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임시체류증인데
싯다르타는 나라는 존재가 사실 “임시의 나”인 것인 것에 불과하니 그것에 대해 집착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반야심경의 구절 照見五蘊皆空(조견오온개공) 度一切苦厄(도일체고액)이 그것이다.
저 구절이 진짜 옳은 말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삶의 힘든 경지로부터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은 같다. 살아오면서 힘들 때마다 저 구절을 새기게 되니 말이다.
나 호호당이 입춘 바닥을 지나 한참 곤궁하고 힘들 때 에이, 뭐 버린 셈 치자꾸나, ‘임시의 나’라고 하니 버린 들 아까울 것 뭐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위안을 받았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비교에서 야기되는 컴플렉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위로해도 역시 지울 수 없는 힘든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다른 이와 내 처지를 비교할 때 생기는 복잡한 감정이었다. 대표적으로 열등감 같은 거 말이다.
상담을 하면서 “자연순환의 이치”에 대해 차츰차츰 알아가게 되면서 또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으니 사람은 그 누구나 나름의 열등감이 있고 때론 트라우마가 있다는 점이었다.
처량한 처지의 사람만이 아니라 남들 보기에 정말 대단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남들이 잘났다 하니 스스로도 그런 줄 모르고 덮어두고 있을 뿐이었다.
상담 도중에 어쩌다가 그냥 평범한 말을 건넸는데 상대가 예민한 반응을 나타낼 때가 있었다. 처음엔 왜?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그게 그 사람의 뭔가 아픈 구석을 건들었기에 그런 반응이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수없이 많은 사람을 상대로 상담하고 경험이 쌓여가면서 나중엔 의도적으로 그런 반응을 유도할 수도 있게 되었다. 상대의 말하는 투나 어휘 선택 그리고 말할 때의 몸짓을 볼 때 짐작 가는 게 있었고 이에 일부러 마치 지나가는 말투로 그 대목을 확인해보는 방식이다.
때론 눈을 일순 깜빡 거리거나 어깨를 으쓱거리기도 하며 또 짧지만 어떤 경련 같은 것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럴 땐 그게 자연스런 생리적 반응인지 아닌지 다시 확인해보기도 한다.
상대의 아픈 구석을 가늠할수 있어야 좋은 조언을 해줄 수 있기에
이미 그 사람의 과거 흐름과 향후의 운세 흐름에 대한 것은 생년월일시를 통해 사주를 펼치는 순간 한 눈에 꿰뚫어 볼 수 있기에 상대의 어려운 시절에 있었을 수 있는 트라우마 또는 쓰라린 기억에 대해 알아보려는 것이다. 이건 악취미가 아니다. 그 사람이 구체적으로 언급하긴 싫어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런 방법을 통해 가늠함으로써 그 사람의 향후 일과 흐름에 대해 나름 의미 있는 조언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떨 땐 짐작이나 추론을 멈추고 그냥 상대의 말을 경청하면서 상대의 얼굴과 표정, 몸짓을 차분히 지켜볼 때도 많다. 제법 나이가 있는 사람의 경우 얼굴의 잔주름 사이사이에 수많은 것들이 아로새겨져 있다. 저 표정과 몸짓 속에 그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지나갔을 것이며 그 사이의 힘들고 아픈 일들을 어떤 식으로 삭혔는지 또는 새겼는지 아니면 머릿속 한 구석에 밀쳐 넣은 채 봉인해버렸는지, 그냥 느껴보고자 주의를 집중한다.
니나 내나
이는 여름날 길을 가다가 키 큰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 아래 서서 기둥줄기에 새겨진 여러 각인들과 아문 상처들을 살펴보거나 쓸어주기도 하면서 그 나무의 지나온 내력을 짐작해보려는 것과 같다. 이에 자네도 아팠겠구나, 힘들었겠네, 고생 많았어! 사실 나도 그렇다네, 하면서 위로의 말을 건네고 공감해보는 것 말이다.
잠시 어지러워서 글을 멈추고 창밖 멀리 내다보았다. 큰 건물 위로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다가 흩어지고 엷어져서 사라지고 있다. 순간 두 가지 생각이 든다. 하나는 물감 차이니즈 화이트, 흩어져가는 저런 연기를 수채화에서 표현하려면 차이니즈 화이트를 농담에 맞추어 칠하면 될 것이다. 또 하나는 역시 나라고 하는 존재 또한 저 연기처럼 천천히 희석되어 사라져가는구나 하는 생각이다.
다시 돌아온다.
욕구는 양날의 칼이란 점
우리 모두 여러 가지 바람을 갖고 살아간다. 바람은 소망 또는 희망이기도 하고 욕망이기도 하며 탐욕이기도 하다. 아무런 구분도 차별도 없다. 같다.
욕구 또는 바람은 삶을 살아가고 이어가게 하는 소중한 힘이다. 그게 없다면 정말이지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 욕구 또는 바람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삶을 저 나락으로 끌고 가는 엄청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배가 고플 땐 밥을 어느 정도 먹고 나면 더 이상 먹고 싶지 않다. 자율 조절이 되니 좋다. 그런데 어떤 욕구는 충족되었음에도 계속해서 더 추구하라고 우리를 닦달하는 이상한 놈들도 있다. 多多益善(다다익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믿게 만드는 욕구가 있다. 위험하다. 때론 그게 우리를 지옥으로 이끌어간다.
위험한 욕구라서 해서 그 자체만으론 큰 문제가 있진 않다. 가령 내 자식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 그게 무슨 문제가 되랴! 하지만 그런 욕구야말로 실은 위험하다. 그런 마음이 강하다 보면 우리의 눈을 가려서 盲目(맹목)으로 만들어놓기도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하기도 한다.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구, 절대 나쁘지 않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결국 남이 가져갈 몫을 빼앗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 무자비한 돈의 노예가 되기도 한다.
발전이란 것은 위험한 것이어서
그러나 위험한 욕구 중에 가장 위험한 것은 발전에 대한 욕구, 향상심이 아닌가 싶다. 계속해서 발전한다, 좋은 일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역시 나중엔 스스로를 옭아맨다. (나 호호당은 우리 대한민국이야말로 발전 욕구의 희생양이라 여긴다.)
다 알고 있다, 대여섯 살만 되어도 어느 정도 자제가 필요하다는 정도는. 두 살배기 아기처럼 울어 젖힌다고 해서 만사가 해결되진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상엔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라 비슷한 처지의 수많은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제가 필요하다는 사실, 욕심을 부려도 때론 멈추고 타협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정도는 다 알게 된다.
문제는 하지만 부모들이 자제를 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제를 시켜도 대단히 선택적으로만 자제를 시킨다. 공부하는 일, 끊임없이 발전하고 더 높은 성적을 내라고 직접 혹은 간접으로 부단히 압력을 넣는다. 이번 성적이 좋으면 뭐 해줄게 뭐 사줄게 하면서 보상책을 제시하기도 하고 때론 노골적으로 야단을 친다.
공부를 잘 하라고 하는 것은 다른 아이들과의 싸움에서 이기라는 요구이다. 그러면서 착하게 살라고 가르친다. 이율배반이다. 싸우지 않고 물러서는 것이 착한 일이 아닌가 말이다.
비교하는 것의 장점과 문제점
잘 싸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주변의 타인과 비교하는 것이다. 타인의 장점을 지켜본 뒤 흡수하고 나중에 그 타인을 넘어서는 방법이다. 이른바 벤치마킹.
신체적인 강점을 요구하는 운동과 같은 분야라면 금방 판단이 선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서 예체능은 돈이 잘 되지 않기에 관심권 밖이다. 그런데 머리와 멘탈로 하는 게임, 대표적으로 학업 성적이야말로 모든 이가 가장 만만하게 보고 자녀들로 하여금 잘 해보라고 사실상 강요하는 게임이다.
내 자식이 머리가 나쁠 턱이 없고 부모로서 지원만 적당히 또는 한껏 해주면 능히 잘 할 수 있다고 덤벼드는 종목이 바로 학교 공부이다. 하지만 경쟁자가 너무나도 많아서 그야말로 확률 희박한 게임이 바로 학교 공부이다.
정리할 때가 되었다.
잘난 사람과 나 자신을 비교하다 보면 끌려다닌다.
비교하는 것,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가진 자를 보면서 부러워하고 열등감을 느끼고 그러면서 그 자를 능가해보려고 애를 쓰는 것, 발전하고 향상됨에 있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그게 몸에 배어서 잠재의식에 깔리면 그거야말로 가장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타인과 비교하고 벤치마킹하며 살다 보면 정작 내가 나로서 살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내가 나답게 마음 편하게 살아야 할 터인데 끊임없이 누군가의 장점을 배워서 넘어서야 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는 법, 나중엔 그냥 끌려 다니게 된다.
세상엔 나보다 잘 난 놈이 너무나도 많다. 다 배울 수도 없고 타고난 재능을 다 따라잡을 수도 없다.
오랜 세월 상담해오면서 내심 눈앞에 앉아있는 이 분은 앞으로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구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게 바로 끊임없이 도전하고 갈구하는 사람, 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그렇다. 살다 보면 어느 선에서 이제 그만! 하면서 멈출 줄도 알아야 하는데 말이다.
세상은 입 발린 말을 잘 한다. 끊임없는 도전 정신 운운하면서 칭찬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의 문제이지 세상 한 번 살다 가는 거,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혀서야 쓰겠는가 말이다.
위만 보지 말고 수평으로도 보아야 한다. 나아가서 발밑도 볼 줄 알아야 균형을 잡을 수 있다,
출처: https://hohodang.tistory.com/ [희희락락호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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