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정열 입력 2021. 10. 13. 05:25
호주 석탄 금수한 중국은 '휘청'..호주는 되레 최대 흑자
英·美 설득해 오커스 결성..연일 '중국 때리기' 앞장서
(서울=연합뉴스) 정열 기자 = 인구 2천500만 명인 남반구의 중견국 호주가 국제 정치의 '키 플레이어'로 부상하고 있다.
호주는 지난해 4월 스콧 모리슨 총리의 코로나19 발원지 조사 발언으로 중국의 전방위 무역 보복에 직면했다. 그러나 무역 보복에 큰 피해를 볼 것이란 예상을 깨고 반격에 성공하며 중국을 겨냥한 '앵글로색슨 동맹'의 핵심축으로 떠올랐다.
호주 잠수함 위에 서 있는 호주-프랑스 정상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호주산 석탄 수입을 금지한 중국이 대규모 전력난에 직면한 것과 대조적으로 호주는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사상 최대 무역흑자를 기록했고, 오커스(AUKUS) 동맹 결성에 앞장서면서 중국을 더욱 궁지로 모는 모양새다.
중국은 전력난, 호주는 최대 무역 흑자
13일 호주 통계청에 따르면 호주는 지난 8월 151억 호주달러(약 13조 원)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전월보다 18.9% 늘어난 것으로, 월간 단위 무역흑자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애초 애널리스트들은 호주의 8월 무역흑자 규모를 전월보다 하락한 103억 호주달러로 예상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를 훨씬 상회한 것이다.
전문가들의 예상을 뛰어넘은 호주의 무역흑자 규모는 최근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 액화천연가스(LNG)와 난방용 석탄 등 호주 주요 수출 품목의 가격이 강세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호주 일간 디오스트레일리안은 전했다.
이는 1년 전 중국과 호주 간 무역 분쟁이 시작될 때의 예상과는 사뭇 다른 결과다.
중국이 지난해 4월 코로나19 발원지에 대한 국제 조사를 요구한 모리슨 호주 총리의 발언을 문제 삼아 전방위적인 무역 보복에 나설 때만 해도 상대적으로 약소국인 호주가 적잖은 피해를 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중국은 모리슨 총리의 발언이 나온 직후인 지난해 5월 호주의 4개 도축장에서 생산된 쇠고기 수입을 금지하고, 호주산 보리에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또 자국민에게 호주 유학과 관광을 자제하도록 권고했다.
호주 내 외국인 유학생의 약 30%가 중국인이고, 2019년 한해에만 130만 명의 중국 관광객이 호주를 찾아 15조원을 썼을 정도로 중국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에 호주 경제가 입을 타격은 불가피해 보였다.
중국은 지난해 10월에는 호주산 석탄의 수입을 중단하고 11월에는 수입 제재 품목을 과일과 수산물까지 확대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였다.
중국 상하이의 석탄 화력 발전소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호주는 중국의 전방위적 공세로 한동안 수세에 몰린 것처럼 보였지만 물러서지 않고 올해 3월부터 오히려 역공을 취했다.
중국 축산 농가의 필수품인 호주산 건초 수출 금지, 멜버른이 속한 빅토리아주가 중국과 맺었던 '일대일로 협약' 취소, 미국과 연합 군사 훈련 강화, 대만과 통상장관 회담 개최 등을 통해서다.
특히 9월부터는 호주산 석탄 금수 등의 영향으로 중국의 31개 성·직할시 중 20여 곳에서 극심한 전력난이 빚어지고 광둥성과 장쑤성 등 공업지대의 산업생산까지 큰 차질을 빚었다. 자원 부국인 호주가 중국의 급소를 찔렀다는 평가가 나왔다.
호주 통계청은 "국제 시장에서 (호주의 주요 수출품인) LNG와 난방용 석탄 가격이 강세를 보이면서 대중국 수출도 작년 동월 대비 55% 늘어난 186억 호주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중국이 기세 좋게 호주산 석탄 수입을 금지했지만 겨울철을 앞두고 터진 전력난으로 발전연료 확보가 다급해지자 오히려 호주산 LNG 수입을 늘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날씨마저 중국을 도와주지 않고 있다.
중국의 최대 석탄 생산지인 산시성에서는 이달 2∼7일 기록적 폭우가 쏟아지면서 탄광 682곳 중 60여곳이 물에 잠겼다.
이 여파로 중국의 석탄 선물가격은 11일 사상 최고치인 t당 218.76달러까지 치솟으며 겨울철 에너지 수급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앵글로색슨 동맹 강화로 중국 위협에 정면 대응
호주는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파상적 통상보복에 움츠러드는 대신 강공책으로 맞섰다.
1951년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가 체결한 앤저스(ANZUS) 안전보장조약 이후 70년 만에 가장 의미있는 안보전략 전환으로 평가되는 '오커스' 동맹 결성을 통해서다.
지난달 15일 공식 출범한 오커스는 갈수록 거세지는 중국의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영국, 호주 등 영어를 쓰는 앵글로색슨 3개국이 만든 안보 협의체다.
오커스 동맹국이 합의한 가장 중요한 내용은 호주가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핵잠수함 기술을 이전받아 최신 핵추진 잠수함 8척을 짓는다는 것이다.
호주 총리와 회담하는 미국 바이든 대통령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미 앵글로색슨 정보동맹체로 유명한 '파이브 아이스'(Five Eyes)의 주요 멤버이기도 한 호주는 오커스 동맹 결성으로 미국, 영국과의 안보협력 관계를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핵추진 잠수함의 경우 장시간 수면 위로 떠 오르지 않고 원거리를 잠항할 수 있어 중국의 턱밑을 위협할 수 있는 군사 기술로 꼽힌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오커스 결성과 호주의 참여는 인도태평양 지역에 지정학적 지각 변동을 일으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은 오커스 출범에 대해 "냉전 사고방식과 이념적 편견을 떨쳐내야 한다"며 반발했지만 호주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모리슨 총리의 정치적 멘토라 할 수 있는 토니 애벗 전 총리가 이달 6일 대만을 방문해 차이잉원(蔡英文) 총통과 양국 간 안보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는 등 중국에 맞서는 이른바 '민주주의 연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호주는 노동당 정부가 집권하던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친중(親中) 노선을 견지했던 서방국 중 하나였다.
2012년 10월에는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 지역과의 교류·협력 확대의 중요성을 피력한 '아시아 세기의 호주' 백서까지 펴낼 정도였다.
호주의 이런 친중국 정책의 중심에는 케빈 러드 전 총리가 있었다.
호주국립대(ANU)에서 중국어를 전공하고 베이징(北京)에서 외교관 생활까지 한 러드 전 총리는 서방 정상 중 중국어를 가장 잘하는 지도자로 꼽힐 정도로 중국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의 사위도 중국계였다.
그러나 2013년 토니 애벗이 이끄는 보수 자유당이 정권교체에 성공하면서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
좌파 성향의 노동당과 달리 호주 자유당은 미국, 영국 등 전통적인 앵글로색슨 우방국과의 안보협력 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자유당 내에서도 강경 보수파로 꼽히는 모리슨 현 총리는 경제적 이익 상실을 우려해 중국과의 정면충돌을 피하려 했던 이전 정권과 달리 호주의 주권을 최우선시하는 정책을 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호주의 5G 통신사업에 중국 IT기업인 화웨이의 참여 배제를 결정했고, 지난해 4월에는 국제사회 차원에서 중국의 코로나19 기원과 책임에 대한 조사를 공식 요구했다.
오커스 동맹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체결과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의 4자 협의체) 출범을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호주 외교안보 정책의 결정판이다.
아키모토 치아키(秋元千明) 영국왕립방위안전보장연구소 일본특별대표는 "오커스는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가 결성한 앵글로색슨 정보동맹체 파이브 아이스를 모체로 탄생한 것"이라며 "향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정치는 쿼드, 안전보장은 오커스, 경제는 CPTPP가 역할을 분담하는 형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passi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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