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울리는 전세사기극의 진짜 배후는 정부…이제라도 '내놔라 공공임대!'
[조정흔의 부동산이야기] 이 시대 청년들의 비극, 부동산
집값 급락세가 이어지면서 전세사기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집값 하락기가 낳는 또 하나의 어두운 소식이다. 특히 사기 피해자 상당수가 청년층이나 신혼부부 등 젊은층이라는 점이 더 우려된다. 이들이 전세사기 우려가 큰 주택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집값 상승기 당시 얇은 주머니 사정 하에서 최적의 주거여건을 충족하는 주택 대부분이 전세사기 주택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에 거액의 자금을 보증금으로 투입해야 하는 만큼, 전세 계약을 앞둔 젊은층은 우려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간 중개인과 임대인들은 안전을 우려하는 이들을 향해 "남들도 다 이렇게 해", "네가 젊어서 잘 몰라서 그래", "의심하는 네가 이상한 거야", "임대보증보험에 가입하면 되지", "보증금지급 확약 각서를 써 줄게" 라는 식의 말로 안심시켰다. 그러나 임대사기 피해자는 자신의 신용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 지불한 전세금이 임대인의 손으로 넘어간 이후에야 전셋집에 걸려있는 체납 세금이 수십, 수백억 원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게 마련이다. 세금이 임대보증금에 우선한다는 사실과 전세보증보험가입이 불가한 주택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임차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간 국가는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을 깎아 주는 등 (민간임대공급이라는 이름으로) 다주택 보유를 장려하면서도, 다주택자들이 정상적으로 임대주택사업을 영위하는지 확인하고 통제하는 제도는 두지 않았다. 은행은 전세자금대출을 해주면서 해당 주택가격 대비 전세금이 과도하지 않은지, 임대인이 신용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주택 가격 급등기에 은행이 방만한 전세대출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국가가 발생한 보증서를 담보로 하였기 때문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 HUG는 전세가액이 주택매매가격대비 회수 가능한 것인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으며, 임차인이 계약여부를 결정하기 이전에 가입이 가능한지 알 수 있는 제도도 갖추지 않았다. 국가와 은행, 공사가 모두 오직 다주택 보유 임대인만을 위한 정책에 골몰했지,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에는 무관심했다.
서민주거안정 명목으로 만들어진 전세자금대출과 전세보증보험 제도는 역설적으로 전세사기범들의 손쉬운 합법적 자금조달수단이 되었다. 부동산 시장 급등기에 이 제도의 맹점을 기반으로 우후죽순 신축빌라와 오피스텔이 공급되었으나, 어느 누구도 주된 임대차 계약 대상이었던 청년층에게 보이지 않는 위험을 설명해주지 않았다. 숨겨진 위험을 알리는 것은 청년 소비자들을 제외한 사기판의 플레이어 그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잘 설계된 이 전세 사기판에서 모든 시장참여자는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였을 뿐이다.
과거 집값 상승기에는 문제가 두드러지지 않았다. 청년들은 저금리 환경에 기반한 저리의 전세자금대출을 받아서 월세지불액보다 저렴한 이자를 내며 깨끗하게 풀옵션으로 단장된 신축주택에 거주할 수 있었다(전세가격이 천정부지 상승하면서 대출이자 총액은 결국 최대한의 월세액으로 수렴되어 갔을 것이다). 임대차 수요가 이어지니 빌라·오피스텔 공급자들은 일단 지어만 놓으면 전세제도를 통하여 건설자금을 충분히 회수할 수 있었다. 즉 위험 없이 큰 이윤을 남길 수 있었다. 아울러 저금리 대출에 기반하여 마음 놓고 전세보증금을 올릴 수도 있었다. 중개인들 또한 건설업자와 공모하여 실체 없는 '시세'라는 이름으로 끝없이 전세가격과 매매가격을 올리고 일부의 수익을 공유하였다.
신축빌라, 오피스텔사업이 큰 이익이 나는 사업이 되자, 토지가격 또한 급격히 상승하였다. 토지소유자들 또한 그 이익의 한 자락을 소리 소문 없이 나누어가져갔다. 이익을 얻은 이들은 또 다른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돈에 주택의 임대인이 져야할 의무와 위험을 넘겨버리면 그만이었다.
누구보다 큰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정부는 전세대출 보증서를 발급해주면서 금융기관이 위험 없이 방만하게 전세자금대출로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하였다(전세자금대출 잔액 2012년 23조 원, 2016년 50조 원, 2021년 말 180조 원으로 증가, 전세자금 대출 증가에 따른 시장변화점검, 2022. 4,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여기에 공적 보증기관인 도시주택금융공사는 전세보증보험을 통하여 일부 임차인의 전세금을 보증해주면서 전세가격을 마음껏 올려 받을 수 있게 해주었다. 현재 임차인 중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임차인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통계조차 없는 상태이지만, 전세보증 미가입 임차인이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히려 전세보증보험제도는 임차인 보호라는 본 뜻과 달리 전세가격을 치솟게 했다. 일부 사기 집단의 주머니가 두터워지는 만큼 국가의 재정은 낭비되었다(전세보증금 보증사고 금액 2017년 74억 원에서 2021년 5790억 원, 2022년 8월까지 5367억 원-HUG 국토교통위 국정감사자료).
이쯤 되면 전세 사기판의 설계자는 사실상 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세 사기 문제의 본질은 국가가 품질 좋고 저렴하고, 안전한 서민 주택 공급을 책임지지지 않고, 되레 관련 제도를 민간 사업자들과 금융기관이 손쉽게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했다는 데 있다. 그 결과 전세사기주택에서 발생하는 모든 위험은 임차인과 취약계층에게 전가되었다. 전세자금대출과 전세보증보험은 서민을 위한 주거복지정책으로 교묘하게 포장되어 있어서 정치권에서 생색내기 그만인 정책으로 활용되었을 뿐이다.
개발논리의 가스라이팅, 1세대 1주택주의와 아파트 중심주의
전세가격 2억 원, 매매가격 2억2000만 원. 전세와 매매의 차이가 1000~2000만 원에 불과한 주택이 많다. 왜 청년들은 자신의 미래까지 담보한 큰 자금으로 집을 마련하지 않고 위험천만한 임차주택을 선택했을까?
주택담보대출을 활용하면 주택가격 대비 40~60%까지 대출이 가능하지만, 전세자금대출은 90% 이상을 대출로 조달할 수 있다. 대출금리 또한 상대적으로 낮다. 따라서 전세금의 자금조달 규모는 더 커지고, 조달하기도 편리하다. 결국 주택 과소비로 이어진다.
전세사기대상이 된 주택 대부분은 다세대주택, 오피스텔이다. 이들 주택은 아파트에 비하여 가격 상승을 거의 기대하기 어려워, 투자목적으로 소유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가격이 저렴하더라도 애써 청년층 등이 구매할 매력도가 떨어진다. 그런데다가 1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비과세구간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본래 9억 원이던 양도세비과세 구간은 12억 원으로 상향(2021년 12월 2일 소득세법 개정안 국회 통과)되었다. 즉 1주택 소유자의 경우 12억 원까지는 마음 놓고 주택을 이용하여 돈을 벌어도 좋다고 국가가 보증했다. 자연히 청년층도 내가 소유할 주택은 내 소득수준에 맞게 구매가 가능한 '다세대주택'이 아니라 비록 지금은 구입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구입하여야만 하는 투자목적의 '아파트'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파트에 대한 선호 현상, 재개발, 재건축, 신도시개발을 비롯한 주택(아파트)공급 지상주의는 이런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는 거주수단이 아니라 투자수단이다. 1세대 1주택주의에 기반한 각종 조세혜택 등 아파트만이 자산가치를 온전히 누리도록 주택 정책이 철저하게 설계되어 있다. 반면 다세대주택은 투자가치가 별로 없는 주택이므로 소유할 필요가 없다는 의식이 우리 사회에 지배적이다. 다세대주택은 오히려 투자가치 있는 1세대1주택 아파트 소유의 방해물이 된다.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는 철저하게 아파트를 소유하여 시세차익을 누리는 것이 자산을 형성하는데 유리한 것처럼 설계되어 있다. 이런 배경하에서 청년들은 소득에 맞는 집을 구매하거나 월세를 선택하기보다는, 전세임차인을 선택한 결과 전세사기를 당하거나, 한편에서는 영끌 (아파트) 투기에 열을 올렸다.
최근에는 급격한 금리상승으로 청년들 상당수가 전세사기 피해를 입거나 영끌 아파트 매수로 인하여 고통받고 있다. 그 기저에는 1세대1주택 중심주의, 아파트 중심주의의 개발논리 가스라이팅이 숨겨져 있다.
전세사기문제는 국가가 저렴하고 쾌적하며 안전한 공공임대주택을 충분히 마련하는 대책을 세우는 대신, 서민주거대책이라는 이름으로 흥청망청 대출제도와 보증제도로 국가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양 면피하고, 보증금미반환위험과 금리변동 위험을 온전히 임차인에게 전가한 결과이다. 전세사기문제는 동시에 이 청년들이 영끌 투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면이기도 하다. 전 사회가 나서서 아파트 소유(투기)만이 부자되는 길인 것처럼 유도하고, 자신이 거주할 능력이 부족한데도 무리하게 높은 가격의 전세를 끼고서라도 영끌 투자를 하도록 만들었고, 이들 또한 금리인상으로 인한 전세가 하락으로 보증금미반환 위험(갭투기 아파트 투자)과 금리변동의 위험에 빠지게 된 것이다.
사기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는 부동산의 소유로 인하여 누리는 소득(편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대책을 세워야한다. 청년 서민들에게는 노동소득으로 부담 가능한 수준에서 안전하고 쾌적하게 거주할 주택을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주택은 투기목적의 고가주택이 아니라, 민간자본의 논리로 지원이 어려운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임대 주택이다. 사업자의 과도한 이윤을 최소화해 서민층의 소득으로 부담 가능한 수준의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주택공급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정부는 수해로 인한 반지하 주택 참사사고가 발생했을 때, 고시원 화재로 인한 인명사고가 발생했을 때,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만들겠다고 공언한바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말과 달리 고가 주택, 여러 채 소유 주택에 대하여 종부세, 재산세 등의 부담을 줄이고, 부동산 가격하락기임에도 불구하고 공시가격 현실화율까지 후퇴시키는 정책을 내놓았다. 또한 국가가 청년, 서민들에게 필요한 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전년대비 28.2% 삭감한 5조7729억 원으로 잡았다. 국가의 역할을 방기한 채 부동산 경기위축, 가격 하락기의 위험을 민간 자본과 다주택자의 주택투기를 활용하여 해소하려는 의도가 아닐 수 없다.
청년들은 기성세대를 용서하지 말기를 바란다. 기득권 자본, 언론과 기성세대는 당장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일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청년들의 미래를 만들어갈 사람은 청년들이다.
30년 전에 1억5000만 원에 구입한 주택이 25억 원이 되었는데, 이 결과를 오로지 자신의 사유재산으로 인정해달라는 사람들이 기성세대다. 청년들은 25억 원짜리 주택을 구입할 능력이 없는데도, 기성세대의 뒤를 쫓아 무리한 대출을 받으려 골몰한다. 그러나 고물가, 저출산, 저성장시대, 청년들은 기성세대와 같은 이런 방법으로 부자가 되거나 자산을 축적할 수 없다.
청년들이 살길은 기성세대의 투기 수단을 맹신하는 각자도생이 아니라, 기득권 집단의 탐욕과 이기심을 질타하며, 연대하는 것이다. 주택 투기를 부추기는 정책 대신 공공임대주택 확대를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다. 청년, 세입자와 주거,빈곤, 복지단체로 구성된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 저지를 위한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단>은 지난 10월 17일부터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 중이다. 내놔라, 공공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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