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억달러(약 504조원). 일론 머스크가 세운 우주 기업 스페이스X의 지난달 기업가치다. 임직원이 보유한 주식을 대형 벤처캐피털(VC)이 매입하면서 산정한 천문학적 수치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 319조원(21일 기준)을 넘어선 지는 이미 오래다. 2002년 3월 탄생해 여전히 비상장사로 남아 있는 스페이스X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이를 뒷받침하는 금융이 결합된 미국의 힘을 상징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글로벌 VC가 투자한 미국 스타트업의 가치는 4조달러(피치북 자료)를 넘어섰다. 2014년과 비교해 무려 577% 증가했다.
그래픽=이정희 기자
‘1000억달러 스타트업’ 시대
이날 기준 기업가치가 1000억달러를 넘어선 비상장사는 3개다. 오픈AI는 지난해 10월 신규 자금을 조달하면서 1570억달러(약 208조원)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2024년 2월 평가 당시와 비교하면 8개월여 만에 두 배로 뛰었다. 숏폼(짧은 영상) 플랫폼 틱톡을 운영하는 바이트댄스도 3000억달러 기업으로 성장했다. 바이트댄스는 중국 기업이지만 주요 투자자는 세쿼이아캐피털 등 미국 VC다.
일명 ‘트릴리언달러 베이비’로도 불리는 이들 스타트업의 특징은 창업 이후 비상장 상태를 유지하면서 한 번에 외부 자금 수조원을 거듭 유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글로벌 시장조사기업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데카콘 기업(기업가치 100억달러 이상 비상장사)은 52개로 집계됐다. 스트라이프(700억달러), 쉬인(660억달러), 데이터브릭스(620억달러) 등도 조만간 기업가치 단위를 갈아치울 전망이다.
글로벌 100대 비상장사로 범위를 넓히면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등 엔터프라이즈 기술 분야 기업이 32곳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은 금융서비스(26개), 소비재 및 소매(14개), 제조(인더스트리·13개),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10개), 헬스케어 및 생명과학(5개) 순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AI 같은 원천 기술을 보유하거나 세계 곳곳에서 통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갖춘 기업의 성장 속도가 빨랐다”고 분석했다.
“VC 투자 공식이 바뀌고 있다”
상식을 뛰어넘는 스타트업의 출현은 글로벌 벤처 투자 자금의 거대한 변화 덕분이다. 2010년 등장한 스라이브캐피털(TC)이 대표적인 사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돈 가문인 조슈아 쿠슈너가 하버드비즈니스스쿨 재학 당시 세운 TC의 운용 자금은 무려 250억달러(약 3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스타그램 투자로 유명해진 TC는 오픈AI, 스트라이프 등 비상장 슈퍼스타트업의 주요 투자자로 주목받고 있다.
VC업계 관계자는 “TC는 기존 VC는 물론이고 사모펀드(PEF)와도 비교하기 어려운 투자 공식을 만들어냈다”며 “투자 기업의 창업자와 아주 오랜 유대를 유지하면서 소수 기업에 10년 이상 투자한다”고 설명했다. 장기 투자자로 알려진 기관투자형 PEF도 보통 4~5년이 지나면 기업을 팔거나 상장을 추진한다. TC는 이 같은 공식을 완전히 깼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쿼이아캐피털도 2021년 투자 기한에 제한이 없는 영구 펀드를 만드는 등 TC의 투자 방식에 동참했다. 제너럴캐털리스트, 라이트스피드벤처파트너스, 인사이트파트너스 등 10년 이상 투자를 유지하는 VC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국만이 아니다.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는 100대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 중 7곳에 투자했다. 이 기업이 2019년 조성한 비전펀드2의 청산 시기는 2032년으로 10년 이상이다. 중국 딥테크 유니콘 기업은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 등 중국 정부 펀드의 투자를 받았다. 투자금 회수 없는 연구 지원으로 정부의 전폭적 지지를 얻고 있다.
글로벌 자금, 미국으로 쏠려
미국과 중국이 AI 등 첨단산업을 지배하고 있는 데는 이 같은 투자업계의 구조적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국내 VC업계 관계자는 “미국 대형 VC가 유망 유니콘 기업 투자를 독점하면서 글로벌 투자 자본도 이들 VC에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VC업계가 조달한 710억달러(약 102조2755억원) 중 절반 이상을 TC, 앤드리슨호로위츠(a16z) 등 9개 VC가 쓸어 담았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미래 기술일수록 당장 수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며 “기업공개(IPO)를 늦추면 외부 간섭을 받지 않고, 기술 고도화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첨단 정보기술(IT) 분야 중국 유니콘 기업의 상당수가 IPO를 피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세계 드론 시장 1위 업체 DJI, 중국 낸드플래시 분야 1위 기업 창장메모리(YMTC), 중국 최대 D램 제조사 CXMT,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 하이실리콘 등은 비상장 상태를 유지하면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2017년 유니콘 기업 반열에 오른 중국 바이트댄스는 중국 정부가 틱톡 관련 데이터 유출 위험을 이유로 해외 상장을 막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선 유니콘 기업조차 귀해졌다. 국내 신규 유니콘 기업은 2022년 7개로 정점을 찍고 지난해 2개로 줄었다. 글로벌 100대 유니콘 기업에는 토스의 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가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국내 한 대형 VC 대표는 “국내 벤처 펀드의 평균 존속 기간이 7년 정도이고 기존 펀드를 인수하는 세컨더리 펀드 시장 규모도 크지 않다”며 “투자한 기업에 IPO를 독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Copyright © 한국경제.
하늘을 나는 택시 UAM에 통신사들이 집중하는 까닭은? (0) | 2023.07.14 |
---|---|
대세는 친환경에너지 '수소'…DGP 등 그린수소 관련株 주목 (0) | 2023.07.10 |
KT-리벨리온, 초거대AI 최적화 반도체 개발한다 (0) | 2023.07.09 |
2차전지·물류 로봇 양 날개로 상승세 [ESG 리뷰] (0) | 2023.07.09 |
"초거대AI 보유는 핵보유와 같은 경쟁력"...네이버·LG 등 초거대AI 협의회 출범(종합) (0) | 2023.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