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이혜영 기자)
사법부 판결과 검찰 수사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곽상도 전 의원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아들이 받은 '50억 퇴직금' 관련 뇌물 혐의를 일단 벗게 됐다. 김건희 여사 연루 의혹이 불거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공범들은 큰 이득을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 또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모두 2023년 대한민국 사법부가 내린 판단이다. '수사와 공소유지 의지를 상실한 검찰, 사법 신뢰를 스스로 깎아내린 법원'이라는 비판 목소리가 뜨겁다.
11일 법조계와 정치권 안팎에서는 곽 전 의원 뇌물 혐의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공범들에 대한 1심 선고 결과를 놓고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여론은 물론 법조인, 여권 인사들조차 '사법 정의가 망가졌다'는 탄식을 쏟아낸다.
서민은 800원 횡령에도 해고…커지는 사법 불신
두 판결은 과거 법원이 내린 또 다른 선고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오석준 대법관은 지난해 8월 인사청문회에서 '800원을 횡령한 버스기사를 해고한 것은 정당하다'는 판결과 관련해 십자포화를 받았다.
오 대법관은 2011년 '운송수입금 800원으로 자판기 커피 2잔을 사먹은 버스기사의 해고는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중앙노동위는 '부당해고'라며 버스기사 손을 들어줬지만, 오 대법관은 해고가 정당하다며 판단을 뒤집었다. 당시 오 대법관이 재판장으로 있던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는 "횡령액이 버스비 수익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회사와의 근로계약 유지가 어려울 정도"라며 해고 정당 판결 사유를 설명했다.
이 판결로 버스기사는 7년을 근무한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됐다. '커피 한 잔씩은 마셔도 괜찮다'는 말에 400원씩 두 번 커피를 사먹은 기사는 '해고자' 낙인으로 재취업도 하지 못한 채 막노동판을 전전했다.
당시 청문회에서 해당 판결이 더욱 논란이 된 것은 오 대법관이 내린 또 다른 선고 때문이다. 오 대법관은 2013년 자신이 수사하던 사건 변호사로부터 85만원 상당의 접대를 받고 면직 처분된 A 검사의 복직 길을 터줬다. 당시 재판부는 면직 처분 취소 사유를 설명하며 "제공받은 향응이 85만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오 대법관 임명 당시 거센 논란이 된 사법부의 '고무줄 잣대' 논란은 곽 전 의원 및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공범들에 대한 선고를 계기로 다시 들끓고 있다.
납득 못할 선고 결과에 쏟아지는 조롱·비판
법원은 화천대유에서 일하다 대리급으로 퇴사한 곽병채씨가 받은 퇴직금 50억원이 그의 부친 곽 전 의원과 관련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퇴직금을 알선이나 대가성으로 볼 만한 증거가 없고, 병채씨가 결혼 후 독립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점 등이 판결의 근거가 됐다.
곽 전 의원과 병채씨는 엄연히 법적 상속 관계가 성립하는 부자(父子)지만, 1심 재판부는 자녀 결혼을 이유로 '경제적 공동체' 관계가 깨졌다며 '뇌물 대리인'으로서의 자격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병채씨와 곽 전 의원으로부터 '돈 달라'는 압박을 받았다는 내용이 담긴 녹취록도 증거로 인정되지 않았다.
법원 판결이 나온 후 변호사 출신 이언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이게 나라냐"며 검찰과 사법부를 싸잡아 비판했다. 검찰 출신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0억 클럽' 수사 방치가 결국 곽 전 의원 뇌물 무죄 결과로 이어졌다며 "검찰의 의도된, 선택적 무능"이라고 질타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선고 결과는 곽 전 의원 재판으로 들끓던 여론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조병구 부장판사)는 지난 10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3억원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이들 중 주가조작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5명은 모두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전주' 역할을 한 2명은 가담 사실이 인정되지 않아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행위는 시세조종의 동기와 목적이 있었지만, 시세 차익 추구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 성공하지 못한 시세조종으로 평가된다"고 판시했다. 주가조작 의도는 확인되지만 결과적으로 큰 수익을 얻어가진 못했기 때문에 실형은 과하다는 취지다.
온라인에서는 "이제부턴 불법을 저질러도 '돈을 얼마 못벌었다'고 하면 처벌을 피해갈 수 있나" "합법적 뇌물 받는 법을 알려준 검찰과 법원이 이제는 주가조작을 하고도 처벌받지 않는 법까지 가르쳐주는구나" "법이 왜 누구에겐 관대하고 누구에겐 추상같은 건가요"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검무죄 무검유죄" 등 비판이 쏟아졌다.
한편, 검찰은 곽 전 의원 판결로 '부실 수사' '봐주기 수사' 비판 여론이 커지자 부랴부랴 공소 유지 인력 확충에 나섰다.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은 이와 함께 '50억 클럽'에 대한 엄정 수사도 주문했다. 야당은 '50억 클럽'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모두 검찰 수사를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이 드러났다며 특검 도입에 화력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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