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
[미디어오늘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기획재정부 세종청사. 사진=기획재정부 제공
기획재정부(기재부)는 힘이 세다. 검찰이 칼을 독점해 힘을 가지듯, 기재부는 숫자를 독점해 힘을 갖는다. 기재부는 단순히 숫자를 발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해석 권한마저 독점적으로 행사한다.
심지어는 대한민국 헌법까지 독점적으로 해석한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는 예산 편성권이 없고 예산 심의권만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헌법 제54조는 “국회는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확정한다”고 규정한다. 얼핏 보면 국회가 정부안을 증액하거나 감액해 확정할 수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회는 감액은 할 수 있으나, 증액할 권한은 없다. 헌법 제57조가 “국회는 정부 동의 없이 각 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는 정부안을 감액만 할 수 있되, 증액에는 반드시 정부 동의가 필요하다는 이 조항을 '국회의 예산 심의권의 제약'이라고 부른다. 반쪽짜리 권한이란 뜻이다.
헌법 제57조를 잘 뜯어보자. 국회 증액시 정부 동의가 필요한 것은 '각 항의' 금액을 증액할 때다. 그런데 이 조항에서 말하는 '각 항'은 무엇일까? 기재부는 '각 항'을 예산안 각 리스트(list) 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그렇게 되면 국회는 정부 동의 없이는 어떤 세부사업도 증액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나는 헌법에서 말하는 '각 항'을 예산안 분류체계인 장관항목(長官項目)에서의 항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모든 예산안 각 세부사업은 16개의 장(분야), 그 아래 관(부문), 항(프로그램), 그리고 세부사업으로 구성된다. 만약 '항'을 프로그램 단위로 해석한다면, 국회는 같은 항 안에서 세부사업 간 조정을 통해 증액을 할 수 있다. 즉, 한 세부사업을 감액하고 다른 세부사업을 그만큼 증액하는 방식이다. 이는 항 전체의 총액을 늘리지 않으므로 헌법 제57조에 위배되지 않는다.
이런 해석은 헌법의 입법 취지에도 부합한다. 국회에 감액권만 주고 증액권을 제한한 이유는 무분별한 증액으로 재정 건전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동일 항 내에서 감액과 증액을 맞교환한다면 총액은 변하지 않아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다.
특히, 이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 정신인 3권 분립에 더욱 부합한다. 행정부는 예산을 편성하고, 국회는 예산을 심의·확정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국회가 확정한 예산조차 행정부가 전용(轉用)과 이용(移用)을 통해 바꿀 수 있다. 전용은 항 내에서 세부사업 간 금액을 옮기는 것이고, 이용은 항을 넘나드는 조정이다. 전용은 행정부 재량이지만, 이용은 반드시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한다. 그렇다면 예산 심의 과정에서도 같은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국회가 항을 넘나드는 증액을 원한다면 정부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항 안에서 세부사업을 조정하는 것은 정부 동의 없이 가능해야 3권 분립의 균형이 유지된다.
기재부는 대한민국 헌법의 해석부터 국가재정지출의 총량 통계를 만든다. 문재인 정부는 기재부에게 적극적 재정을 요구했다. 기재부는 총지출 규모를 늘렸다. 그러나 기재부는 당시 융자금과 출자금을 늘렸다. 문재인 정부 첫해 융자금 지출은 29조 원에서 5년만에 47조 원이 되었다. 융자금은 말그대로 빌려준 돈이라 차기정부에서는 융자금 회수수입으로 들어오게 된다. 즉, 총지출 통계는 증가하지만 재정건정성에 미치는 효과는 제한적이다.
윤석열 정부는 기재부에게 건전재정을 주문했다. 기재부는 융자금이나 출자금을 줄였다. 10조 원에 달했던 출자금이 3년만에 6조 원으로 줄었다. 출자는 소비성 지출이 아니라 자본적 지출이다. 즉, 지출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 자산이 그만큼 증가하는 것이다. 국가의 현금이 주식 자산으로 전환되는 것이라 재정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다만, 차기정부는 추가로 출자를 더 많이 해야 하는 부담이 생길 수 있다.
즉, 문재인 정부가 적극 재정을 하라고 하면 융자금, 출자금을 늘려 총지출 통계만 늘리고, 윤석열 정부가 건전재정을 하라고 하면, 융자금, 출자금을 줄여 총지출 통계만 조절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OECD 국가는 융자금 지출액 총액을 총지출 통계에 그대로 포함시키지 않는다. 기재부가 '발명한' 독특한 총지출이라는 통계 내에서만 융자금 지출 등으로 총지출 통계가 조절 가능하다.
▲ 기획재정부 박금철 세제실장(오른쪽 세 번째)이 7월29일 정부세종청사 민원동 브리핑실에서 2025 세제 개편안 상세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재부를 출입하는 기자는 기재부의 통계를 인용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기재부의 통계에 통계적 착시가 존재하지 않는지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전문적 능력이 필요해 보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기자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아마추어리즘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기재부 통계가 국제기준 통계와 부합하는지, 그리고 경제적 실질에 부합하는지 상식의 눈으로만 보고 편견없이 전문가의 자문을 구한다면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지난 5년간 '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에 관심을 보여준 기자와 시민께 감사드린다. 숫자는 기재부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다. 앞으로도 숫자의 이면을 읽어내는 비판적 눈길이 이어지길 바란다.
※ 이번 글을 끝으로 연재를 종료합니다.
Copyright © 미디어오늘.
| 멀어지는 '1인당 GDP 4만달러' 시대…7년간 4년 이상 늦춰져 (0) | 2025.09.14 |
|---|---|
| “기업의 연초 가이던스 공시가 한 해 주식 농사 결정한다” (0) | 2025.08.25 |
| ‘이재명노믹스 로드맵’ 발표...삼정KPMG, 5대 핵심 전략 제시 (0) | 2025.08.14 |
| ‘부자아빠’ 기요사키 또 경고…“대공황 온다, 주식 버려라” (0) | 2025.08.13 |
| '케데헌' 또 일냈다…가상 아이돌, 美 빌보드 핫 100 1위 '최초' (0) | 2025.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