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 입력 2010.08.10 16:57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서울
◆ 도전받는 경제학 - 새 해법을 찾는다 ② ◆
'물가는 당분간 안정된 모습을 보일 것이나 경기 회복으로 수요 압력이 점차 증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5월 12일 오전 11시. 한국은행이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내놓은 의결문에서 향후 물가 상승에 대한 경고성 발언을 내놓자 시장이 갑작스레 요동쳤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0.13%포인트 급등하면서 이날 국채선물 단일 종목의 하루 총거래량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이래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던 물가 문제가 1년 반 만에 수면 위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한은이 향후 물가를 걱정한다는 것은 곧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신호가 됐던 것.
사실 위기 이전 소비자물가지수(전년 동월비)는 5.9%까지 치솟으며 국민을 물가 불안에 시달리게 했다. 하지만 위기 이후 물가는 2%대 수준에서 안정적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오히려 이러한 저물가 상황이 비정상적이었음을 금방 눈치챌 수 있다. 금융위기로 인해 한국은행이 사상 최장기간 저금리를 유지해왔는데도 불구하고 물가가 꿈쩍하지 않았다는 것은 '완화적 통화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는 교과서적 상식에 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잠시 경제학 교과서의 통화량과 총수요 간 관계에 대해 짚고 넘어가보자.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늘리는 완화적 통화정책을 실시하면 명목통화량이 증가한다. 명목통화량이 늘어나 실질화폐공급량이 증가하면 화폐시장에서 화폐의 초과공급이 발생한다. 이자율이 하락하는 것이다. 이자율이 떨어지면 민간 투자를 유발시켜 생산물 시장의 소득이 증가하게 된다.
또한 화폐시장에서 이자율이 하락해 화폐수요가 증가하게 되면 화폐시장의 균형을 달성하기 위해 소득은 감소하고 화폐수요는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다시 이자율은 떨어지고 총수요는 증가하는 균형점을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총수요가 증가하면 초과수요가 발생해 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
결국 통화시장과 재화시장의 균형점을 찾는 소위 IS-LM 모형에 따르면 통화량 증가가 물가 상승으로 귀결하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지난 1년 반이 넘도록 통화량 증가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상황을 목격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양적완화 정책으로 시중에 풀린 돈이 조만간 미국 경제의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을 법도 하지만 현실은 이와 많이 다르다.
미국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월 대비 0.1% 하락했으며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서도 1.1% 상승하는 데 그쳐 올해 들어 처음으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물가상승률 목표치 1.5~2%를 밑돌았다.
이처럼 통화량 증가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통화량과 물가 간의 고리가 끊겼기 때문이다.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렸지만 이 자금이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고 다시 중앙은행으로 돌아오면서 수요를 자극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서 시중은행에 공급한 본원통화는 지난 5월 67조8350억원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8년 8월(51조9810억원)에 비해 30% 이상 늘어난 상태다. 하지만 시중에 풀린 단기자금을 뜻하는 광의통화(M2)의 월별 증가율은 지난해 11월 이후 지난 5월까지 7개월간 9%대에 머무르고 있다. 금융위기 이전 매달 11% 이상 늘었던 것에 비하면 돈이 돌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시중에 풀린 돈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생산에 적절하게 쓰여야 한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생산능력의 상당 부분을 잃었다. 소위 산출갭 혹은 생산갭이라고 불리는 잠재 생산능력과 실제 생산의 차이가 상당 기간 마이너스에 머물고 있는 것.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급격한 경제 회복 덕분에 올 하반기 생산갭이 플러스로 돌아설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을 비롯한 일부 선진경제권의 경우 생산갭을 위기 이전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수년에서 수십 년이 걸릴 정도로 타격이 크다.
따라서 비용이 올라서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수요가 견인하는 인플레이션을 되찾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시간이 필요하다고 많은 이코노미스트들은 진단한다.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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