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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카드대란’ 조짐이 보인다

생활경제·연금. 자동차일반

by 21세기 나의조국 2011. 1. 2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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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카드대란’ 조짐이 보인다

주간경향 | 입력 2011.01.20 12:05 | 수정 2011.01.20 18:19 
 

 

 

ㆍ사용액·카드발급수·모집인 등 각종 지표 '이상 과열' 신호

최근 신용카드 광고가 부쩍 늘었다. 길거리엔 현금지급기가 늘어났고, 주유 할인과 모든 식당 할인을 비롯해 가입하면 스마트폰을 주는 카드까지 등장했다. 카드사의 과당경쟁도 보인다. 신용카드 모집인이 1년 새 40% 이상 늘었고, 경제활동인구 1인당 소유한 신용카드 수는 4.59장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때문인지 카드 사용액 특히 현금서비스와 카드론 등 부채도 연일 최고치다. 2003년 우리 사회에 '빚잔치'를 불러왔던 카드대란의 전조가 보인다는 지적이다.



 

↑ 최근 카드 빚의 규모가 크게 늘고 있다. 특히 카드론은 가계부실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경향신문

 

↑ ‘카드대란’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2002년 참여연대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신용카드 회사들의 무책임한 신용카드 발급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김정근 기자

 

 

경제활동인구 1인당 소유 '4.59장' 최대치


카드와 관련한 각종 지표는 과열 신호를 보내고 있다. 지난해 경제활동인구 한 명당 카드 수는 평균 4.59장으로, 카드대란 직전인 2002년 4.57장을 넘어서며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신용카드 모집인도 5만명을 넘어서 한 해 전보다 44% 늘었다. 신용카드 모집인 수가 크게 증가하면서 불법 영업행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카드 수만큼 모집비용도 크게 늘어 카드사들은 지난해 3분기까지 총수익 중 4분의 1을 마케팅에 썼다. 금융계 안팎에서 '2003년 카드대란'을 우려하는 이유다.

카드대란의 조짐은 우리 국민들의 카드 보유량 추이를 보면 간접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를 기준으로 경제활동인구는 2499만3000명, 발급카드는 1억1494만5000장으로 1인당 소유한 카드가 4.59장에 달했다. 1인당 카드 수는 2002년 4.57장까지 증가했다가 '카드대란'을 겪으면서 2005년 3.5장까지 줄었지만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 2007년 3.7장, 2008년 4.0장, 2009년 4.4장, 지난해엔 평균 4.59장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민간소비지출에서 카드 이용액이 차지하는 비율도 작년 3분기 56.1%로 역대 최고치였다. 민간소비지출 457조원 가운데 카드이용액(현금서비스·기업구매카드 실적은 제외)이 256조원이었다. 이 비율은 2000년 23.6%에서 2002년 42.6%까지 올라갔다가 카드대란의 여파로 2004년 38.4%로 잠시 내려왔으나 이후 반등해 2009년 52.6%까지 커졌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경제활동인구가 쓰는 카드 수와 가맹점이 많아진 것은 카드 사용 문화가 정착된 가운데 지난해 경기회복세를 타고 카드 사용이 더욱 활발해졌기 때문"이라며 "올해는 카드 결제 범위가 대폭 확대되고 소액결제 비중이 점차 커지는 등 카드 소비문화가 더욱 보편화하면서 이 비율이 60%를 넘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카드 발급과 이용이 급증한 것은 지난해 경기회복세를 타고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한 카드사들의 과열 경쟁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카드사는 지난해 카드 모집인을 대폭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카드 모집인은 5만292명으로 전년보다 43.7% 증가했다. 이 중 순수 개인모집인이 2만6900여명으로 전년보다 17.4% 증가했고, 통신사나 자동차 대리점 등의 제휴 모집인이 2만3300여명으로 95.5% 늘었다.

 

제휴 모집인이 거의 2배에 가까울 정도로 증가한 것은 하나SK카드가 분사하면서 SK텔레콤 대리점과의 제휴가 급증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카드 모집인은 2002년 8만7733명에서 카드대란이 터진 2003년 1만7021명으로 급감했고, 2004년(1만6783명) 저점을 찍은 뒤 반등해 2008년 5만1767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로 2009년 3만4998명으로 줄었다가 지난해 경기회복세를 타고 카드사들이 마케팅에 힘을 쏟으면서 5만명대로 재진입했다.


'카드론' 앞세워 빚 권하는 카드사

카드사들의 실적 통계에도 카드대란의 조짐이 감지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6개 전업카드사의 지난해 1~3분기 순이익은 1조4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5% 감소한 가운데 카드 비용은 4조5000억원으로 12.4%가 늘었다. 카드 비용은 회원 모집비·부가서비스 수수료 등 마케팅 관련 비용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상반기에 쓴 카드 비용만 2003년 카드대란 이후 처음으로 3조원을 넘기도 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마케팅 비용이 급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카드 모집인이 많아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불법적인 영업행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여신금융협회가 2009년 적발한 불법 모집행위 단속 건수는 3건에 그쳤지만, 지난해에는 7월까지 집계된 것만 그 10배인 33건에 달했다. 카드사들이 합동점검기동반을 구성해 자체적으로 적발한 불법 모집행위 단속건수는 2009년 27건에서 지난해에는 11월 기준으로 71건으로 증가했다. 고정 부스 없이 길거리 모집에 나서거나 연회비의 10% 이상에 해당하는 경품을 제공할 수 없게 돼 있는 규정을 어기고 과다경품을 제공하는 행위 등이 적발되고 있다.

이같은 카드사의 과당경쟁이 2003년 카드대란을 재현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높다. 금융당국 역시 카드론 등 현금대출 부문의 급증세가 이어지고 있는 데 긴장하고 있다. 2003년 카드대란은 IMF 외환위기와 함께 한국 경제의 큰 파도였다. 무서운 것은 IMF 외환위기 다음해인 1998년 신용 불량자는 193만명이었지만 카드대란 이후 2004년 4월 말에는 382만4000명이나 됐다는 사실이다. 당시 카드사들은 길거리 회원 모집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카드를 발급하며 과당경쟁을 벌였다. 신용등급을 따지지 않고 카드를 발급하고, 이용 한도를 마구 늘려줬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정부의 정책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내수를 진작한다는 이유로 신용카드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카드사의 일반대출 업무를 허용하고 카드 이용 외 부대업무가 60%를 넘지 못 하도록 하는 규정을 폐지했다. 또 월 70만원으로 정해져 있던 현금대출의 월 이용 한도를 없애고, 카드 사용액 연말 소득공제, 카드 영수증 복권제 등을 도입했다. 카드사들은 물을 만난 듯 영업을 확대했고, 당시 "죽은 사람에게도 카드가 발급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카드빚은 고스란히 되돌아왔다. 경기가 꺾이자 카드사에 대한 규제와 은행연합회로의 대출정보 집중이 이뤄졌고, 금융기관은 이용 한도를 무작정 축소하고 나섰다. 당시 현금서비스 등을 통해 소위 '돌려막기'를 해왔던 카드 소비자들은 결제대금을 막지 못했고, 결국 연체를 하게 됐다. 하나의 카드를 연체하자 다른 카드 역시 연체가 되면서 대규모 신용불량자가 속출하게 됐다.


카드사의 공격경영은 계속된다

최근 카드 빚의 규모도 당시 카드대란을 연상케 한다. 특히 카드론은 가계부실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카드사들이 현금대출 영업을 강화하며 카드론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 대출모집인을 통한 카드론 고객 확보 노력에 카드론 한도 상향 서비스는 물론이고, 카드론만 따로 내세운 라디오 광고까지 등장했다.

카드사들의 카드론 대출 잔액은 2010년 상반기에만 13조2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2009년 한해 동안의 대출 잔액(11조4000억원)을 훨씬 넘어선 규모다. 이를 볼때 지난해 카드론을 통해 무려 20조원이 대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리볼빙(카드대금 중 일정 비율만 결제하면 나머지는 대출 형태로 전환)을 통한 현금대출도 2007년 3조500억원에서 2008년 4조9900억원, 2009년 5조700억원으로 증가했고 지난해 9월에는 5조3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카드대란 때와는 달리 연체율이 안정적이어서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라는 게 카드업계의 설명이지만 이재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위기 이후 고용 악화로 소득이 줄고 실직자가 늘어나면서 카드론 등 카드대출 사용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올해 금리마저 오르면 가계부채 상환 부담이 커져 카드 연체율이 높아질 수 있다"며 '제2의 카드대란'을 경고했다.

그러나 올해 주요 카드사들의 시장 다툼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 신용카드사 관계자는 "2003년 카드대란 이후 카드업계는 외형 위주의 과당경쟁을 자제해 왔다"며 "그러나 KB카드가 분사하고, KT 등 대형통신사가 카드시장에 진출하면서 올해는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산업은행과 우정사업본부도 카드사업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분사나 합병을 하는 회사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실적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길거리 모집 등 영업형태가 공격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선 현금서비스나 카드론 등 현금대출 서비스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 역시 "마케팅 과열 경쟁이 일어나면 수익성과 건전성에 악영향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며 "한 회사가 비용 지출이 많은 상품을 출시하면 다른 카드사도 따라서 출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카드업계의 출혈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경보등'이 들어오자 금융감독원은 지난 1월 13일부터 전업계 카드사의 과당경쟁 실태 검사에 나섰다. 금융위기 이후 중단됐던 카드업계 점검이 2년여 만에 재개되는 것이다. 카드대란 당시에도 정부의 초기 대응이 늦어지면서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을 이번엔 피할 수 있을지 시장은 주시하고 있다.


<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  ⓒ 주간경향 & 경향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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