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의 조세개편안을 접했을 때의 나의 솔직한 인상은 변칙복서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중도) 진보와 (극우) 보수의 관성적 대립 구도에서 벗어난, 전례를 찾기 힘든 정책 조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진보의 색채는 증세에서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이번 개편안은 윤석열 정부가 깎아주었던 법인세율을 다시 되돌렸다. 그 결과 국내 법인에 적용되는 세율이 모든 과표구간에서 1%포인트씩 인상됐다. 국내 주식 증권거래세도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이전 수준인 0.2%로 복원되었고, 금융사의 1조원 초과 수익에 1.0%의 교육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변형된 횡재세’도 들어왔다. 이를 통해 확보될 추가 세수는 연간 약 8.2조원. 2010년 이래 최대 규모의 증세다. 이는 말로는 ‘건전 재정’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감세에 집착해 세수 확보에도 실패하고 성장 동력까지 고갈시킨 전임 윤석열 정부의 무능한 행보와 뚜렷하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보수적 색채도 있다. 자본시장 활성화와 주주 환원 제고를 목표로 한 배당소득 저율 분리과세 도입이 바로 그것이다. 배당성향이 높은 기업(배당성향 40% 이상)이나 배당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배당성향 25% 이상 및 직전 3년 평균 대비 5% 이상 증가)의 배당금에 대해서는 기존 세율보다 최대 10%포인트 낮은 35%로 분리과세하겠다는 것이다. 배당소득은 노동소득은 물론 다른 자본소득에 비해서도 더 불평등하게 분포되어 있다. 2023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상위 0.1%에 속하는 약 1만7천명의 배당소득은 한 사람당 평균 8억원에 달한다. 반면 하위 50%는 1만2천원에 불과하다. 이번 세제 개편으로 이들 하위 집단의 세 부담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상위 0.1%는 최대 약 8천만원의 세금 혜택을 누리게 된다. 전통적인 진보의 시각에서 보면 이러한 접근방법은 조세 형평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 이전 민주당 정부에서는 채택하기 어려웠을 정책이다.
그렇다면 이재명 정부는 왜 이 정책을 수용했을까? 첫째, 자본시장 활성화라는 경제 논리다. 기업의 배당 확대는 개인 투자자의 소득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증시 활력의 동인이 될 것이라는 계산이다. 자본시장이 활성화되면 혁신기업의 자금 조달도 용이해지기 때문에 결국 배당-소득-투자의 선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논리였다.
둘째는 정치적 고려다. 민주당 내부에는 ‘부동산 가격 급등 → 정권 상실’이라는 트라우마가 깊게 자리잡고 있다. 노무현·문재인 정부 시절의 부동산 폭등이 남긴 정치적 상흔은 여전히 생생하다. 따라서 부동산으로만 몰리는 자산의 흐름을 조금이라도 주식으로 돌리려는, 이른바 ‘머니무브’(money move) 정책은 정치적으로 시도할만한 실험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결국 이번 배당소득 분리과세는 단순한 자본시장 투자자를 위한 세제 혜택을 넘어선, 정권 안정을 위한 전략적 고려로 해석할 수 있다.
마지막 자본시장을 통한 재벌 체제의 변화 가능성이다. 그동안 보수 언론과 재벌은 자본시장 개혁 논의가 나올 때마다 “이런 정책이 시행되면 (혹은 시행되지 않으면) 한국 자본시장이 외국 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될 것”이라는 공포를 조장해왔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소액투자자들은 지배주주의 사익을 위한 일감 몰아주기, 물적·인적 분할, ‘자사주 마법’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힘없는 개미’에 불과했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판도는 달라졌다. 개인투자자들이 자본시장의 주요 행위자로 급부상하면서 변화의 문이 열렸다. 어떤 경제 이슈든 유권자 절반의 이해관계와 맞닿는 순간, 시장의 논리는 정치의 논리에 의해 재편된다.
개인투자자라는 새로운 이해집단이 조직화되고 정치적 영향력을 갖게 되는 순간, 재벌 총수 일가의 전횡을 견제할 정치·사회적 압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단기간에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배당 확대 정책이 투자자들의 참여를 촉진하고, 강화된 상법 개정과 결합해 시너지를 낸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과거처럼 총수 일가의 무책임 경영과 사익 추구가 당연시되고 묵인되던 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세제 개편안은 재벌 기득권에 균열을 내는 역사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배당소득 저율 분리과세의 혜택 폭은 정부가 제시한 원안보다 확대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실제로 정부의 개편안이 발표된 날 시장 반응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이 35%의 최고세율(즉 10% 포인트의 우대세율)이 배당을 늘리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는 시장의 기대가 이소영 의원이 제안한 25% 세율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상법 개정과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에 대한 기대로 만들어진 시장 모멘텀을 계속해서 이어가기 위해서는 우대세율 폭은 지금보다 더 확대하여 이소영 의원이 애초 제안했던 수준으로 강화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대신 고배당 기업 요건은 더 강화해서 예컨대 ‘배당성향 25% 이상 직전 3년 평균 대비 배당 10% 이상 증가’ 등으로 높이는 것이 애초의 정책 취지에 부합하는 균형점이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칙복서 전략이 만능은 아니다. 하버드대학의 알레시나, 미아노, 스탄트체바가 지적한 ‘실재의 양극화(polarization of reality)’ 상황에서는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실재의 양극화란 단순한 의견이나 해석의 차이를 넘어, 불평등 수준이나 사회이동성 정도처럼 검증가능한 사실마저도 지지 정당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인식하는 ‘인지적 내전’ 상태를 말한다.
이번 세제 개편안의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 환원을 둘러싼 논쟁도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번 안을 두고 한쪽에선 자본이득 과세의 정상화를 통한 조세 정의의 회복이란 긍정적 평가를, 다른 한쪽에선 시장을 위축시키는 자해 행위이자, 부동산 부자는 외면한 채 주식 투자자만 옥죄는 처사라 반발한다.
연말 세금 회피 목적 매도가 시장 변동성을 높인다는 주장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이런 인식 분열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고려대 김우찬 교수 분석에 따르면, 개인 주주 영향력이 큰 코스닥 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의 12월 매도-1월 매수 패턴은 실제 존재한다. 하지만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12월 순매도가 발생한 8개 연도 중 코스닥 지수가 실제 하락한 해는 2018년과 2022년뿐이었고, 1월 순매수가 있던 9개 연도 중 지수 상승은 4번에 그쳤다. 즉 세금 회피 목적의 연말 매도와 연초 매수 행위는 존재했지만, 실제 주가 변동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객관적 데이터조차 개인이 소비하는 미디어나 속한 집단에 따라(주식 전문 유튜브나 텔레그램 채널 등) 전혀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변칙복서 전략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양극단 세력에게 실용적 접근법은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데이터보다 정치적 입장이 우선하는 현실에서, 이재명 정부의 조세 재정 정책들은 앞으로도 유사한 양극화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변칙복서 메타포에서 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시사점은 이재명 정부가 12라운드를 모두 버티며 판정승을 노리기보다는 초반에 확실히 승기를 잡아야 한다는 점이다. 조세·재정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이재명 정부의 시간은 길지 않다. 어쩌면 내년 지방선거 이후 정기국회가 사실상 마지막 기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미래 세대를 위한 담대한 개혁의 동력은 이번 개편안이 만들어낼 가시적 성과,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국회내에서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이번 세제 개편안의 국회 처리에 주목하는 이유다.
최한수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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