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초등학교 사회·지도 교과서 곳곳에 역사 왜곡을 강화 및 추가했다는 논란이 제기된 가운데,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및 민족연구소 등 역사 시민단체들은 30일 일본 정부를 규탄하는 동시에 윤석열 정부의 대일외교를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문제의 교과서들은 일본 문부과학성이 지난 28일 검정심의회를 통과시켜 2024년도부터 초등학교에서 사용하게 될 내용으로, 독도가 오랜 기간 한국에 "불법으로 점거돼 일본 정부가 항의하고 있다"는 등 '불법성'을 부각한 대목이 포함돼 있다. 조선인 징병 부분에서도 '지원'이라는 표현을 추가하는 등 강제로 끌려간 사실을 약화한 부분도 도마에 올랐다.
"희희낙락 일본, 과유불급... 한국 국민 임계점 넘었다"
근현대사뿐 아니라, 조선시대 역사까지 왜곡된 사실도 문제로 제기됐다. 김종욱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위원은 이날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한 '일본 역사왜곡 교과서 검정 규탄' 기자회견에서 "임진왜란 당시 자신들이 우리 땅을 침범한 사실만 기술하고 이전에 기술됐던 조선 백성들의 피해도 삭제했다"면서 "(교과서 역사 왜곡은) 일본이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것과 궤를 같이하고, 언제든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변신하기 위한 준비를 아이들과 국민의 눈과 귀를 속여 시작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일본이 교과서를 통해 침략 사실을 희석하는 원인은 현 정부의 대일 방향에서 찾았다. 김 위원은 "윤 대통령은 3.1운동 기념사에서 일본 정부가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협력 파트너가 됐다고 했다"면서 "일본에 가서 맘껏 퍼주고, 덤으로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된 수산물 수입 개방만 얻어 가지고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 정부가 안하무인 역사 왜곡을 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한국 정부가 먼저 (이렇게) 사인을 줬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한일정상회담을 통해 밝힌 '김대중-오부치 선언' 정신 계승 등의 메시지도 신뢰할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박석운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공동대표는 "그 정신을 계승한다면서 뒤로는 교과서로 역사를 왜곡했다. 이른바 '뒤통수 까기'의 결과로, 일본 정부 스스로 정상회담 결과를 부정한 작태다"라면서 "(한국 정부가) 항복 협상한 데 (일본이) 희희낙락하는데, 과유불급이다. (한국 국민의) 임계점이 확실히 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교과서를 20여 년 이상 연구해 온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운영위원장은 유독 일본이 한국 관련에서만 역사 왜곡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이번에 나온) 어린이 교과서 전체를 보면 평화헌법과 환경, 인권을 강조하는 등 우리보다 나은 대목도 있는데 유독 한국에 대한 서술만 과거사를 회피하고 미래 지향이라는 말로 역사를 지우려 한다"면서 "교과서는 역사 연구에 기반하고, 무엇을 담을지는 필자와 시민사회가 함께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잘못 없고, 주변국 불법 국가라는 인식... 분쟁 가르쳐"
자라나는 일본 어린이들이 한국을 자국의 영토를 '불법점거'하는 나라로 잘못 배울 경우, 동아시아 평화가 성립될 수 있겠느냐는 반문도 나왔다. 김정수 평화를만드는여성회 대표는 "(일본이) 한국을 (일본 어린이들에게) 불법국가로, 나아가 나쁜 나라로 인식하도록 가르치기로 결정했다"면서 "(독도 뿐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 등의 나라도 (일본의) 영토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일본은 잘못한 것이 없고 주변 국가만 불법국가로 만들어 평화보다는 분쟁을 가르치기로 한 것"이라고 짚었다.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는 재일동포 어린이들에게도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김명준 조선학교와함께하는사람들 몽당연필 사무총장은 "(일본이) 평화를 배워야 할 어린이들의 마음에 한국 사람에 대한 증오를 가르치려 하고 있다"면서 "이미 일본 학교에는 수많은 재일동포 아이들이 이름과 정체성을 숨기고 숨죽여 산다. 일본 우익 세력들이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관제 이지메(괴롭힘)도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