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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바닥 또는 低點(저점)에 관하여 (1)★★★更生(갱생)의 때

◆자연운명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10. 10. 2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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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바닥 또는 低點(저점)에 관하여 (1) _ 2010.9.27

 

 

 

살다보면 지난 모든 삶을 통틀어 가장 지리멸렬한 때가 있기 마련이다. 이를 두고 나는 운명의 바닥 또는 低點(저점)이라 부른다. (물론 그 반대로 운명의 고점도 당연히 있기 마련이고.)

 

오늘은 이 바닥이 어떤 것이며 그 바닥으로부터 어떻게 일어나게 되는 것인지 또 어떻게 하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를 얘기해보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당장 그런 때를 맞이한 것이 아니라 해도 앞으로 그런 때가 올 것을 대비하여 읽어두면 도움이 될 것이고, 또 그런 때를 지나온 자라면 글을 읽고 자신의 경우와 대조하면서 반추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세상의 주기는 60 년이고 사람 또한 세상과 자연의 일부이니 60 년의 주기를 갖는다. 주기가 60 년이니 30 년의 오름과 30 년의 내림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럼 여기에 세칭 ‘잘 나가는’ 젊은이가 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젊은이의 지나온 성장 과정을 한 번 살펴보는 것이 좋다.

 

성장 과정이 크게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지는 않았다 해도 그런대로 평범하고 순탄했다면 그 젊은이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대단한 시련을 한 번 겪어야 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어린 시절 心的(심적)으로 아니면 물질적으로 무척 힘겨운 과정을 지나왔다면 그 젊은이는 속이 다져진 것이고 철이 든 것이니 앞으로 더욱 탄탄대로를 가게 될 것이라 봐야 한다.

 

가령 그 젊은이가 15 세 무렵에 힘든 바닥을 지났다면 45 세에 절정에 달할 것이다. 그러면 그로부터 15 년간은 그런대로 무난하게 살아가다가 15 년이 지난 60 세 무렵부터 서서히 기울게 되고 20 년이 지난 65 세부터는 힘들어져서 75 세에 또 다시 바닥을 맞이하게 된다.

 

이 60 년의 週期(주기)는 철저하리만큼 엄밀한 규칙성을 갖는다. 예외는 결코 없다.

 

이에 그렇다면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재벌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재벌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건 이건희 회장의 속을 몰라서 하는 얘기일 뿐 이건희 회장 역시 나름 대단히 힘겨운 때가 있었고 바닥점이 있었다.

 

이건희 회장은 나이 서른이던 1972 壬子(임자)년에 바닥점을 지났다. 이에 2002 壬午(임오)년에 절정을 맞이했고 이후 15 년이 경과하는 2017 년까지는 앞길이 그런대로 무난할 것이다.

 

재벌의 아들이라 해도 그 처지에서 바닥을 맞이하는 법이고 평범한 사람 역시 그 처지에서 맞이하는 것이니 둘 다 어렵고 힘들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가 않다. 돈이 많다고 해서 인생길이 무조건 쉽고 순탄한 법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인생 후반이 되어 수양을 많이 쌓은 이는 운세가 내리막길을 가도 별 탈이 없다는 점이 있을 뿐이다. 원래 세상일은 흐름에 거역하지 않거나 자신의 분수를 알면 하락 길을 가도 큰 탈이 없으니 또한 신기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인생이 노년에 들기 전까지는 미처 식지 않는 血氣(혈기)란 것이 있어 하락 운에서도 뭔가 數(수)를 부리려 하다보면 되레 큰 낭패를 보기도 한다는 점이다.

 

자기의 命(명)을 알게 되면 즉 知命(지명)한 이는 따라서 오름길이야 물론 좋을 것이고 하락 길이라 해도 그럭저럭 즐길 수가 있으니 그야말로 ‘삶의 기술’에 정통한 자라 하겠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 하겠다.

 

富貴(부귀)와 名利(명리)에 집착하는 자 중에 일찍이 내 그런 사람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없는 것 또한 아니다. 욕심 없는 村夫(촌부)라면 능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또 문제는 오늘날과 같이 돈만 밝히는 대한민국에서, 전국 방방곡곡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들쑤셔 놓지 않은 곳이 전무하다 보니 욕심 없는 촌부도 실로 드문 세상이다.

 

얘기가 엇나가고 있으니 다시 주제로 돌아온다.

 

인생의 바닥 지점은 어떤 상황일까?

 

지금 내 처지가 죽을 지경이라 느껴진다면 아직 바닥이 아니라 봐도 된다. 점점 어려워져서 미래가 무서워지고 있다면 역시 바닥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워낙 일이 풀리지 않아 어디 용한 점쟁이를 찾아가거나 무당을 불러 풀이라도 하고 싶다면 실은 그럴 필요가 없다. 아직 바닥이 멀었기 때문이다.

 

죽을 지경이 아니라 죽었다는 생각이 들어야 바닥이 가까운 법이다. 이제 모든 것이 끝이다 싶으면 대충 바닥이 가깝다 봐도 된다.

 

이제 더 이상 죽을 것도 망할 것도 없으며 더 내려갈 곳도 없어 어디 하소연할 마음도 들지 않을 때가 되면 그것이 대개 바닥 3년 전이라 보면 된다. 그때가 바로 인생운명의 가장 추운 때, 즉 大寒(대한) 때일 가능성이 크다.

 

바닥이 되면 모든 것이 고요해진다. 쓸 데 없는 것들을 다 내 속에서 밖으로 내다버렸기에 조용하다. 체면도 힘도 돈도 없고, 알던 사람도 보면 보거나 그렇지 않으면 보지 않아도 그만인 때가 되면 바닥이다.

 

그것이 바닥이고 운명의 새로운 立春(입춘)이니 更生(갱생)의 때인 것이다.

 

바닥부터는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하기에 두 번 살게 되는 것이다. 죽어보지 않은 자에게 죽음을 알려줄 수 없듯이 바닥을 겪어보지 않은 자에게 그 소감을 일러주기는 실로 어렵다.

 

어려서 바닥을 지나온 자는 대개 잘 기억을 하지 못하고 그저 어려웠다는 생각만 어렴프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자는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지니게 된 아픈 상처가 있지만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상처받은 내면 의식에 대한 치료를 반드시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성공하고 잘 나가는 사람 중에 인정머리가 없거나 세상에 대한 나름의 이상한 편견을 지닌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는 어릴 적 바닥을 지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지니게 된 부정적 고정관념 때문인 경우가 많으니 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별도로 언젠가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이 또한 자세한 얘기를 필요로 하지만 이 정도로 그치고 바닥에서 어떻게 일어나게 되는지에 대해 진도를 나가보자.

 

운세 바닥의 커다란 특징은 알게 모르게 나름 깊은 성찰과 반성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 성찰과 반성은 특히 나이가 더 들은 상태에서 맞이할수록 더 진지하다. 살아온 연륜이 있는 까닭이다.

 

지나온 일들을 되돌아보면서 많은 일들의 成敗(성패)가 외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라 자신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알게 된다.

 

누구를 탓하고 환경을 탓할 수도 있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스스로 얼마든지 그런 것들을 통제하고 비껴갈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니 모든 것이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운세 바닥에서는 문제가 나에게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하고 알게 되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장차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또한 막연하고 모호하다.

 

‘내가 문제였다’는 것은 알게 되지만, 다시 일어서기 위해 그리고 성공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되는지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그저 막막하고 모호할 따름인 것이 바닥의 감정이다.

 

먹고 살아가기 위한 아무런 수단이 보이지 않을 때가 바닥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 순간이 닥치면 자신도 모르게 창조적인 생각과 발상을 가지기 시작한다. 자신도 모르고 살았던 內面(내면)의 진정한 힘이 발휘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존립해야 할 가치를 찾아야 하는 것이고, 그럴 수 있는 가치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존립할 수 없다는 사실도 인정하게 된다.

 

먹고 살아가려면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와 근거가 있어야 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 운명의 바닥점이다.

 

방법까지는 찾아낼 수 없지만 아무튼 나의 존재를 입증해야 한다는 인식이야말로 운명의 바닥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근원적이고도 원천적인 동력이 된다.

 

말해야 할 내용이 좀 되는 탓에 내일 이어가고자 한다. 다음 글에서는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가 운명의 바닥에서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애기하고자 한다.

 

 

- 호호당의 김태규 칼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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