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 간 경제의 화두는 미국의 감세연장이었습니다. 이 감세연장은 미국의 경기부양책이라며 금융시장은 상승의 동력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미 감세연장은 사실상 3차 경기부양” 아시아투데이 2010.12.09 오전 10:40
이번 조치가 경기부양책인 건 맞습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부자 감세 부분이 아니라, 패키지로 같이 합의된 사항인 실업급여의 지급기간을 연장한 부분과 기업에 세제혜택을 주는 부분이 경기부양책입니다.
특히 실업급여 지급기간을 13개월 연장한 것은 강력한 경기부양책입니다. 실업자들은 실업급여로 수령한 자금 대부분을 생계를 위한 지출에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실업급여의 지급기간을 연장하지 않으면, 당장 이번 달에만 200만 명의 실업자에 대한 실업급여 지급이 정지될 예정이었습니다. 이 부분이 미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지급기간 연장으로 이와 같은 사태를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오바마와 공화당이 타협한 이 방안이 의회에서 통과된다는 가정 하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어제 민주당은 반대 방침을 공개천명한 상태입니다.
이번 타협안이 합의된 대로 통과된다면 분명히 일정부분 경기부양 효과를 낼 것입니다. 실업급여를 새로이 지급하는 것은 아니고 기존에 지급되던 것을 연장한 것뿐이긴 하지만, 실업급여 지급 정지를 예상하여 미리 위축되었던 소비를 진작시키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향후 소비 관련 경제지표에는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를 상쇄하고도 넘치는 부작용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난 며칠 동안 나타났던 시장의 반응 중에서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미 국채 가격이 폭락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6일 저녁 감세연장안이 발표되고 나서 7일과 8일 이틀 동안 국채 가격이 공포스러울 정도의 기세로 폭락했습니다.
위 그래프를 보시면 미 국채의 가격이 지지선으로 작용하던 이동평균선을 하향 돌파하며 폭락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감세연장이 국채가격의 폭락을 부른 이유는, 8천억 달러 정도로 추산되는 추가적인 재정부담을 안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국채 가격이 폭락했다는 말은, 국채의 금리가 급등했다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이틀 만에 미 국채금리는 0.3%포인트 뛰어올랐습니다. Fed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조정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0.3%포인트가 어느 정도 되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면, 시장이 단 이틀 만에 Fed의 양적완화정책의 효과를 완전히 날려버렸다는 것입니다.
Fed의 양적완화정책은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돈을 찍어내는’ 정책이 아닙니다. 양적완화정책의 목표는 민간분야의 실질 금리를 낮추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총수요를 자극하겠다는 정책입니다.
국채를 매입함으로써 국채금리를 낮추고, 그렇게 함으로써 국채 금리에 연동되어 움직이는 민간분야의 이자율(모기지금리가 대표적이겠지요)을 낮추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점에 대해서는 저의 책, ‘불편한 경제학’에서 충분히 설명드린 바가 있고, 이 곳 게시판 글쓰기에서도 몇 번씩 언급했습니다만, 여전히 제대로 이해되고 있지 못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무리도 아닙니다. 최근 미국에서도 2차 양적완화정책과 관련하여 이 점에 대한 오해가 계속 증폭되니, 버냉키를 비롯한 Fed의 인사들이 이 점에 대해 거듭 해명하느라 바쁜 상황입니다.
저도 조만간 1차 양적완화정책과 2차 양적완화정책의 성격을 분명히 하는 별도의 글을 정리해서 올려보고자 합니다.
그동안 Fed의 양적완화정책으로 인해 미 국채금리가 크게 낮아졌습니다. 그 결과 이에 연동돼서 움직이는 모기지금리도 ‘사상최저’ 수준으로 낮아졌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감세연장안 발표로 인해 국채금리가 급등했습니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앞으로 미국의 모기지금리는 크게 상승할 것입니다.
모기지금리가 사상최저인 현재도 미국의 주택가격이 재차 하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앞으로 모기지금리가 크게 상승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번 경제위기의 시작 자체가 미국 주택가격의 하락에 있다는 사실을 여러 번 강조해드렸습니다. 모기지금리가 크게 상승한다면 불을 보듯 뻔한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도 언론기사가 전하는 평가를 보면, Fed의 양적완화정책을 이유로 상승을 주장하더니, 이제 그 효과를 완전히 지워버린 감세연장안이 경기부양책이라며 재차 상승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요즘 언론이 전달하고 있는 주장은 거의 대부분이 이런 식이라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편 루비니 교수는 ‘채권시장 자경단 (Bond market vigilantes)’의 활동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루비니, ‘감세연장 , 미 국채 투매 불러올 수도’ 서울경제 2010.12.09 오전 9:03
채권시장 자경단이란, 위 기사에 나와있듯이 1984년에 만들어진 용어인데, 국가권력에 의해 잘못된 경제정책(정부의 재정정책이든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든)이 강행되어 자신들이 보유한 투자자산의 가격이 하락하여 손해를 입게 될 우려가 있을 때, 미리 그 나라 국채 등의 대량 매도에 나섬으로써 사전경고하고, 그와 같은 방식으로 그 나라의 경제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적극적인 투자자 집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현대 경제가 기반으로 삼고 있는 신용통화 시스템은, 시장에 의해 철저한 신용평가를 거쳐 통화가 만들어지는 시스템입니다.
시장에 의해 신용평가가 이루어지는 창구는, 우선 은행이 신용을 창출(=신용창조, 대출 창조)해낼 때, 은행에 의한 신용심사가 이루어집니다.
또 다른 한 축은 신용평가사입니다. 신용평가사는 기업이나 국가의 신용을 심사하여 신용등급을 공표합니다. 이를 통해 그 기업이나 국가의 신용 창출에 영향을 미칩니다. (어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아일랜드의 신용등급을 'A+' 에서 'BBB+'로 세 단계 하향조정한 것과 같은 방식입니다)
이처럼 은행과 신용평가사가 신용통화시스템에서 신용을 심사하는 공식적인 창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신용의 발행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채권시장 자경단은 비공식적인 창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신용의 유통시장에서 활동합니다.
발행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신용 심사는 채권의 발행시에만 이루어지므로, 평가의 시점이 구조적으로 지연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비해 채권시장 자경단은 신용의 유통시장, 예를 들어 국채 유통시장에서 공격적인 투매를 통해 보다 빨리 그리고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이는 신용의 유통’시장’이 국가의 국채 신용을 즉시 심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국가권력의 방만한 경제정책 운용을 견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지난 1년간 유럽 각국의 국채 유통시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루비니 교수는 이들 채권시장 자경단이 앞으로 미국을 주목하게 되지 않을까, 라고 경고하고 나선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지난 이틀간의 미 국채 가격 폭락은 이들 자경단이 이미 활동에 돌입한 결과라고 보입니다. 이들 자경단이 앞으로 미국을 본격적으로 지켜보겠다고 선언하고 나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앞으로 미국이 어떤 다른 경기부양책을 쓰든 간에 국채가격의 폭락과 국채 금리의 급등을 부를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경기부양책이든 추가적인 재정부담을 안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국채 금리의 급등은 Fed가 실시하는 통화정책(양적완화정책)의 효과를 날려버리게 될 것입니다. 결국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간에 상호 구축효과가 발생하는 셈입니다.
이러한 미국의 상황은, 이제 미국도 유럽과 유사하게 눈에 보이는 악순환의 고리에 완전히 빠져들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관련 글: 유럽 - 선순환 vs 악순환, 래퍼곡선의 재등장
왜 미국이 이러한 상태에 빠졌는가? 유럽과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이미 신용팽창이 극에 달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30년 넘는 기간 동안의 신용팽창에는 정부도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이 점에서 30년대의 대공황과 다르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대공황이 터지기 전까지 자유방임주의(정부의 불개입정책)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대공황을 맞이했을 때 정부의 재정은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부의 재정팽창과 그에 따른 재정적자가 이미 극에 달한 상태이기 때문에, 여기서 더 추가되는 경기부양책은 필연적으로 국채금리를 급등시키게 됩니다. 루비니 교수의 말마따나 채권시장 자경단의 활동을 부르는 것입니다.
이제 신용평가사들도 미국에 대한 경고에 나서게 될 것입니다. 금융개혁법의 일환으로 신용평가사에 대한 처벌조항과 손해배상 조항이 생겼다는 사실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신용평가사가 제대로 신용등급을 하락시키지 않는다면, 감당할 수 없는 소송사태에 휘말려들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신용등급을 강등시키게 될 것입니다. 결국 앞으로 미국 당국이 어떤 정책 수단을 취하든 선순환을 이루지 못하고 계속해서 악순환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현재와 같이 신용팽창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는 원래 사태가 당연히 이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 것인데, 감세연장안 발표 이후 이틀 동안 시장은 이를 매우 극적인 방식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자경단들이 매우 똑똑해보입니다. 효과를 극대화해서 전달하고 있는 듯 합니다.
※ 덧붙이는 글
지난 글을 올린 후에 9일 만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두 편을 목표로 잡는다고 말씀드렸던 것이 민망합니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고라 글쓰기에만 소홀했던 것은 아니고, 한 달에 한 번씩 잡지에 기고하던 칼럼도 마감날짜에 늦는 바람에 12월호에는 싣지 못했습니다.
저의 칼럼을 기다렸던 분들께는 죄송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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