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30 12:01ㅣ최종 업데이트 21.04.30 12:01
그동안 집값을 잡겠다고 공언해온 정부·여당의 정책 기조가 사뭇 달라졌습니다. 부동산 보유세를 완화해주고, 대출 규제도 풀어주겠다고 합니다. 공공재개발 아파트의 예상 분양가는 강남 아파트와 맞먹는 수준에 책정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오마이뉴스>가 전문가 4명에게 물었습니다. 이 인터뷰는 마지막 네 번째입니다.[편집자말] |
▲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이희훈
정부와 여당을 향한 박상인 서울대 교수의 비판은 매서웠다. 갈지자 행보를 보이는 부동산 정책에 대해 그는 "앞뒤가 안맞는 정도가 아니라 갈팡질팡하고 있다"며 "정치적 계산도 해보지 않고 즉각즉각 반응하는 식으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정책 철학의 빈곤"라고 했다.
이어 "표에 유리하면 뭐든지 하겠다는 건데, 이건 정책이 아니라 매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 23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박 교수는 정부가 강남 집값 잡기에만 매몰돼 "부동산 정책 자체를 잘못 설계했다"면서 근본적으로는 '집값 잡기'가 아닌 '불로소득 방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구체적 대안으로 '지대세' 도입을 제시했다. 정부는 불로소득을 환수할 지대세를 설계해 실행하고, 가격은 인위적인 시장 개입 없이 자율에 맡겨야 부작용 없이 집값 상승 등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의 구상은 유주택자가 주택을 팔 때, 물가상승분 정도의 상승 금액만 가져가도록 하고, 나머지는 세금으로 환수하자는 것이다. 박 교수는 지대세 도입이 "근본적으로 투기 유인을 없앨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집값이 안정됐던 것도 토지 수익에 대한 기대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주택 공급이 부족해서 집값이 오른다는) 주택 공급 부족론은 경제학의 수요곡선이론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라고 했다.
박 교수는 "인간의 탐욕을 바람직한 쪽으로, 생산적인 쪽으로 분출시킬 수 있도록 제도와 정책이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박 교수와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대선용 부동산 정책 유턴, 스스로 무덤 파는 것"
▲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이희훈
- 보궐선거 이후 부동산 정책에 대한 정부·여당 분위기가 급변했다. 보유세 감면해주고, 대출도 풀어준다고 한다. 공공재개발에서는 고분양가가 책정되고 있다. 어떻게 봐야 하나?
"부동산 정책이 길을 잃었다. 앞뒤가 안맞는 정도가 아니라 갈팡질팡하고 있다. 가뜩이나 정책 신뢰도가 낮았는데, 이제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누가 믿겠나. 내년 대선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 같은데, 정치적인 계산도 안 해본 것 같다. 부정적인 반응이 오니까 즉각 대응하는 식으로 대책을 내놓으면서 정치적 셈법도 따지지 않은 것 같다."
- 정부·여당이 왜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나.
"정책 철학의 빈곤이다. 뭘 하겠다는 건지 목표가 불분명하다. 표 얻을 생각밖에 없다. 표에 유리하면 뭐든지 하겠다는 건데, 이건 정책이 아니다. 매표를 하는 거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기권한 사람, 스윙 보터들이 많다. 이 사람들이 돌아오게 해야 하는데, 정부·여당이 이런 식으로 정책 대응을 하는 것을 보면 더 멀어질 것이다. 스스로 무덤을 파는 거다."
- 대출 규제 완화의 경우, 보궐선거 때부터 이야기가 나왔다. 여당에선 50년에 걸쳐서 나눠갚는 대출상품 출시를 공언했는데.
"요즘 30대에 취업해서 50대에 회사를 나오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현재 집값 수준과 대출 상환 부담을) 계산해 보니 도저히 답이 안나오니까, 대출 기간이라도 50년으로 늘려 (월 상환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식이다."
- 대출규제 완화, 고분양가 아파트, 보유세 완화 중 가장 나쁜 건 뭐라고 생각하나?
"아예 정책 자체를 처음부터 잘못 설계했다. 강남 집값을 잡겠다는 정책이 풍선 효과를 일으켜서 모든 집값을 올렸다. 지방에 돈 있는 사람도 이제는 강남 집을 사려고 들어온다. 그러다보니까 공급을 하겠다며 토지개발 정책을 또 내놓는다. 토지 보상 받은 사람은 또 강남에 집을 산다. 악순환이다. 집값 잡겠다는 사고 자체가 정부가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해온 개발 독재 아이디어의 연장선이다."
"현재 보유세는 매우 복잡, 지대 걷는 조세정책이면 충분"
▲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이희훈
- 정부가 부동산 정책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
"부동산 불로소득을 가질 수 없는 세제를 만들어야 한다. 부동산 투기는 결국 어느 누군가는 기회를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막기 어렵다. 부동산 불로소득에 대한 기대를 없애야 한다. 부동산 초과이익, 지대를 공개념화해서 조세로 환원하도록 해야 한다. 근본적인 투기 유인을 없앨 필요가 있다. 보유세의 경우 계속 올리는 건 한계가 있다. 강남 쪽에서 아파트값 많이 올랐는데, 집 한 채만 갖고 있다가 집만 비싸져 세금이 높아지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집 팔고 나가란 얘기인데, 조세 저항이 심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초과이득세, 지대세를 새롭게 도입해 만들 필요가 있다."
- 지대(地代)세는 새로운 개념처럼 보인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와 비슷해 보이기도 하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과잉 불로소득을 세금으로 걷는 방식이다. 부동산 초과이익 지대를 공개념화하는 건데, 조세로 환원하는 방식이다. 정기예금 금리를 기준으로 안정자산인 부동산에 대한 수익률을 계산하고, 주택을 양도할 때 이 수익률을 제외한 나머지를 지대세로 받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부동산 투기를 통해 과도한 불로소득을 얻는 것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 1가구 1주택자의 경우 집을 갈아타려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납세 유예를 해주면 된다. 납세 유예를 해주는 대신 1순위 채권으로 잡는 방식으로 하면 부작용도 막을 수 있다. 불로소득을 가질 수 없는 세제다. 이런 세제가 있으면 집값 많이 올라가는 걸 어느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 거다. 현재 보유세는 매우 복잡하다. 지대를 걷는 조세 정책이면 충분하고 집값은 시장에서 정해질 것이다. 지금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있다. 가을쯤 발표할 수 있을 듯 하다."
- 지금도 세금에 대한 반발이 있는데, 지대세에 대한 반발은 더 클 것 같다.
"부동산 불로소득은 생산 활동의 결과로 생기는 게 아니다. 환경이 바뀌어서 생기는 것이다. 주류경제학에서도 이것은 정당화되지 않는다. 지대세 방식은 부동산으로 떼돈을 버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 부동산 세제보다 더 나쁘지 않을 수 있다. (그 세원을 활용해) 중산층 모기지 제도 도입 등에 투입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집값이 안정화되면 모두에게 좋다. 인간의 탐욕을 바람직한 쪽으로, 생산적인 쪽으로 분출시킬 수 있도록 제도와 정책이 설계돼야 한다. "
"공급부족론, 경제학 모르는 사람들의 얘기"
- 공공재개발 아파트의 경우 평당 4000만원이 넘는 예상 분양가가 나와 논란이 되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그 정도 분양가면 빚내서 집사라는 이야기다. 집값이 오른 상태에서 똑같이 (공공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거다. 지대추구에 대한 탐욕을 부추기는 형태로는 집값 안정화가 될 수 없다. 공급 대책은 취약 계층 중심으로 가야 한다. 쪽방촌이나 고시원 등에 거주하는 사람, 막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이 부담가능한 주택, 공간도 확보하면서 실용적인 공공임대를 많이 지어야 한다."
- 공공임대만 지었을 경우 또다시 부동산업계를 중심으로 공급 부족론이 확산될 수 있다.
"주택공급부족론은 경제학이 뭔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다. 부동산 가격에 대한 기대 수준이 바뀌면, 수요와 가격도 같이 올라간다. 시장 참여자들은 장기적인 수요를 생각해서 의사결정을 한다. 가격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면 공급을 하더라도 가격·수요가 같이 올라간다. 공급부족론은 경제학 수요공급이론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다. 이명박 정부 때 공급이 많지 않았는데도 집값이 안정화됐다. 강남 아파트들도 미분양이 많았다. 과도한 지대에 대한 기대가 없어지면서 그렇게 됐던 거다."
- 그런데도 정부가 근거가 취약한 공급부족론을 받아들여 신도시 건설과 공공재개발 등 대규모 공급 대책을 밀고 나가고 있다.
"정책 철학, 목표도 없이 스스로 신뢰를 깎아먹고 자승자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단기적으로 표 얻는 데만 매몰된 결과다."
- 정부와 여당에 제언하고 싶은 게 있다면?
"재벌중심 불평등 구조 개선, 불로소득 환수 등 근본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상한 정책으로 가니까 부작용만 계속된다. 출산율 문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아이 낳을 생각을 안한다. 경제 구조를 바꾸는 정책 없이는 출산율도 해결 안된다. 근본 구조는 손 안대고 있으니 출산율·자영업자 문제·노인빈곤·부동산 등 무엇 하나 해결하는 게 없다. 부동산 문제는 자신있다고 했다가 실패했고, 이제는 명분도 없는 정책을 쓰고 있다. 최소한 갖고 있던 신뢰조차 깎아먹고 있다. 정부가 방향을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 대선 후보자들도 방향성과 철학을 잘 잡는 공약들을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 단순히 표바라기식 정책을 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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