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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도구다

◆의사결정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22. 4. 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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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연구소  김동렬  2022. 03. 31

 

 

같은 마을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부동산을 팔지 않고 꽉 틀어쥐고 있다가 부자가 되었다. 그 사람의 자식은 부모를 잘 만나서 마세라티 굴린다. 한 사람은 부동산을 팔아 자식을 명문대 보냈다. 그 사람의 자식은 시인이 된다더니 망해서 룸펜이 되었다.

    어느 쪽이 현명한가? 대한민국 전체로 보면 지식인이 실패해도 집단의 상호작용에 기여한다. 누군가는 망해야 누군가는 흥한다. 그 사람이 영화를 만들어서 흥행에 실패했다 해도 봉준호 영화의 성공에 간접적으로 기여한다. 사적으로 실패해도 공적으로 기여한다.

    모든 사람이 부동산을 틀어쥐고 있으면 집단이 망한다. 개인은 성공할 수 있지만 그래봤자 돈은 정선 카지노가 가져간다. 성공이라는 것은 상당 부분 환상이다. 그게 유치한 심리게임이다. 성공해봤자 내부 상호작용 과정에 용해되므로 의미가 없다. 새옹지마와 같다.

    얻은 만큼 잃고 잃은 만큼 얻는다. 우리는 집단 내부의 상호작용을 높이는 쪽으로 기동해야 한다. 내부에서는 제로섬 게임이지만 외부를 연결하면 윈윈게임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자식을 대학에 보낸다는 것은 영어를 배워 외부의 더 큰 세계와 연결한다는 거다.

    처음 라인을 연결한 사람보다 두 번째 온 사람이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는게 보통이다. 엉뚱한 사람이 실속을 차린다. 그러나 집단 전체로 보면 흥한다. 상호작용을 높이면 에너지는 닫힌계 안의 어딘가에 있다. 내게 없으면 네게 있다. 돌고 돌아서 내게로 돌아온다.

    문제는 인생에 있어서도 그러하다는 점이다. 개별적인 판단으로 보면 연결보다 단절이 이익이다. 합리보다 실용이 이익이다. 그러나 인생 전체로 보면 점차 고립된다. 분명히 실속을 챙겼는데 일본처럼 망가져 있다. 푸틴이 돈바스를 먹는다 해도 패권을 잃게 된다.

    노인은 단절이 낫다. 연결해봤자 이익은 30년 후에 손자가 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보수화 되는 이유다. 인생 전체로 보면 연결을 추구해야 한다. 실속을 얻어봤자 지속가능하지 않다. 잠시 행복하지만 다시 허무해진다. 실속은 심리적인 위안에 불과한 것이다.

    임무의 실행에 의미가 있다. 문제는 남들 앞에서 자랑하는 문제다. 단절로 얻는 실속은 증명할 수 있으나 연결로 얻는 임무는 가치를 증명할 수 없다. 졸부가 타는 마세라티는 증명할 수 있으나 지식인이 상호작용에 기여하는 부분은 그 잠재가치를 증명할 수가 없다.

    인간은 단절을 지향한다. 가을의 수확은 단절이다. 열매를 따서 증명할 수 있다. 봄의 파종은 연결이다. 과연 수확으로 연결될지 알 수 없다. 인간은 말싸움에 이기려고 하므로 망가진다. 동료의 인정을 받으려고 하므로 망가진다. 칭찬을 듣고 대신 임무를 잃게 된다.

    인생에서 무수한 판단을 하지만 대개 상관없다. 상호작용 과정에 용해되기 때문이다. 화가 복이 되고 복이 화가 된다. 이기므로 지고 지므로 이긴다. 민주당이 지방선거, 총선, 대선을 세 번 연속 이겼으므로 진다. 졌다고 낙담할 이유 없고 이겼다고 좋아할 일 아니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인생에서 중대한 판단은 많아야 다섯 번이다. 꼬맹이 때 1만 원을 주워서 챙긴 사람과 주인에게 돌려준 사람이 있다. 1만 원을 챙긴 사람은 평생 땅만 보고 다니다가 망한다. 주인에게 돌려준 사람은 다른 사람과 연결되니 기세를 얻어 흥한다.

    바둑이 그러하다. 분명히 귀에서 많은 상대방의 바둑알을 따먹었는데 끝까지 가보면 중앙을 연결한 사람이 이겨 있다. 조금씩 성공의 확률을 쌓아가는데 그것은 중간단계에서 증명하기가 어렵다. 남에게 설명하려고 하므로,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므로 망가진다.

    내 손에 들어온 현찰은 증명된다. 말싸움을 하면 실속파가 이긴다. 그러나 인생의 의미는 임무의 수행에 있다. 행복이나 쾌락이나 명성은 소인배의 자기위안에 불과하다. 일종의 자위행위다. 콤플렉스가 많은 사람에겐 마세라티가 위안이 되겠지만 그게 슬픈 거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에게 고급차는 의미 없다. 부인이 예쁘다고 자랑해봤자 콤플렉스를 들키는 트로피 결혼이다. 남편이 잘났다고 자랑해봤자 그게 트로피 신랑이다. 남들에게 성공을 증명하려면 한턱 쏴야 한다. 한턱을 쏴서 증명해봤자 남들을 이롭게 할 뿐이다.

    집단과 연결하여 임무를 획득하고 내 자존감을 높일 것이냐, 아니면 실속을 차려서 콤플렉스를 보상할 것이냐? 철학의 문제는 이런 것이다. 어떤 둘을 새로 연결하는데 따른 기세와 권력과 이윤의 플러스알파를 추구하라.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최후에 얻는 것은? 핸들이다. 집단과 연결하여 임무를 얻은 사람은 도구를 핸들링할 수 있다. 상호작용의 게임에서 랠리를 이어가는 지렛대를 얻은 것이다. 비로소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사건의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그것이 인간이 추구하는 의미다.

    농부는 밭을 미워하지 않는데 지식인은 자본을 미워한다. 모든 농부가 그러한 것은 아니다. 쟁기를 다루지 못하는 초보 농부가 돌밭이라며 화를 낸다. 밭을 매우 나무란다. 도구를 다루지 못하는 초보 기술자가 욕한다. 자본을 다루지 못하는 초보 지식인이 문제다.

    연결한 다음 상호작용에서 이겨야 한다. 공을 네트 너머로 넘겨야 한다. 집단과 환경을 내가 다루어야 하는 도구로 보는 관점을 얻어야 한다. 자본은 도구다. 정치는 도구다. 문민정치가 군벌과 검벌과 언벌의 야합을 이겨야 한다. 기수가 말에게 진다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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