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반도체 장비 기업 램리서치가 국내 생산 거점에서 차세대 식각 장비를 생산한다. 삼성전자가 올 상반기 양산 예정인 최첨단 3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용 식각 장비를 국내에서 생산하게 된 것이다. 외산 반도체 장비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국내 반도체 공급망에 적잖은 파급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램리서치의 장비 생산 내재화 외에도 ASML, 일본 도쿄일렉트론 등 해외 유력 장비 회사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세계 최고 반도체 회사를 측면 지원하기 위해 국내 연구개발(R&D) 설비 구축에 투자하고 있다. 물류 마비,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국내 반도체 생태계 외연 확장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10일 미국에 본사를 둔 램리서치는 3나노 반도체 공정에 활용되는 최첨단 식각 장비들을 한국에서 생산한다고 밝혔다. 램리서치는 반도체 공정 중 미세한 회로 모양을 깎아내는 식각 장비(에처)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확보한 회사다. 이번에 이들은 업계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3나노 게이트 올 어라운드(GAA), 즉 3차원 트랜지스터 회로를 깎아내는 장비를 생산한다. 깎아내야 할 부분만 원자 단위로 세밀하고 균일하게 식각하는 초고난도 기술을 구현한다.
이 장비는 올 상반기 내 GAA 공정 양산을 시작하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에 공급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램리서치의 최첨단 식각 장비는 주로 본사가 있는 미국에서 생산됐다. 그러나 신규 식각 장비를 국내 생산 거점에서 만들어 국내 반도체 기업뿐 아니라 세계 시장으로 수출하는 전략을 결정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한국 생산 기지인 램리서치매뉴팩춰링코리아가 설립 10년 만에 8000호 기 생산을 달성하는 등 안정적인 생산성과 부품 공급망 확보가 증명된 데다 지난해 발안 공장 운영 시작으로 국내 생산 능력을 2배 이상 끌어올린 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또 글로벌 굴지의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가 국내에서 첨단 반도체 양산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점 역시 램리서치가 국내 생산 전략을 세운 중요한 배경이다.
램리서치 엔지니어가 3나노 GAA 식각 장비 ‘셀리스’를 점검하고 있다.현재 세계 반도체 시장은 물류 마비와 원자재 값 상승, 코로나19 장기화 등으로 초유의 장비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램리서치의 장비 생산 내재화 및 국내 R&D 시설 투자는 물론 ASML(네덜란드)·도쿄일렉트론(일본)·듀폰(미국)·머크(독일) 등 세계 최고의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회사들의 대규모 국내 설비 투자가 줄을 잇고 있다.
공급망 위기 속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의 영향력을 보고 이들의 요청 사항에 즉각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기업들의 이런 움직임이 국내 공급망 위기 해소는 물론 열악했던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생태계에 큰 활력을 불어넣을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공급망 위기를 최소화할 수 있고, 외국 업체들은 세계 최고 반도체 회사들과 지근 거리에서 기술 협력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장비뿐만 아니라 장비 속에 들어가는 각종 부품 원천 기술 확보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강해령 기자 hr@sedaily.com<©서울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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