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사독재정권에 경고한다. 이재명을 짓밟아도 민생을 짓밟진 마시라. 국민을 아프게 하지 마시라. 이재명을 부숴도 민주주의를 훼손하진 마시라. 나라의 미래를 망치진 마시라. 국민도, 나라도, 정권도 불행해지는 길, 몰락한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갔던 길을 선택하지 마시라. 국민의 처절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강력한 연설이었다. 앞서 정청래 최고위원, 박홍근 원내대표, 우상호 전 이태원국조특위 위원장, 박범계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장 등도 연단에 나섰지만, 더불어민주당 당원들의 반응은 분명 앞서보다 훨씬 뜨거웠다. 유튜브 생중계 댓글창도 마찬가지였다.
당 대표여서만은 아니었다. 이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민생의 위기, 평화의 위기 그리고 민주주의 위기 등을 조목조목 짚는 한편,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는 강도 높게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4일 오후 민주당 주최로 열린 '윤석열 정권 민생파탄 검사독재 규탄대회'에서 이 대표는 "국민이 국가"라는 대전제를 강조하면서 "가장 불공정하고 가장 몰상식한 정권이 바로 윤석열 독재정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기는 의지"라며 "국민이 맡긴 역사적 소명을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말로 당 대표로서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도 단호한 입장을 드러냈다.
"유신정권 몰락한 자리에 검사독재 정권이 또아리"
당원 10만여 명(민주당 추산)이 집결한 숭례문 인근 광장 연단에 모습을 나타낸 이 대표는 민생이 위기라고 했다. 그는 "난방비 폭탄이 날아들고 있고, 전기요금이 오르고 교통비도 오르고, 대출금 이자도 오르고 시장의 무값, 배추값, 호박값도 오르고 점심값도 천정부지"라며 "국민은 허리가 부러질 지경인데 은행과 정유사들은 잭팟을 터뜨리고 수익 나누는 파티를 즐기고 있다"고 일갈했다.
이 대표는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뭘 하고 있나. 재정이 부족하다고 서민 지원 예산을 삭감하고 공공요금을 올리고 있지 않냐"면서 "재정이 부족하다면서 부자들 세금은 대체 왜 그렇게 열심히 깎아주는 것이냐"고 일침을 놓았다. 이어진 그의 말은 "양극화와 불평등이 모든 사회 문제의 근원"이란 것이었다. 그러면서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인데 윤석열 정권만 모르는가.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또 이 대표는 현재를 "전 세계가 탄소 문명을 넘어 재생 에너지 중심의 생태문명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대전환의 시대"로 규정했다. 이어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탄소문명 시대로 거꾸로 가고 있다. 모두가 탈출하는 과거를 향해 역주행을 하고 있다"며 "문명의 대전환기에는 낙오의 위험을 감수하는 추격자가 아니라, 무한한 기회를 노리는 선도자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없는 길을 만드는 것이 바로 정치"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평화가 위기"라고도 했다. 그는 "국지전이라도 벌어져서 내 아들 혹시라도 전쟁터에서 죽어가지 않을까. 내 삶의 터전이 파괴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게 됐다"며 "국가 안보나 국민의 안전보다는 정권의 안전과 안보를 더 중시하는 윤석열 정권의 무능함과 무책임과 무대책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평화야말로 최고의 안보"라는 자신의 평소 지론을 재차 강조했다. 그리고 "유신정권이 몰락한 자리에 검사독재 정권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 피와 목숨을 바쳐 만든 민주주의도 위기에 처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지수가 1년 만에 8단계나 떨어졌다고 한다. 정치가 아니라 전쟁을 하고 상대를 죽이려는 정치보복에 국가역량을 낭비하는 바람에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추락했다. 유신독재 정권이 몰락한 자리에, 검사독재 정권이 다시 또아리를 틀고 있다. 유신사무관 대신 검사들이 국가요직을 차지하고 군인 총칼 대신 검사들의 영장이 국민을 위협하고 있다. 정치의 자리를 폭력적 지배가 차지했다. 질식하는 민주주의를 우리가 나서서, 지켜야 하지 않겠나."
"국가의 책임을 다했다면, 정치가 살아있었다면..."
이 대표는 "모든 영역에서 우리 사회가 퇴보하고 수많은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다"면서 "각자도생을 강요하지 않고, 우리가 이웃을 살피는 공동체였다면 신림동 반지하 세 모녀는 살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의 책임을 다했다면 이태원의 10월 29일은 평범한 일상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정치가 살아있었다면 그 어려움 속에서도 절망이 아닌 희망을 꿈꿀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이 모든 것이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는 "패장인데, 전쟁에 졌는데, 삼족을 멸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하라는 조언 아닌 조언을 위로로 삼겠다"며 "국민의 피눈물에 그리고 그 고통에 비한다면, 제가 겪는 어려움이 무슨 대수겠냐"고 했다.
이 대표는 "역사적 소명을 뼈에 새기겠다"면서 "어떤 핍박도 의연히 맞서고 국민이 부여한 책임을 잊지 않겠다. 대열을 맨 앞을 굳건히 지키고 힘내라는 여러분에게 제가 힘이 드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설 초반 "이곳이 역사의 현장"이라고 말문을 열었던 이 대표는 이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대한민국 헌법 1조를 다시 되새겨본다. 한겨울에 집을 나서 촛불을 들고 우리가 꿈꾸던 세상이 있었다. 모든 국민이 안전하고, 전쟁의 위험이 사라진 평화로운 나라. 맞는가. 공정한 기회 속에 노력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 맞는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나라,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국민이 스스로 통치하는 민주공화국, 맞나. 반드시 만들어내야 할 이 나라의 미래 모습이다. 우리가 꼭 만들어야 하는 나라, 나부터 용기를 내고 실천하고 행동하면 우리가 작은 차이를 넘어서서 힘을 합치면 우리가 원하는 그런 나라, 반드시 만들 수 있다."
사실상 민주당의 장외투쟁 서막으로 평가받는 이날 대회는 오후 4시부터 본행사가 시작돼 1시간 20여 분만에 끝이 났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민주당 국회의원 대다수가 현장에 모습을 나타냈고, 당원들은 남대문∼시청역 8차선 중 4차로를 가득 메울 정도로 전국에서 집결했다.
이날 당원들이 든 손팻말은 "윤석열 정권 물가폭탄 해결하라", "윤석열 정권 민생파탄 못살겠다", "윤석열 정권 검사독재 규탄한다" 등이었다. 일부 당원들이 "이재명과 나는 동지다"란 손팻말을 들고 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민주당이 국회 밖에서 정치 집회를 여는 것은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운동 이후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