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 일본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3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질적인 저물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그동안 기준 금리 인상을 주저하던 일본 중앙은행(BOJ)이 이달 통화 정책 방향을 수정할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20일 일본 총무성은 변동성이 큰 신선식품을 제외한 8월 근원 CPI가102.5로 전년 동월 대비 2.8% 상승했다고 밝혔다. 소비세 증세 영향이 있었던 2014년 10월(2.6%)을 제외하면 1991년 9월(2.8%) 이후 30년 11개월 만의 최대 상승 폭이다.
CPI는 12개월 연속 상승했으며 상승률은 5개월째 2%대를 유지했다. 2%는 일본 은행이 인플레이션 억제 목표를 위해 내건 값이다.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이 물가 상승을 부추겼다. 에너지는 전년 동월 대비 16.9% 오르며 전달 상승 폭인 16.2%를 뛰어넘었다. 전기료가 21.5% 오르고 도시가스 요금은 26.4% 급등했다. 휘발유는 정부 보조금 효과로 6.9% 오르는 데 그쳤다. 신선식품을 제외한 식량 가격은 4.1% 상승해 7월 상승률은 3.7%를 넘어섰다.
엔화 약세도 물가상승을 이끌었다. 이날 기준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대 엔화 환율은 143.02에 거래되고 있다.
일본 소비자물가가 지속적인 오름세를 나타내면서 BOJ의 통화 정책 방향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 행보에도 일본은 경제 부양을 위한 완화적 통화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BOJ는 21일부터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금리 인상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주요 외신들은 영국 영란은행(BOE)과 스위스 중앙은행을 필두로 금리 인상에 나설 전망인 주요국들과 달리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 총재는 이번에도 현행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문제는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를 고집하면서 미·일 간 금리차가 벌어져 엔화 가치가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엔저가 일본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엔화 가치가 지난 14일 한때 145엔대까지 육박하자 BOJ는 시장 참가자에게 시세 수준을 묻는 '레이트 체크 (Rate Check)'를 실시했다. 레이트 체크는 구두 개입으로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막기 불충분하다고 판단될 경우 실시된다.
국채 매입을 위해 막대한 규모의 자금이 투입되는 것도 우려되는 사항으로 꼽힌다. 블룸버그는 일본은행이 글로벌 채권 매각으로 국채 수익률이 오르자 1조 4000억엔 규모의 채권을 사들였다고 전했다.
BOJ가 금리인상을 머뭇거리는 이유로 막대한 양의 국채 보유를 꼽는 이들도 있다.
BOJ는 그간 인위적인 수익률곡선제어(YCC) 정책에 따라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의 금리의 상단을 0.25%에 묶어두는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해왔다. 이에 따라 금리를 낮추기 위해 지속해서 국채를 매입하게 되면서 일본 전체 국채의 50.4%를 보유하게 된 상태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채권평가손실이 발생해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시작한 금융지원 정책이 곧 종료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일본은행의 지침에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는 "일본 중앙은행이 현재 통화정책의 일부를 코로나19 확산과 연계해 펼치고 있다"며 "특별 금융지원 정책의 종료는 통화 정책이 변경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일본 미쓰비시UFJ모건스탠리 증권의 투자전략가 무루구마 나오미는 "일본은행이 코로나19 대신 어떤 것을 통화정책과 연관시킬지가 관건"이라면서도 "완화정책에 편중된 기조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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