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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 ‘엎친데’ 돈맥경화 ‘덮친’ 기업들

주식·환율·금융

by 21세기 나의조국 2022. 11. 2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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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 ‘엎친데’ 돈맥경화 ‘덮친’ 기업들

안광호 기자입력 2022. 11. 21. 13:28
 
 

 중기 대출금리 8년8개월 만에 최고
 채권 발행 어려워져 단기자금 몰려
“올 한계기업 비중 상당폭 커질 것”

[주간경향] “추석쯤인가, 그때부터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요. 돈 구하기도 쉽지 않고 이자도 너무 올라서. 이러다 큰 위기가 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 중소기업 대표의 말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정부가 돈을 푼 덕분에 힘들어도 버틸 수 있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급변했다는 의미다. ‘고금리’와 ‘돈맥경화’라는 이중고를 겪는 업계는 금리가 치솟아 원리금 상환이 벅차다고 하소연한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촉발한 레고랜드 사태 이후 터진 채권시장의 자금 경색 사태는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자금난과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는 당국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 있는 5만원권 지폐들. 연합뉴스

 

치솟는 대출금리, 자금 조달 애로

 

한국은행의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 이후 중소기업은 불어난 이자 부담과 자금난을 동시에 겪고 있다. 대출금리는 지난 9년새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 9월 예금은행의 신규 취급액 기준 중소기업 대출금리가 4.87%로 2014년 1월(4.88%) 이후 8년 8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중소기업 대출금리는 대기업(4.38%)보다 0.49%포인트 높다.

 

한은 금통위는 지난해 8·11월, 올해 1·4·5·7·8월 기준금리를 인상한 데 이어 지난 10월에는 0.50%포인트를 더 끌어올렸다. 현재는 연 3.00%다. 중소기업 대출금리 상승폭도 가파르다. 지난 5월 0.12%포인트에서 7월 0.30%포인트, 8월 0.29%포인트, 9월 0.22%포인트를 보였다. 한은 금통위가 지난 10월 빅스텝(한 번에 0.50%포인트 금리 인상)을 밟은 데 이어 오는 11월 24일 기준금리 결정에서도 최소 0.25%포인트 이상 추가로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보여 10월 이후 중소기업 대출금리는 더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경기 침체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고금리로 이자비용까지 늘고 있다. 앞으로 금리가 추가로 인상되면 업계의 위기의식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투자도 위축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1~3분기 벤처 투자 동향’을 보면, 올 3분기 투자는 2조913억원이었다. 1년 전에 비해 40.1%(8388억원) 줄었다.

 

위기의식은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실시한 설문결과에서도 확인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11월 16일 발표한 ‘복합경제위기에 따른 중기 금융 이용 애로 실태조사’ 결과(11월 7∼11일 500개 중소기업 대상)를 보면, 10개 중소기업 중 6∼7개(67.1%)가 외부자금 조달 애로 사항(복수응답)으로 ‘높은 대출금리’를 꼽았다. 응답자들은 올 1월에 비해 대출금리가 평균 2.2%포인트 상승(2.9→5.1%)했다고 답해 같은 기간 기준금리 상승폭(1.75%포인트)보다 컸다.

 

매출액 규모별로는 30억원 미만 기업에서 높은 대출금리 때문에 자금 조달이 어렵다(78.8%)는 응답이 많았다. 현재 가장 필요한 금융 정책으로는 금리부담 완화 정책(46.4%)과 기준금리 이상 대출금리 인상 자제(33.6%)를 많이 꼽았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기준금리보다 가파르게 오르는 대출금리로 고금리 리스크는 앞으로 더욱 심화할 것”이라며 “이차보전과 저금리 대환대출 같은 정부의 적극적인 금융 지원과 금융권의 과도한 대출금리 상승 자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베트남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김진태 강원지사가 10월 27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 지사는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자금경색과 관련해 재차 유감의 뜻을 밝히며 “보증채무를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내년 경기 위축·고용 등 악화 전망 지배적

 

금리가 고공행진을 하면 채권시장의 돈은 마를 수밖에 없다. 지난 9월 말 ‘레고랜드 사태’는 시중의 자금난을 더욱 가중시켰다. 김진태 강원지사가 지난 9월 28일 레고랜드의 기반조성사업자인 강원중도개발공사(GJC)에 대해 법원에 회생 신청을 하겠다고 밝힌 이후 지방정부의 지급보증마저 믿을 수 없게 된 시장은 급속히 얼어붙었다. 투자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회사채는 물론 우량 공기업이 발행한 채권에서도 유찰 사례가 줄줄이 이어졌다.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막히면서 ‘돈맥경화’ 현상이 짙어졌다. 시장에서는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한 우량 중소기업들이 도산할 수 있다는 우려감이 커졌다.

 

채권 발행을 통한 직접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중소기업들은 은행으로 몰려들었다. 한은에 따르면 은행의 기업 원화 대출 잔액이 지난 10월 말 기준 1169조2000억원으로, 한 달 전인 9월 말에 비해 13조7000억원이나 늘었다. 이자가 치솟고 있었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지난 9월 기준 중소기업 대출 중 금리가 5% 이상인 비중이 40.6%에 달했다. 1년 전(3.1%)과 비교해 13배가 넘는 수준이었다.

 

대내외 금융 리스크가 큰 상황에서 기업 대출이 늘면 부실 위험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한은은 10월 31일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기업 신용(빚)의 높은 증가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국내외 경기 둔화, 대출 금리 인상, 환율·원자재가격 상승 등 경영 여건이 나빠질 경우 기업 전반의 이자 상환 능력이 약해져 올해 한계기업 비중은 전년보다 상당폭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계기업은 3년 연속 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기업으로, 경쟁력이 낮아져 외부의 자금 지원 없이 자력으로는 기업활동 유지와 성장이 어렵다. 산업은행 KDB 미래전략연구소는 지난 7월 산은 조사월보 ‘한계기업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중소기업의 한계기업 수는 2011년 1225개에서 2021년 4288개로 3.5배 증가했다”며 “인플레이션 압력이 장기화하면서 기업의 생산원가 부담이 높아지며 수익성이 악화될 경우 한계기업을 중심으로 어려움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고 봤다.

 

정부는 50조원+α(알파) 유동성 지원과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가동 등 응급 처방을 내놨다. 급한 불은 껐다지만, 회사채 발행이 어려운 기업들은 단기자금으로 몰리고 있다. 11월 16일 기준 채권시장에서 91일 물 기업어음(CP) 금리가 전 거래일보다 0.04%포인트 오른 연 5.26%로 연중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CP 금리의 최고치 경신은 회사채 시장의 경색 국면이 풀리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장기 자금 조달 길이 막혀 급하게 단기로 돈을 빌려 쓰고 있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시장에서는 최소 내년 상반기까지 금리가 오르거나 상당기간 고금리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본다. 경기와 고용 등 주요 지표도 올해보다 나빠지리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상당 기간 채권시장에서 돈을 조달하기가 힘들어질 수 있다.

 

특히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영세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의 대출 조건은 더 나빠질 공산이 크다. 문제는 이러한 악순환이 장기간 이어지면 견실한 중소기업들도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어들게 되고 중장기적으로 투자가 위축되거나 경영 상태가 급격히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이러한 중소기업들이 자금난에 봉착하지 않도록 세밀한 지원대책을 마련함과 동시에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는 강력한 시그널을 시장에 내보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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