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콩나물국밥
(서프라이즈 / *새벽강* / 2010-02-03)
전주 하면 음식의 고장이요 그중에서 유명하기로는 비빔밥이다. 타지역에서는 전주 사람들이 삼시세끼 비빔밥만 먹고사는 줄 알겠지만 실상 전주 사람들은 생각보다 비빔밥을 잘 먹지 않는다. 나 같은 경우도 일 년에 겨우 너덧 그릇, 그것도 외지손님 접대할 때나 먹을 뿐이다.
비빔밥보다 유명하지는 않지만 전주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는 음식이 있는데 바로 콩나물국밥이다. 값이 비빔밥의 절반밖에 안 하고 허름한 뒷골목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는 서민 음식이다. 비빔밥이 메이저라고 하면 콩나물 국밥은 마이너다. 그런데 전주 사람이나 전주를 잘 아는 사람들은 비빔밥보다 오히려 콩나물국밥을 더 좋아하고 자주 즐겨 먹는 편이다.
전주 콩나물국밥은 크게 나눠서 두 가지가 있다. 토박이용과 관광객용이다. 맛이나 내용물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토박이용 콩나물국밥에는 징허게 매운 청양고추가 나오고 관광객용에는 약간 비린내 나는 듯한 맵지 않은 풋고추가 나온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고추의 차이는 바로 맹물과 소주의 차이만큼 각별하다.
밤새 숙취에 지친, 약간은 멍한 정신으로 해 뜨기 전 남부시장 허름한 국밥집 문을 열면 먼저 자리 잡은 주당 선배들의 눈인사 너머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훈훈한 인정이 피어난다. 투가리 콩나물국밥 한 그릇에 마른 김은 무제한으로 나오고 반숙도 못 되게 살짝 익힌 계란 두 알, 반찬으로는 잘 익은 김치와 깍두기 그리고 오징어 젓갈과 쇠고기 장조림 등이 나온다.
콩나물국밥을 자주 먹다가 마니아의 경지에 오르면 이 몇 가지 안 되는 반찬들이 제각각 역할이 있고 체계가 있는 매우 질서 정연한 조화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콩나물국밥의 국물 맛은 가히 세계적이다. 맛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육수의 시원하고 아늑한 맛이 목줄기를 타고 들어 내장 깊숙이까지 짜르르 소식을 전할 때면 어쩌다가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한다.
이런 국물에 지독히 매운 청양고추를 원 없이 털어 넣고 김이 펄펄 나는 뜨거움을 후후 불어 한입 맛보시라. 간밤의 숙취로 느글느글해진 내장에 지독히 맵고 뜨거우면서 시원하디 시원한 육수 국물이 넘어갈 때 속이 뻥 하니 뚫리며 정신이 멍해지는데 어떤 때는 잠시 숟가락을 들고 넋을 놓기도 한다. 이런 때 사람마다 가슴에 못다 푼 애환 하나쯤 있어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들이 호남벌 너른 자락에 뼛골 묻어가며 끈질기게 이어온 내력, 동학 농민군들이 모여 개벽 세상을 꿈꾸었던 거리, 수탈에 항거하고 억센 팔뚝으로 다시 일어나 척양척왜를 외치던 기개와 함성들이 풍남문 근처 남부시장이나 동문사거리 콩나물 국밥집에 배고픈 설움으로 남아 다시 돌아왔는가?
그렇다. 아직 잠도 덜 깬 느글느글한 속이 맵고 뜨겁고 시원한 국물에 꺼진 등불에 전원 공급하듯 세포 하나하나를 살려내어 삶에 지치고 숙취에 지친 몸을 풀며 가슴에 서린 애환까지도 녹여 즙을 내는 것이다.
맵다고 해서 속 다칠 염려는 하지 마시라. 마른 김과 계란 익힌 것 그리고 각종 개성강한 반찬들이 다 그런 사정을 미리 알고 서로서로를 보완하며 견제한다. 가히 극약들로 만든 명약이다.
이거 한 그릇 먹고 없는 서러움, 차별받는 서러움, 당하는 서러움 모두 이겨낸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들…. 그분들의 발걸음처럼 휘적휘적 일터 길을 서둘러 국밥집을 나서면 전주천 저 먼 곳 중바우산으로 아침 해가 뜬다.
세월은 흘러도 내력은 변하지 않음이라. 전주가 원래 이런 곳이다 보니 같은 한 바닥에서 정동영 같은 느글느글한 사람도 나오고 이광철 같이 매콤 시원한 사람도 나온다. 이것이 비빔밥의 고장, 콩나물국밥의 고장에서 있을 수 있는 특징이다. 상극이 모여 명약을 만드는 전주의 이치, 조화의 이치다.
천년고도 전주는 결코 안일하고 편한 민주주의 가치창출을 허용하지 않는다. 드디어 오늘 그 이광철이가 국민참여당에 입당했다. 그동안 민주당과 정동영 때문에 내장이 느글느글했던 전주사람들 모처럼 시원하게 속풀이 한번 하것다. 제대로 된 콩나물 국밥 같은 이광철이가 당당하게 국민참여당으로 왔으니 말이다.
▲ 민주당을 탈당한 이광철 전 의원이 3일 국민참여당에 입당했다. 사진은 이 전 의원(사진 우측)이 이재정 대표에게 입당서를 전달하고 있는 모습.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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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국회의원인 현실정치인이 호남지역에서 민주당 옷을 벗고 다른 당에 입당하기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보통의 용기가 아니고서는 결행하기 어려운 일을 이광철은 아무런 주저함이나 거리낌 없이 해 냈다.
‘가치없는 세력을 선택하느니 세력 없는 가치를 선택하겠다’는 그의 말에서 동학의 후예가 가지고 있는 당당한 기개를 본다. 시원하고 깊은 전주 콩나물 국밥 맛을 느낀다.
나는 이광철 전 의원에 대해 ‘천년고도 전주의 자랑’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는 데 있어 전혀 주저하거나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의 살아온 인생 역정이나 끝까지 노무현과 함께한 의리 그리고 어려움 속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바른길을 선택하는 용단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갑오 동학 농민전쟁의 후예들이 모여 사는 예향의 고장, 천년고도 전주…. 그곳에는 기꺼이 바보의 길을 뚜벅뚜벅 걷는 이광철이 있다.
누구든 전주에 오실 일 있으면 콩나물국밥 한번 잡숴 보시라. 먼 길, 어려운 길, 가슴에 날 서린 애환 한편쯤 담아 오셔도 좋다.
PS.
어느 집이나 콩나물 좀 더 달라고 하면 돈 안 받고 그냥 리필해 주니 참고 하시고…. 콩나물국밥 오천 원, 모주는 한잔에 천원…. 얼마 전까지 삼천오백 원씩 했는데 관광객들 덕분에 값이 올랐나 보다.
(cL) *새벽강*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11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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