국가에서 주택 경기가 하락세로 돌아서고, 주택금융은 축소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유독 한국 정부는 2008년 이후 수차례에 걸쳐 부동산 경기가 하락 조짐을 보일 때마다 주택 경기 부양책으로 이를 막았고, 건설사 PF 대출 만기 연장을 종용했다. 심지어 문제가 된 저축은행에 대한 규제를 추가로 풀어서 지점 설치 기준을 완화해주고, 영업 구역을 확대해주기까지 했다. DTI 규제 시한부 해제를 발표한 지난해 8·29 대책이 전형적인 사례이다.
그럴수록 내부적으로 부실은 더 크게 늘어났고, 2010년 이후 부동산 경기 대세 하락 추세가 기정사실화하자 탄력을 잃은 주택 경기는 건설사 및 이들에게 자금을 공급한 금융회사에 더 이상 지지대가 되지 못한 것이다. 향후 부동산 경기가 호전될 것을 기대하면서 일시적으로 PF 부실을 완화하려는 어떤 시도도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사태의 심각성이 위험 수위를 넘자 정부도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한편에서는 배드뱅크(bad bank)를 만들어서 부실 자산을 한쪽으로 치우자는 구상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조차 시중은행 PF 대출에 국한된다. 저축은행 부실에는 여전히 자산관리공사의 공적자금 투입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결국 고위험·고수익을 노린 일부 저축은행들의 파산 위험에 또다시 혈세를 투입하는 모양새이다. 더욱이 수요 예측을 안 하고 무작정 건설에 몰두했던 건설사들은 파산 위험을 피하고자, 금융회사들의 대출 회수 압박에 다시 만기 연장을 해달라고 아우성이다.
이 모든 사태를 한 번에 해결할 묘책이 있기는 하다. 과거처럼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는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미착공 PF 사업이 곧바로 착공되어 자금을 회전시킬 테고, 건설 중이거나 분양 대기 중인 아파트들은 조만간 분양이 완료되면서 대출 회수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더 중요한 위험 요소가 있다. 바로 PF 대출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위험 부담이 큰, 800조원이 넘는 가계 대출의 부실이다. 건설사들이 힘들여 지어놓은 주택을 사야 할 국민의 부채 부담이 이미 턱밑에 차 있는데, 추가로 대출을 받아 주택을 사들이도록 할 수 있겠는가.
저자> 김병권님
부동산 계약시 사기 예방법 8가지 (0) | 2011.06.03 |
---|---|
뉴타운 문제 결국은 무서운 PF 대출의 망령. (0) | 2011.05.29 |
금융회사와 건설사가 공모한 부동산 거품, PF부실로 터지다 (0) | 2011.04.27 |
2000년대 뉴타운 잔혹사의 주범 (0) | 2011.04.22 |
누리엘 루비니의 중국 부동산 버불 붕괴론에 대한 이견 (0) | 2011.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