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들어 민간 기업이 우주산업을 주도하는 뉴스페이스 시대가 열렸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주산업의 가장 큰손은 정부다. 게다가 기업들은 경기 부침에 따라 투자 규모가 들쑥날쑥한 반면, 장기 계획 아래 집행하는 정부의 우주 투자는 안정적이라는 게 특징이다. 벤처캐피탈업체인 스페이스 캐피탈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민간 기업의 우주 투자는 201억달러로 2021년 474억달러에서 절반이 넘게 줄었다.
이에 반해 지난해 전 세계 정부가 집행한 우주 프로그램 투자는 1000억달러를 돌파하면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것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에 따른 정부 재정 압박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의 우주개발 경쟁이 갈수록 달아오르고 있음을 시사하는 지표다.
국제 컨설팅 및 시장정보 업체인 유로컨설트가 발표한 ‘정부 우주 프로그램’(Government Space Programs)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각국 정부의 우주 투자 규모는 총 1030억달러(136조8천억원)에 이르렀다. 이는 한 해 전보다 9% 늘어난 것이자 역대 가장 많은 금액이다. 특히 방위 부문의 우주 투자가 16% 늘어난 480억달러(63조7천억원)로 증가세를 주도했다.
보고서는 “최근의 지정학적 긴장으로 인해 우주가 복합 전쟁 전술을 위한 전략적 무대가 됐다”며 “각국 정부는 통신, 내비게이션, 지구 관측과 같은 전통적인 우주 부문 투자를 지속하는 한편 우주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우주 보안 및 조기 경보 시스템 구축에 대한 투자를 더욱 확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주 보안 및 조기 경보 부문에 대한 투자액은 지난해 95억달러로 지난 5년간 연평균 증가율이 32%나 됐다.
보고서는 이어 “역사적으로는 민간 부문에 대한 지출이 국방 지출보다 항상 높았지만, 두 부문의 격차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며 2031년에는 두 부문의 비중이 50 대 50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이 620억달러로 압도적 1위이고, 한국은 7억2400만달러로 10위다. 유로컨설트 제공
미국이 전체의 60%…중동국가들 적극 투자 주목
보고서는 또 민간 부문에서는 점점 더 유인 우주비행과 관련한 프로젝트에 정부 예산 지출이 집중되고 있으며, 유인 우주비행의 사회경제적 효과와 가치에 주목해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이 부문에 뛰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우주 프로그램에 정부 예산을 집행한 나라는 86개국으로 집계됐다. 국가별 투자 규모는 미국이 전체의 절반이 훨씬 넘는 620억달러로 단연 압도적이었다. 다른 모든 나라를 합친 것보다 많은 금액이다. 그러나 우주 산업에 뛰어드는 나라들이 늘어나면서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76%에서 지난해 60%로 줄었다.
이어 중국이 120억달러로 2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은 일본(48억9800만달러), 프랑스(42억400만달러), 러시아(34억1700만달러) 차례였다. 한국은 7억2400만달러로 영국(11억5400만달러)에 이어 10위였다.
보고서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오만 등 중동 국가들이 우주산업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 두드러졌다”고 평가했다.
중동 국가 중에선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행보가 가장 활발하다. 2006년 모하메드 빈 라시드 우주센터를 계기로 우주 투자에 적극 나선 아랍에미리트는 2020년 아랍권에선 처음으로 화성 탐사 궤도선을 쏘아 올린 데 이어 2028년엔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대에도 탐사선을 보낼 계획이다. 현재 국제우주정거장에는 아랍에미리트 우주비행사 1명이 정식 대원으로 체류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경제 이후를 대비하는 ‘2030 비전’의 일환으로 우주비행사 2명을 선발해 최근 왕복 10일간의 일정으로 국제우주정거장에 보냈다.
유로컨설트의 수석 컨설턴트인 샬롯 크로이슨은 “이번 보고서는 우주 부문에 대한 각국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특히 방위 부문에서 우주의 군사화가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해지고 있음을 확인해줬다”고 말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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