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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번역을 의뢰받은 것은 2023년 12월이다. 책의 개요만 공개된 프로포절(사업계획서) 상태였다. 최종 원고는 2025년에야 나온다고 했다. 저자는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출신으로 현재 하버드대학 국제경제학과 교수이며 세계 금융위기의 역사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이번엔 다르다’를 출간한 케네스 로고프였다. 일찍이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이단의 경제학’을 번역한 적이 있었지만 경제학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었고 달러의 역사가 아주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조 바이든이었고 한국 대통령은 윤석열이었다.
원서 최종 원고를 받은 것은 2025년 1월이다. 번역은 5월에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했고 한국에서는 윤석열이 불법 비상계엄으로 탄핵돼 제21대 대선을 앞두고 있었다. 트럼프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이른바 상호관세를 공포했다. 이 조치가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미국이 천문학적 재정 적자를 해소하고 달러 패권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느닷없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책의 내용은 저자가 인터뷰에서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으니 이 후기에서는 번역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점과 새롭게 알게 된 점을 언급하는 게 좋겠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달러의 금태환(달러와 금을 일정 비율로 바꿔줬던 제도)을 중단한 뒤로 달러는 종잇조각에 불과한데 미국이 이런 달러를 찍어내 전세계의 물건을 계속해서 사들일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각국은 대체 무엇을 믿고 미국에 물건을 파는 것이며 미국 국채를 사는 것일까? 20장 ‘통화 패권의 혜택’에서 자세히 설명하듯 미국의 금융시장은 깊고 유동성이 커서 채권국은 돈을 떼어먹힐까봐 걱정하지 하지 않아도 된다. 미국 국채가 전세계 금융거래에서 담보로 쓰이는 ‘보유편익’도 유리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미국이 ‘과도한 특권’을 누리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21장 ‘과도한 특권인가, 대표 없는 과세인가?’에서 보듯 미국은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면서도 대외채무는 별로 늘지 않았다. 이는 외국인의 대미 투자와 미국인의 대외 투자 사이에 수익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인데, 빅테크 기업의 급속 성장으로 이 추세가 역전됐다는 것도 흥미롭다.
한편 중국은 수십 년간 이어진 건설 열풍으로 1인당 주택 면적이 유럽 부자 나라들을 앞질렀다. 이렇게 공급 과잉 현상이 일어나면 주택 가격이 폭락해야 정상인데도 주택 가격은 여전히 안정적이거나 상승하고 있다. 그 이유는 건설 공급 과잉이 작고 가난한 3선 도시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이 도시들에서는 실제로 주택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3선 도시들에서 경제가 성장하지 않고 인력이 1선 도시로 유출되면 부동산 침체로 인한 경기침체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중국의 일대일로(육·해상 신실크로드) 사업은 건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일종의 식민지 개척 아닐까? 중국 경제가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되면 어떤 해법을 내놓으려나?
금본위제 폐기가 사실상 채무불이행이라는 지적은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미국은 채무불이행 전력이 있는 나라이며 대외 채무를 감당하지 못할 지경이 되면 이 카드를 만지작거릴지도 모른다. 저자는 재정건전성과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준비통화의 요건으로 제시하는데, 현재 미국은 두 요건 다 위험수위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닉슨 행정부의 재무장관 존 코널리가 “우리 달러, 너희 문제”(본 책의 원제)라며 적반하장 격으로 나왔듯, 이번에는 대규모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전세계가 보유한 미국 국채를 휴지 조각으로 만들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3500억달러(약 501조1650억원) 대미 투자를 강요해 한국 경제를 달러에 더욱 종속시키려 한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은 외환보유고에도 적용된다. 달러 패권이 땅에 떨어지는 날 부디 한국 경제가 무사하길.
노승영 번역가 noh@socoo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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