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대해 대대적인 수술작업에 들어갔다. 이 사업에 무려 1조 달러(약 1440조원) 규모의 자금을 퍼붓고도 자금지원을 받은 개발도상국들을 ‘채무함정’에 빠뜨렸다는 비난과 함께, ‘킹달러’와 글로벌 경기침체로 이들 나라가 디폴트(채무불이행)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투자금 회수마저 불투명해진 만큼 전략수정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중국의 일대일로 자금지원을 받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의 개도국들이 차관 상환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는 데다 중국 경제의 불확실성마저 커지면서 중국 정부기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대한 전면 재검토 작업에 나섰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26일 보도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야심차게 밀어붙이는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 프로젝트는 중국이 개도국에 철도와 도로, 항만 등 인프라(SOC)를 건설해 주고 해당 국가와 경제·외교관계를 돈독히 하는 사업이다. 실상은 과잉 생산·자본의 위기에 빠진 중국이 대규모 투자를 통해 해외의 새로운 시장과 원료 공급기지를 확보하는 한편,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 프로젝트는 시 주석이 2013년 카자흐스탄 등을 순방할 때 처음 주창했다. 중국은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한 149개국, 32개 국제기구가와 일대일로 관련협약을 맺었다. 높은 수익률을 원하는 중국 금융기관, 포화된 국내시장을 벗어나려는 국유건설업체들도 적극 동참했다. 중국은 자금력을 앞세워 돈을 빌려주고 부족한 인프라 건설을 지원했으며, 서방국 주도의 국제기구처럼 까다로운 조건을 달지도 않았다. 개도국들이 중국의 유혹을 선뜻 넘어간 이유다. 2000~2012년 중국의 국제 개발금융은 연평균 300억 달러 규모로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일대일로 사업이 시작된 2013년부터 2017년까지는 연평균 1000억 달러에 육박해 미국을 크게 앞질렀다.
대표적인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파키스탄 카롯 수력발전소와 스리랑카 함반토타 항만, 중국·라오스 철도, 중·파키스탄 경제회랑 건설 등 아시아 주변국뿐 아니라 유럽에서 친중(親中)국가로 꼽히는 헝가리·세르비아 철도사업 등이 꼽힌다. 중국은 이를 “상대국의 행복과 발전을 원하는 중국”의 외교성과로 널리 홍보했다.
그러나 일대일로 자금지원을 받은 일부 개도국들이 내정 문제로 혼란에 빠지고 빚을 갚지 못하면서 사업은 차질을 빚었다. 당초 자금사정이 좋지 않던 이들 국가가 경제마저 악화되며 부채상환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국가부채를 연구해온 세바스찬 혼, 카르멘 라인하트 등 서방 경제학자들은 2010년 5%에 불과했던 중국의 해외 부실대출액 비율이 60%까지 치솟았다고 지적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올해 연말까지 최빈국 74개국이 상환해야 할 채무 규모는 350억 달러에 달한다. 이 중 40% 이상이 대중 부채다. 이 때문에 서방은 일대일로 사업을 놓고 ‘채무의 함정’을 만든다고 공격하자 중국 정부는 “완전히 거짓말이다. 일대일로는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줬다”고 맞받아쳤다.
하지만 2020년 초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고 올 들어 미국의 가파른 금리인상까지 겹쳐 개도국 경제가 크게 휘청대고 있다. 이에 따라 스리랑카 등 일대일로 국가들은 하나둘 디폴트를 선언했다. 스리랑카의 경우 2017년 함반토타 항구건설 과정에서 진 14억 달러의 빚을 갚지 못해 중국항만공사에 99년간의 운영권을 넘긴 바 있다. 스리랑카는 코로나19로 주력 관광산업이 붕괴하며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려 왔고, 결국 올해 5월 디폴트에 빠졌다. 스리랑카의 대외부채 규모는 510억 달러에 이른다.
잠비아는 루사카에 국제공항을 확장하기 위해 3억 5000만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등 부채를 늘리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채가 2010년 19%에서 2020년 120%로 폭등했다. 2020년 11월 디폴트를 선언했고,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등 국제 지원을 요청했다. IMF는 지난달 13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지원을 약속했다. 잠비아는 지난해 말 기준 173억 달러 규모의 대외부채를 안고 있는데, 대중 채무가 3분의 1쯤 된다.
올들어 최악의 홍수피해를 입은 파키스탄 역시 지난달 유엔으로부터 인도적 지원과 피해복구를 위한 1억 6000만 달러를 긴급 지원 받기로 했다. IMF도 파키스탄의 디폴트를 막기 위해 11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지원을 승인했다. 장기간 경상수지 적자로 대외부채가 많은 파키스탄은 코로나19 사태에 이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에너지·식량가격이 지난해보다 45%나 급등하면서 심각한 경제난에 처했다. 외환보유고는 한 달치 수입대금을 겨우 결제할 수 있는 86억 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돈을 빌려준 국가들이 줄줄이 빚더미에 앉으면서 중국도 곤경에 빠졌다. 원금 회수가 요원해지자 중국은 신규 대출심사에 신중을 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은행들은 이미 기존 대출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는 데 주력하면서 개도국의 신규 프로젝트에 대한 대출을 대폭 줄이고 있다. 미 조지메이슨대 연구기관인 메르카투스센터의 중웨이펑(鍾偉峰) 선임연구원은 “과거에는 중국이 대출 대상 수혜국에 경제적 이익을 선전했지만 지금은 위험관리와 국제협력의 개선을 강조하고 있다”며 “중국이 (일대일로) 방향 수정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WSJ은 중국 내에서조차 일대일로 사업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으며 위험부담을 줄이려면 국제사회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전했다.
중국은 그동안 디폴트를 선언한 개도국과 채무 재조정 협상을 할 때도 다른 서방 채권자들과 연대하는 것을 금기시했고 빚 탕감은 해주지 않은 채 만기를 연장해 원금을 모두 갚으라고 요구했다. 로이터통신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은 개도국에 대한 지배적인 대출기관”이라며 “중국 정부는 어려움에 처한 개도국과 대출조건 조정이나 재협상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소극적”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일대일로의 대출심사가 엄격해지면 그만큼 개도국 대출수요도 줄어드는 탓에 중국이 일대일로를 확장하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브래드 세서 미국 외교협회의 선임연구원은 “일대일로 사업이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중요성을 지속하려면 중국은 대출 위주에서 벗어나 다른 지원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은 서방 채권단과 함께 부채를 탕감해주는 등 채무 재조정 협상에 임하고 있다. 중국은 디폴트를 선언한 스리랑카는 물론 아프리카 국가인 차드, 에티오피아, 잠비아 등과 부채 감면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2020년 잠비아가 30억 달러의 외채를 갚지 못했을 때 채무 재조정을 거부한 중국이 최근에는 프랑스 등과 함께 170억 달러 규모의 잠비아 채무 재조정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중국은 한사코 참여를 거부해 온 국제적 채무 구조조정 프로젝트인 ‘파리클럽’에 참여하는 것도 협상하고 있다. 파리클럽은 선진국 중심으로 결성된 비공식 그룹으로 저개발국을 지원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또 새로운 프로젝트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아프리카계 은행과 같은 다자간 기구들과 협력하려는 신호도 보내고 있다. WSJ는 일대일로가 민간이나 아프리카개발은행 등 공적기관과 손잡고 대출을 해주는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과 관련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서 이 사업을 접을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WSJ은 다음 달 16일 열리는 제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 시 주석이 3연임을 하고 나면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할 일대일로 무대가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글/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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