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싫어하는 미국인들.. 시진핑 한방 먹인 바이든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오마이뉴스 임상훈 입력 2021. 02. 14. 18:48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아메리카 이즈 백' 시작됐다
[임상훈 기자]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미국의 외교 전략과 행동계획에 많은 관심이 쏠린다. 향후 4년 국제관계의 흐름을 전망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되기 때문이다.
백악관 입주에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얼굴이었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미국이 우선) 지우기에 여념이 없던 바이든 대통령은 출범 일성으로 '아메리카 이즈 백' (America is back, 미국의 귀환)을 선언했다. '하지만 예전과 같은 방식은 아닐 것'이라는 첨언과 함께.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워싱턴 EPA=연합뉴스
"미국의 '다른' 귀환"
미국이 다른 모습으로 귀환한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가 아니고 트럼프 대통령의 '불도저식 밀어붙이기'가 아닌 미국의 새로운 리더십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는 적절한 방향을 향하고 있을까?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은 지난 4년간 균열이 더 심해진 유럽과의 관계 봉합에 서두르고 있다. 서아시아의 난제, 이란 관련 서류도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있다. 뒷전으로 밀릴 것이라는 우려를 의식한 듯, '북한은 시급한 우선순위'라는 국무부 입장도 내놓았다. 하지만 이 모든 미국의 대외정책에 예외 없이 관계되는 문제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대중국 전략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과거 부통령 2기 임기를 막 시작한 2013년 3월 시진핑 체제의 중국을 맞았다. 자신의 표현대로 시진핑 주석과는 많은 상대를 했을 뿐 아니라 지난 8년의 시진 핑 체제에서 도광양회(韜光養晦, 칼을 칼집에 넣어 검광을 감춘다)를 지나 주동작위(主動作爲, 할 일을 적극적으로 한다)로 서서히 전환하는 중국의 변화를 지켜봤다.
오바마 체제에서 G2 파트너로서의 중국, 트럼프 체제에서 무역전쟁 상대국으로서의 중국을 바이든 대통령은 여야 입장을 넘나들며 직접 관여하기도 했고, 지켜보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미국 국민들의 중국에 대한 근본적 인식 변화가 그의 대외 정책결정에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지난해 4월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 센터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 3명 가운데 2명이 중국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2005년 이후 매년 실시하고 있는 이 조사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최근 10년 사이 미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인식이 극적인 반전을 이뤘다는 점이다.
2005년에는 긍정 43%, 부정 35%, 5년이 지난 2010년 역시 긍정 49%, 부정36%로 미국인들에게 중국은 긍정적 평가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5년 후 2015년 조사에서는 긍정 38%, 부정 54%로 역전됐고 2020년 조사에서는 긍정 26%, 부정 66%로 이 조사가 실시된 이후 미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최고치에 달했다.
긍정 부정 사이의 반전 곡선은 중국에서 시진핑 체제가 들어선 시기에 교차점을 형성했고, 오바마 정권 말기 둘 사이의 격차가 줄어드는 듯했다. 그러나 미국이 트럼프 체제로 전환된 이후 다시 벌어지기 시작하다 지난해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미국의 보수층뿐 아니라 중도와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같은 결과를 보였다. 퓨리서치는 지난해 중국에서 확산하기 시작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미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인식 변화가 돌발적 사건 때문이 아닌 큰 흐름 속의 결과라고 해석되는 대목이다.
반중 정서 최고치, 대중 정책 변화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의 큰 틀은 이미 정해졌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일부 국내외 언론처럼 바이든 호(號)의 출범이 미중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은 따라서 큰 틀에서는 정확하지 않다고 봐야 한다.
미국의 대중국 압박 전략이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점은 이미 그의 당선 전부터 예견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체제의 미국과 차별화를 꾀해야 하는 바이든 대통령은 새로운 전략으로 중국을 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미국 민주당의 전통적 대외전략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liberal internationalism)로 요약된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 이래 미국의 대외전략 특히 민주당 정권의 전략은 민주주의적 가치를 통한 세계질서 확립을 궁극적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그것은 이후 어떠한 정권이 들어서도 적어도 '명분'에서는 크게 이탈하지 않았다.
이에 반해 공화당의 전략은 흔히 '실용주의적 국제주의'(pragmatic internationalism) 또는 '현실주의적 국제주의'(realist internationalism)로 묘사된다. 윌슨 대통령의 국제주의 이후 공화당 역시 과거의 고립주의를 지양하고 적극적 개입을 기본 가치로 삼지만 국제질서보다 미국의 힘에 의거한 일방주의, 그리고 다자외교가 아닌 양자외교를 기본 축으로 삼는다.
미국의 민주, 공화 양당의 이러한 기본적 대외정책 틀은 21세기 들어 다소의 수정 과정을 겪게 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과거 민주당 정책의 적극적 국제문제 개입 원리를 벗어나 미국의 상황을 고려한 실용주의적 원리를 그 특색으로 했다. 그 결과 이란 문제를 포함 일부 성과와 과거에 비해 반미 성향의 정부나 단체가 줄어든 효과도 있었지만 이집트, 아프가니스탄, 북한 등 여러 지역에서 '후퇴도 아니지만 전진도 없는' 무색무취의 대외전략 부재를 보여주기도 했다.
반면 트럼프 체제의 공화당 행정부는 고립주의로 요약되는, 미국의 국제문제 개입 배제 원칙을 고수하면서 철저하게 미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외교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그러한 불개입 원칙이 미국을 오히려 고립 상황으로 빠뜨리면서 몇몇 작은 이익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리더십에 심각한 상처를 남긴 결과를 초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아메리카 퍼스트'가 결국 '아메리카 얼론'(America alone, 홀로된 미국)으로 전락하는 결과만 남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말하는 '미국의 다른 귀환'은 적어도 민주당의 국제주의는 고수하되 오바마 행정부 당시의 무기력한 태도는 거두어야 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위험한 고립주의를 벗어나되 다자주의적 원칙에 따라 중국에 대한 강한 압박은 유지해야 하는 임무를 눈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간혹 국내 전문가 집단에서 제기되는 바이든 행정부의 '실용주의적 국제주의' 예측은 이 차원에서 볼 때 적절하지 않거나 적어도 오바마 행정부 당시의 실용주의로의 귀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러한 방식의 '미국의 귀환'은 결국 다시 과거로 회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이든 외교팀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자신들의 귀환이 과거로 회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결국 바이든 외교정책의 핵심은 적극적으로 관여하되 다자주의적 차원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에 근거한 세계질서를 명분으로 삼는 국제주의라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 차원에서 볼 때, 바이든식 외교안보 정책은 오바마 대통령의 수정주의보다 오히려 전통적 민주당 외교정책에 더 가까워야 할 것이다. 적어도 그들이 말하는 '다른 귀환'을 실제로 실현하겠다면.
그들이 과연 자신들의 외교안보 기본계획(master plan)을 실현해 나갈 수 있을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지만 적어도 최근 들어 그 가능성은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차별화 부각시킨 바이든 리더십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중국의 시진 핑 주석과 취임 후 첫 통화에서 중국의 인권문제를 명시적으로 거론했다. 현지시간으로 10일 바이든 대통령은 시진핑 국가주석과 통화에서 중국의 강압적이고 불공정한 경제 관행과 더불어 홍콩 탄압, 신장 위구르족에 대한 인권 유린을 정면으로 거론했다.
분명 오바마 대통령이나 트럼프 대통령과는 차별되는 대목이다. 전임에 대한 평가가 본래 가혹할 수 있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대중 전략은 '결과적으로' 실패한 전략이었다. 실제 그의 임기 동안 중국은 G2를 넘어 인도 태평양 지역, 아프리카까지 활보하면서 현재와 미래의 중국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트럼프 체제에서 미국의 대중국 전략은 더 심각했다. 무역전쟁을 선포하며 쉴 틈 없이 화력을 뿜어 댔지만 그에 비해 얻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세계 무역 질서만 진흙탕으로 변해갔다. 특히 미국과 서유럽 간의 심각한 균열을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 중국의 전략이 오히려 돋보였다. 중국은 정치적 경제적 혼돈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이탈리아에 선물 보따리를 풀어댔다. 이탈리아는 서방 주요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중국의 일대일로 (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계획에 참여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중국 인권 문제 거론은 중국 입장에서는 결코 쉽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명분이라는 샅바 싸움에서도 국제여론에서 동조하는 목소리를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미 중국을 향한 미국의 국내 여론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다수의 미국 국민들은 국제 통상적 다툼의 여지가 있는 경제전쟁보다 인권 문제를 통한 중국의 압박에 찬성을 보낼 것이다.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베이징 신화=연합뉴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을 상대로 실리를 얻을 수 있는 강력한 명분으로 인권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미국 민주당의 전통적 대외정책 기조인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에 상당히 근접한 접근법이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원칙 가운데 하나인 다자주의 원리 차원에서도 최근 주목할 만한 변화가 보인다. 브렉시트 이후 새로운 대외 전략에 골몰하는 영국이 최근 들어 미국 이상으로 중국 인권문제에 날을 세우고 있다. 이미 홍콩 문제부터 중국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영국은 최근 신장 위구르 지역의 인권 탄압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하고 나섰다.
분명 영국은 중국 때리기에 미국과 함께 보조를 맞추면서 유럽에서 좁아진 자신들의 역할과 영역을 아시아 지역에서 보완하려 하고 있다. 올해 G7 의장국인 영국은 한국과 인도, 호주를 정상회의에 정식 초대할 예정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대중국 외교 문제에서 무언의 압박이 증가된 셈이다.
인권문제는 경제전쟁보다 반박의 여지가 현저히 좁다. 중국이 호텔 몇 군데에서 비비시(BBC) 방송 송출 중단을 했지만 이 정도로 맞설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중국 정부는 위구르족 탄압 문제를 일부는 인정, 일부는 부인하면서 내정간섭이자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변하지만, 국제법의 존재 이유는 국경을 넘어선 인권문제를 해결할 강한 필요성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여전히 국제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그것은 개별 국가들의 합법적 폭력을 제어할 수 있는 국제조직이 아직 부재하기 때문이다. 국제사회가 다자주의적 틀 안에서 국가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인권유린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한다면 그것은 실리를 감춘 명분을 넘어 인류의 정의에 부합하는 길이 될 것이다.
만약 바이든 대통령이 그런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그리고 중국에서 자행되는 반인륜적 만행들이 실질적으로 제거된다면, 적어도 줄어든다면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앞선 네 명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의 업적을 넘어서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미국의 실리라면 국제사회가 기꺼이 용인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다른' 귀환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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