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준비돼 있는가
한겨레 | 입력 2009.11.28 13:00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강원
[한겨레]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기상이변·자연재해 습격과 유행하는 2010년 지구 종말론
2000년대 이후 한반도 지진 두 배로
시곗바늘이 서기 2000년 1월1일 0시를 가리키는 순간, 이제 종말론은 다시 새로운 세기말의 몫으로 넘어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때부터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 '인류 절멸의 날'에 관한 새로운 가담항설이 세계 전역을 뒤덮었다. 바로 2012년 지구 종말론이다.
어디선가 고대 마야인들의 달력 이야기가 나왔고, 정체불명의 외계 행성과의 충돌설이 나왔고,
노스트라다무스의 숨겨진 예언이 나왔으며, 인공지능 주식시장 변동 예측 프로그램 '웹봇'(Webbot)에 대한 구설까지 더해졌다. 그리고 그 구구한 소문들의 열기에 최근 개봉한 할리우드 재난영화 < 2012 > 는 기름을 부었다.
하지만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리라'던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지구 멸망 예언이 단지 선언의 힘으로 세기말의 불안을 자극했던 것과는 달리, 이 일련의 '2012 지구 종말론'은 꽤 현실적인 근거들로부터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몇년간 기상이변으로 가히
전대미문의 자연재해들이 해를 거르지 않고 지구 곳곳을 습격했고 설상가상으로 덮친 범지구적인 경제위기까지 그 가설을 부채질했다. 2012년에 정말로 종말의 날이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많은 반박은 그 예언들의 근거가 무척 희박하다고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국지적인 대형 재해의 위험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당신은 얼마나 준비하고 있는가?
사례 1.
2003년 8월14일, 뉴욕을 포함한 미국 동부와 캐나다 일부 지역에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지하철과 교통통제 기능이 마비되어 사람들은 집까지 걸어서 귀가해야 했으며, 심지어 공항의 비행기도 이착륙을 할 수 없었다. 귀가한 시민들은 자신의 가정에서 수돗물도 공급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냉장고에서는 음식들이 부패하기 시작했다. 한여름의 대도시를 덮친 이 정전 사태는 몇몇 지역에서 1주일 이상 지속되었다.
사례 2.
2005년 8월29일 아침 7시, '카트리나'라는 이름의 허리케인이 시간당 최대풍속 225㎞의 속도로 미국 뉴올리언스에 상륙했다. 불과 두 시간 만에 카트리나가 몰고 온 폭우는 제방을 무너뜨려 도시를 물에 잠기게 했다. 일주일간 무려 18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 대형 참사를 앞두고 미처 피하지 못했던 생존자들 중 64%가, 후일 '대피할 수 있었지만 그 정도로 강력할 줄 몰랐다'고 답했다.
수도와 전기 공급 중단. 기반시설들이 건실하지 못했던 80년대까지의 한국에서는 무척 흔한 일이었다. 몇 달에 한 번씩 의례적으로 겪어야 했던 터라 단전과 단수의 대비책은 거의 모든 가정에 마련되어 있었다. 단수 안내가 나오면 온 가족이 미리 양동이와 대야, 욕조에 물을 받았고 갑작스레 전깃불이 나가면 투덜거리면서도 익숙하게 양초에 불을 붙였다.
오늘날 이처럼 일상화된 단전과 단수를 걱정하는 이들은 더는 없다. 하지만 일상적이고 통제 가능했던 20년 전의 상황과 달리, 오늘날 단전과 단수는 비일상적이되 통제 불능의 상황에서 발생한다. 튼튼히 구축된 전기·수도의 인프라 덕에 자잘한 위험은 줄어들었으나 그 인프라의 한계를 넘어서는 재난에는 속수무책이라는 것. 지구상에서 최고 수준의 문명과 도시 제반 시설을 자랑했던 뉴욕의 대정전 사태가 이를 증명한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지난겨울 강원도 태백 인근 주민들이 겪은 식수난을 떠올려 보자.
80년대 일상이었던 단전·단수 최근엔 재앙으로
매해 통제 불능의 재해로 되돌아오고 있는 자연의 앙갚음은 전에 없던 대비책을 인류에게 요구한다. 하지만 뉴올리언스의 허리케인 생존자들이 증언하듯, 겪기 전까지 그것은 남의 일이다. 특히 아직까지는 초유의 재난과 맞닥뜨리지 않은 우리나라의 인식은 더더욱 그렇다.
과연 한국은 안전한가? 지난 8월 대만에서 7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슈퍼태풍 모라꼿. 기상학자들은 이 태풍이 한반도를 운 좋게 비껴갔을 뿐이라고 말한다. 온난화와 함께 슈퍼태풍이 발생할 확률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으며 그것은 당장 내년에라도 남해바다를 정면으로 통과해 북상할 수 있다. 반대로, 지난해 태백 시민들이 겪어야 했던 극심한 가뭄은 머지않아 한반도 전역의 문제로 확대될지 모른다.
그저 4대강에 보를 설치해, 흘러야 할 물을 가두는 식의 헛된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래도 이웃 나라 일본에 비해 지진 걱정은 덜하다? 90년대까지 한반도에서 발생한 지진은 연평균 20회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그 횟수는 연간 두 배 이상 뛰었고 강도 또한 세지고 있다.
재난 대피가 새로운 재난을 야기해서는 곤란
이런 대형 재난의 위협에 대한 개개인들의 대처는 '전부 아니면 무'로 나뉜다. 지나친 위기 공포증 아니면 불감증이다. 시카고대학의 교수 캐스 선스타인은 저서 < 최악의 시나리오 > 에서 '가장 참을 만한 극단적 부담을 줄이는 방식'에 따른 '재난적 위험의 사전예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나친 무관심도 곤란하지만 '재난을 피하기 위한 대응이 그 자체로 새로운 재난의 위험을 낳는다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개인 혹은 가정의 재난 대비는 이런 원칙에서 출발하는 편이 좋다. 일상생활과 여가활동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사소한 사고에 대한 준비의 마음가짐과 대형 재난에 대한 경각심은 생각보다 거리가 멀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재난정보센터(safekorea.go.kr)에서 권장하는 가정용 재난용품 리스트 여차하면 삽시간에 들고 뛰쳐나갈 수 있도록 아래의 물품들을 별도의 가방에 보관해 두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다만 비상식량은 필요 시 국가에서 배급하므로 지나친 사재기는 자제하라고 당부했다.
짐 싸기 목록 | 비상식량(라면·통조림 등 최소 3일치), 음료수, 손전등, 건전지, 성냥(라이터), 휴대용 라디오, 비상의류, 속옷, 병따개, 화장지, 수건, 구급용품, 귀중품(현금·보험증서), 안경 등(생활용품), 생리용품, 종이기저귀.
< 지큐 > 코리아 피처 에디터 문성원이 추천하는 명품 재난 아이템들 티타늄 재질의 포켓용 멀티 툴, 레더맨(Leatherman) 사의 'Charge 07 TTi' | 나이프는 물론 각종 집게, 커터, 드라이버 등 총 18가지 기능을 제공한다. 가격 26만원.
웨스턴 마운티니어링(Western Mountaineering)의 '버설라이트' 침낭 | 420~960g의 초경량으로 휴대가 쉽고 850+ 필로 가득 채워진 구스다운의 보온력은 영하 10℃의 환경에서도 단잠을 이룰 수 있게 한다. 가격 119만1000원.
무전원 고성능 라디오 소르보(Sorbo) '솔라 에너지 라디오' | 태양열과 수동 발전으로 작동되며 에이엠(AM), 에프엠(FM)은 물론 외국에서의 조난 상황에서도 기상정보 방송을 들을 수 있는 광대역(WB)을 지원한다. 가격 2만3300원.
방한 의류 | 유니클로(uniqlo.kr)의 '히트텍' 제품들과, 두건·마스크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버프'를 권한다(buff.kr). 싼값으로 최상의 보온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제품들. 평상시 패션 아이템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지운 번호도 다시 저장! 모든 국가기관·단체들은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므로 재난 위기에 처했을 때 무턱대고 119 번호만 누르지 말고 해당 기관이나 단체의 상황실에도 에스오에스(SOS)를 보낸다면 맞춤형 정보와 구난을 받을 수 있다.
⊙ 산에서 길을 잃었는데 악천후까지
국립공원관리공단 재난관리팀 . (02)3279-2824.
⊙ 거의 모든 재해에 구호품을 지원하는
대한적십자사 안전관리실 . (02)2080-5910.
⊙ 폭우로 집 안 전기시설의 침수와 감전 사고가 걱정될 때
한국전력공사 안전재난관리팀 . (02)3456-4151.
⊙ 갑자기 멈춰선 지하철, 도대체 무슨 일이야?
서울메트로 안전관리실 . (02)520-5085.
⊙ 헉, 제방이 무너진다.
한국농촌공사 재해대책상황실 . (031)420-1982.
⊙ 갑작스런 산사태로 도로가 막혔다면
한국도로공사 방재총괄팀 . (02)2230-4063.
이외에 거주지 구청·군청의 대표번호와 지역별로 주요 민간 봉사단체를 검색하여 메모해 둔다면 한시가 급한 위기상황에도 발 빠른 대처가 가능하다.
글 조민준 객원기자
zilch321@empal.com ·표지디자인 이정희 기자
bbool@hani.co.kr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 한겨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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