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간문제와 희망 2. 시간문제: 조선업을 둘러싼 상황 3. 故 Tanta를 기리며 – 주택모기지 2차 파고 4. 미국의 11월 실업률에 대한 시각 5. 2차 파고의 트리거 – 변동모기지, 옵션 ARM 6. 시간문제: 상업모기지 7. 물방울 고문과 월가의 모기지 악몽 8. 물방울 고문과 월가의 모기지 악몽 2 9. 시간문제: 은행을 둘러싼 상황 10. 그 밖에 여러 가지 시간문제들
저는 미국 모기지 시장 상황을 분석하면서, 금년부터 본격적으로 문제가 될 프라임 모기지, 알트에이, 상업용 모기지의 대출규모, 여기서 생기는 손실규모가 서브프라임 모지지보다 훨씬 크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08년 10월에 나타났던 패닉국면을 다시 보게 될 것인가? 당시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만으로도 패닉이 발생했습니다. 마치 금융시스템 전체가 일시에 붕괴될 듯한, 자본주의가 망하기라도 할 듯한 공포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금년부터 문제가 되는 부문들이 서브프라임보다 크다면 다시 그 이상의 패닉 사태를 불러일으킬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시가평가제(mark to market)가 유보되었기 때문입니다.
시가평가제란, 시장에서 거래되는 증권화된 금융자산의 경우 시장에서 형성되는 시장가격(시가)으로 평가하여 재무제표에 반영시키라는 규정입니다.
이 규정이 의미하는 것은, 그 자산의 시장 거래가격이 떨어진다면 그 가격 하락분 만큼 대차대조표의 자산항목이 줄어들고, 또 그 가격 하락분 만큼을 ‘평가손실’로 손익계산서에 반영시켜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즉 분기별 실적 발표시에 시장가격 하락분 만큼이 평가손실로서 실적에 반영되는 것입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경우 특별히 문제가 되었던 것은, 그 대부분이 증권화(유동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귀에도 익숙해진 MBS, CDO로 유동화된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시장에서 거래되는 증권화된 금융자산’에 해당합니다. 즉 ‘시가평가’의 대상이 되는 것이며, 시장가격(시가)으로 평가해서 장부에 반영해야 하는 것입니다.
08년 하반기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화 문제가 본격적으로 터져나오면서 이들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유동화된 수천억달러 상당의 MBS, CDO의 시장가격이 불과 수개월만에 20-30% 정도로(하락률 70-80%) 폭락해버렸습니다.
당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연체율이 높긴 했지만 대출 은행들에게 수개월만에 수천억달러의 손실을 가져왔던 것은 아닙니다. 수천억달러에 달하는 시장가격 하락분 중에서 해당 분기에 실제 연체가 발생하여 대출은행에 실제 손실을 발생시킨 금액은 얼마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시장가격이라는 것은 미래에 예상되는 손실도 모두 반영해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증권화된 이상 모두 시장가격대로 장부에 반영해야 했습니다. 이 말은 실제로는 아직 만기가 아예 도래하지도 않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들에 대해서도, 즉 아직 실제로 발생하지 않은 수년 뒤의 손실에 대해서도 그 시장 가격이 폭락한 만큼 당기의 손익계산서에 모두 반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때문에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관련된 MBS, CDO를 보유한 금융기관들은 08년 3분기와 4분기에 이 가격하락분(막대한 평가손실)을 단번에 모두 손실로 반영해야 했습니다. 실현된 손실이 아니라 평가손실이긴 하지만 어쨌든 당기의 재무제표에 모두 손실로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단번에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미국 4위의 대형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가 한 방에 나가떨어진 이유입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증권화되지 않고 그냥 은행들이 대출상태로 보유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해당분기에 실제 실현된 손실만을 은행의 장부에 반영하게 됩니다. 은행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은 원래 별다른 실수를 하지 않는 한, 분기마다 상당한 흑자를 내게 되는 구조입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연체 규모가 상당했지만 만기까지 예상되는 손실을 모두 한꺼번에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매 분기마다 실현되는 손실만을 해당 분기에 나누어 인식한다면 다른 부문에서 발생하는 수익으로 그 손실을 커버하면서 버텨나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웰스파고의 사례가 그러했습니다. 베어스턴스와 리먼 브러더스가 망하고 메릴린치는 인수합병되고, 씨티그룹은 정부가 긴급제공해준 구제금융으로 간신히 연명하는 상황 속에서 웰스파고는 큰탈없이 견뎌냈습니다.
웰스파고도 서브프라임 모기지대출 비중이 높은 대형은행(서브프라임 사태의 5대 진앙지 중 하나인 캘리포니아 지역 비중이 높음)이지만 이를 직접 보유하고 있을 뿐, 별도로 증권화상품인 MBS, CDO를 보유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아마도 대주주인 워렌 버핏(버크셔 해서웨이)이 파생상품에 대해 극도로 비판적이었다는 점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므로 웰스파고는 해당분기에 실현된 손실만 장부에 반영하면 되었고, 이는 다른 부문의 수익으로 커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어쨌든 웰스파고만의(어쩌면 워렌 버핏 만의) 드문 사례였을 뿐, 대부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증권화되었고, 이 증권화 상품은 대부분의 금융기관들 대차대조표에 자산 포트폴리오 중 하나로 들어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정과 시가평가제가 결합되어 금융시장의 패닉은 마치 ‘빚의 속도’로 느껴질 만큼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위기의 확산으로 금융시스템 자체가 붕괴할 지도 모른다고 우려한 미국 정책당국은 결국 시가평가제 적용을 유보하기에 이릅니다.
이후 09년 1분기 결산부터는 시가평가제를 적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결과 미국의 금융기관들은 이에 힘입어 09년 1분기부터 대규모 흑자전환을 공시하게 됩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그 동안의 분석 글들을 통해서 09년말 현재 이미 프라임모기지, 알트에이, 상업용 모기지의 부실규모 합계가 08년 당시의 서브프라임 부실 규모를 훌쩍 넘어섰다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2010년 올해부터는 급격하게 부실규모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사정을 설명드렸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시가평가제가 적용되지 않습니다.(그리고 이들 모기지들은 서브프라임보다 증권화 비율 자체가 현격하게 적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해당분기에 실현된 손실만 반영하면 됩니다. 해당분기의 다른 부문의 수익으로 커버가 가능한 것입니다. (물론 커버가 가능하다는 얘기는 월가의 대형은행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입니다. 상업모기지 대출 비중이 높은 지역 중소은행들은 계속해서 파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 글,
에서 살펴본 씨티그룹에 대한 평가, “씨티그룹이 09년 4분기 손실 규모가 08년 같은 기간(시가평가제 적용 평가손실 포함)에 비해 급감했지만, 대출 손실(해당분기에 실현된 손실)은 오히려 늘었다” 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그 외에 월가의 대형은행들에 대해서, “상업용과 주택 모기지 대출 부문의 손실은 더 커질 가능성이 있지만, 다른 사업부문 호조로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 “모기지 부실 정도가 은행 존립을 위태롭게 할 정도는 아니지만, 미래 수익에 악영향을 미칠 것” “월가 은행들은 가계 대출 부문의 부실이 증가할 것으로 보고 충당금을 쌓고 부실자산을 상각하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는 등의 언급이 나오는 것은 모두 이상에서 살펴본 상황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시장에서 08년 10월과 같은 패닉이 다시 발생하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금융시스템 자체가 붕괴할 위기도 생겨나지 않을 듯 합니다. 대신 끊임없는 물방울 고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 번에 소개해드린 미국의 T2 파트너스의 분석자료에 따르면 앞으로 5년간 매 분기마다 막대한 손실을 인식해야 하고, 5년이 지나고 나야 정상을 되찾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료는 웰스파고의 옵션ARM이 2014년과 15년에 1천억달러 정도가 recast가 도래한다는 사실을 역시 반영하고 있지 못합니다. 이렇게 보면 5년이 아니라 6년동안 매분기마다 큰 손실을 인식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앞선 글들에서 살펴보았듯이 09년은 쉬는 시간이었고 10년부터 물방울 고문이 본격화됩니다. 월가의 대형은행들을 단번에 도산시킬 정도는 아니지만, 매 분기로 나누어 인식한다고 해도 여전히 막대한 손실규모입니다. 앞으로 6년간 미국의 대형은행들은 한 분기도 쉬지 못하고, 매 분기마다, 매년마다 끊임없이 물방울 고문의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추가로 고려해야할 사항이 두 가지 있습니다.
우선 시가평가제 유보로 회계의 투명성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시가평가제가 적용되지 않는 이상 MBS, CDO 등 증권화상품의 경우 분기의 손실을 어느 정도로 잡을 것인지는 각 금융기관들에게 상당한 재량(?)이 주어집니다. 지난 글에 보듯이 충당금을 제대로 적립하고 있는지에 대해 미국의 메이저 언론들도 벌써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본격적으로 손실규모가 확대되는 올해는 어떨지...
또 하나는, 월가의 대형은행들은 존립을 위협받을 정도가 아니라 해도, 각 주의 중소형은행들은 이미 쓰러져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작년 140개, 올해 4개)
금융시스템은 자본주의의 혈관에 해당합니다. 심장 주변의 대동맥, 대정맥은 버티고 있으나 모세혈관들이 하나씩 폐사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상업용 모기지 대상은 호텔, 쇼핑센터, 업무용 빌딩 등입니다. 이들이 압류되고 사업주가 파산하면 바로 직접적으로 지역경제에 실업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실업 증가는 다시 주택모기지(이는 대형은행들의 영역) 부실을 초래하게 됩니다. 직접적으로 악순환을 가속시키는 것입니다.
대형은행들에게는 물방울 고문과 같다고 했지만, 미국 경제 전체로 보면 피를 한방울씩 끊임없이 흘리는 것과도 유사합니다. 당장 몸에서 빠져나가는 한방울의 피로 쓰러지거나 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쉬지않고 한방울 한방울, 낮이고 밤이고 매일, 매주, 매월 쉬지않고 빠져나간다면 결국은...
(글을 좀 더 써야 하는데, 이 주제의 글이 생각보다 길어지네요. 추가 글을 월요일 아침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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