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금자리론으로 아파트를 사려는 젊은 분들이 하루에 한 팀꼴로 꾸준히 매수 문의를 해요. 그런데 대부분이 ‘급매물이 나오면 연락달라’고만 하고 가요. 지금 나온 게 급매물인데 이보다도 더 싼 걸 찾으니 사실상 급매물도 안 찾는 거죠. 대출 이자가 계속 느는 추세다 보니 이 분들의 가격 기준도 점점 낮아지고요. 실거래가도 꽤 내렸어요.”
지난달 30일 오후 2시 경기 수원시 영통구 황골마을주공1단지 인근의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단지는 한동안 2030세대의 매매 수요가 꾸준했다고 한다. 영통구 일대는 삼성전자 등 산업단지들과 가깝다. 영통역은 동탄인덕원선이 연결돼 더블역세권이 될 예정이고 대형 평형, 9억원 이상의 단지가 많다. 반면 청평역과 망포역 인근엔 소형 평형, 6억원 미만 단지가 많아 2030의 수요가 특히 몰렸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의 여파로 아파트 거래 가뭄이 닥치면서 올해 들어 이 수요가 줄기 시작했다고 한다. 2030 매수자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 70%까지 가능한 보금자리론 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그만큼 소득 대비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이자 부담이 크기 때문에 집값이 크게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게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의 말이다.
인근의 B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이곳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직주근접 조건에 교통 호재까지 있어 실거주 수요와 투자 수요가 골고루 있었다”면서 “이미 가격은 떨어지고 있어 투자 수요는 사라지고, 실거주 목적의 전월세 문의만 들어온다”고 했다.
실제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황골마을주공1단지 59㎡는 지난해 11월 6억원(14층)에 신고가 거래된 후 지난달까지 4억~5억원대로 가격이 내리더니 지난 7일엔 최고가보다 2억원 낮은 4억원(7층)에 손바뀜했다.
영통구 내 다른 단지들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날 기자가 만난 여러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올해 들어 매매 거래 단 1건을 성사시켰다” “찾는 사람 없이 매일이 조용하다” “금리 인상이 겹쳐 풀릴 기미가 안 보인다”는 식으로 침체한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경기 수원시 영통구 지하철 수인분당선 영통역 주변의 모습. 영통역은 동탄인덕원선 공사가 진행 중이다. /김윤수 기자◇ 2030 몰린 곳부터 집값 내리는 중
문제는 이처럼 2030이 많이 찾던 곳에서 집값 하락이 가파르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영통구를 포함한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이런 추세가 확인된다. 조선비즈가 한국부동산원의 아파트 매매 거래 현황과 가격 동향 자료를 분석해본 결과, 올해 1분기 2030세대(20대 이하+30대)의 아파트 매입이 활발했던 지역들이 가격 하락폭도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17개 시·도 중 2030세대의 매입이 가장 활발했던 지역은 경기도였다. 경기도는 2030 매입 건수가 5587건으로 최다, 전국(2만2257건)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2030의 매입 비중은 36.4%로 서울(건수 1490건·비중 38.0%)에 이어 두 번째로 컸고 전국 평균(29.4%)을 크게 웃돌았다.
경기도는 아파트 매매가격이 올해 들어 지난주까지 0.35% 하락했다. 전국 17개 시·도 중 세종, 대구, 대전, 전남에 이어 네 번째로 큰 하락폭이다. 전국의 누적 변동률은 -0.01%였다.
시·군 단위로 보면 이런 추세는 더 잘 보인다. 경기도 내 31개 시·군 중에선 영통구가 포함된 수원시(496건·42.9%)를 포함해 고양시(477건·42.2%), 용인시(435건·45.4%), 화성시(434건·41.8%), 시흥시(306건·43.0%) 등 5곳에서 2030의 매입이 특히 활발했다. 2030의 매입 건수가 300건 이상이고 비중은 경기도 평균(36.4%) 이상인 곳을 추린 결과다.
이 중 수원·용인·화성·시흥시 등 4곳은 경기도 안에서도 올해 하락세가 두드러진 지역이다. 같은 기간 화성시는 누적 변동률 -2.06%로 도내에서 하락폭이 가장 컸고 시흥시(-1.93%)가 뒤를 이었다. 수원시(-0.88%)와 용인시(-0.79%)의 하락폭도 경기도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1기 신도시(일산신도시) 규제 완화 기대감이 있는 고양시만 0.19% 올랐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구매력에 한계가 있는 2030의 매수세가 집값 상승을 받쳐주지 못한 영향이 어느 정도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 기준금리 연말 2.50% 전망… “매수세 더 줄어들수도”
2030의 집값 걱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기준금리가 잇달아 오르면서 대출 이자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요를 받쳐줄 매수자 역시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중금리도 오르면 대출 이자 부담이 늘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높아져 대출 여력은 줄어든다. 매수세가 위축돼 집값 하락이 가속화할수도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달 26일 기준금리를 1.50%에서 1.75%로 올렸다. 올해 들어서만 1, 4, 5월 세 차례에 걸쳐 총 0.75%포인트(P) 인상했다. 각 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주담대 금리는 변동금리(신규 코픽스 6개월 기준)가 3.55~5.367%, 혼합금리(5년 고정금리 적용 후 변동금리 전환·금융채 5년물 기준)가 4.06~6.40%다.
지난달 17일 서울 시내의 하나은행 창구 모습. /뉴스1금융권에선 미국 빅스텝(한번에 0.5%P 기준금리 인상)에 맞춰 연말까지 국내 기준금리가 2.50%에 이를 거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주담대 금리는 최고 8%대까지 치솟을 거란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지금은 금리 인상폭이 주택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는 시점”이라면서 “주담대 평균 금리가 연 4%를 넘으면 매수자의 관망세가 커지고 5%를 넘으면 매수 자체를 포기해 시장이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집값 하락도 좀더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월세로 살면서 수도권 아파트 매물을 알아보고 있는 직장인 김용찬(31)씨는 “벼락거지‘(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상대적으로 가난해지는 사람) 탈출을 위해 이번에야말로 내 집을 마련할 계획이었지만 조금 더 미루기로 했다”면서 “금리는 오르고 집값은 내리고 있어서 지금 잘못 샀다간 벼락거지 탈출은커녕 ‘하우스푸어’(집을 보유했지만 빈곤층에 속한 사람)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어서다”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말 청년의 대출 여력을 늘리는 규제 완화 계획을 ‘긴급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의 하나로 발표했다. ▲DSR 산정 시 미래소득 반영폭을 확대하고 ▲50년 초장기 모기지를 도입하며 ▲생애 최초 LTV 상한을 60~70%에서 80%로 완화하기로 했다.
박 교수는 “의미는 있지만 금리 인상이 여전히 더 큰 변수”라면서 “그나마 LTV 상한 완화는 DSR 규제 때문에 청년에게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그보단 앞으로 면밀한 검토를 통해 기준금리 추가 인상에 따른 시중금리의 지나친 인상을 막는 게 더 중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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