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용, '우리는 역사상 가장 당당한 나라를 만들수 있을것'

전우용, '우리는 역사상 가장 당당한 나라를 만들수 있을것'

예큰형

2020-11-12 18:49:42 수정일 : 2020-11-12 19:00:38 121.♡.105.19

 

제국주의는 세계를 지배하려는 집단 의지이자, 세계 최상의 것들을 자기 땅에 쌓아 두려는 집단 욕망이기도 합니다. 역사상의 제국들은 세계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했을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인재들을 자기 땅에 불러들였고, 그들 사이의 지식 교류를 매개했으며, 그로써 세계 최고 수준의 지식과 문화를 생산하고 표준화하여 돌려줬습니다. 그래서 제국은 패권국인 동시에 모범국이어야 했습니다. 제국은 세계의 ‘모범’ 자격을 지킴으로써 유지됐습니다.

한국 교과서에는 에이브러햄 링컨과 존 F.케네디의 연설문이 실려 있습니다. 한국 민주 헌정의 역사가 70년이 넘지만, 이승만 때 ‘우리의 맹세’나 박정희 때 ‘국민교육헌장’을 빼곤, 한국 대통령의 연설문이 교과서에 실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민주주의에 관해서도 미국은 한국의 모범이었습니다. 한국 학생들은 제 나라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사람은 몰라도 토머스 제퍼슨이나 벤저민 프랭클린은 압니다. 미국 존숭(尊崇) 의식을 뼈에 새긴 한국인 중에는 삼일절이나 광복절에조차 성조기를 들고 도심에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가 ‘미국 이익 우선주의’를 내걸고 당선된 것은, ‘팍스아메리카나’는 심각하게 동요한다는 증거였습니다. 역사상의 제국들은 언제나 밖에서 들어오는 문을 닫아거는 순간부터 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트럼프 집권 4년간, 미국 외부에서는 미국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커졌고, 미국 내부에서도 인종적 종교적 문화적 이념적 갈등이 심해졌습니다. 게다가 지금의 미국은 민주주의의 모범이라고도, 보건 위생 행정의 모범이라고도, 대중문화의 모범이라고도 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바이든이 당선된다고 해서 실추된 제국의 위상을 회복하긴 어려울 겁니다.

반면 지난 4년간 우리나라는 정치, 행정, 문화, 경제, 시민의식 등 각 방면에서 놀라운 성취를 이뤘습니다. BTS가 세계를 진동시키고, 기생충이 세계 유수 영화제 작품상을 휩쓸고, K-방역이 세계의 모범이 되는 일들이 동시에 일어난 것을 우연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비록 작지만, 이미 몇 분야에서는 ‘세계의 모범 사례’들을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세계사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단할 수는 없으나 우리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어리석은 선택만 하지 않는다면, 역사상 가장 당당한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기 위해서는, 범을 자기들 사유물로 취급하는 세력부터 척결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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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 잘 다루지는 않지만, 트럼프는 금년 대선에서 7천백만표를 획득해서 오바마의 2008, 2012년, 심지어 트럼프 자신의 2016년 기록마저 뛰어넘는 득표수를 이루었습니다. 그동안 트럼프의 막말에 진저리를 치던 조지 W. 부시 마저 '특별한 정치적 과업을 달성했다'고 평가했으니까요.

 

바이든과 고작 몇 백만표가 차이가 나는 그 득표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보기에 미국사회는 남북전쟁 이후 가장 심각하게 양극단으로 분열되있고,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던지 반대쪽에 투표한 사람들의 반발을 수용해내지 못한다면, 아마도 미국인들이 그렇게 '바나나 리퍼블릭'이라고 부르며 낄낄대며 조롱하던 시체가 가로수마냥 여기저기 뒹구는 남미의 거리를 미국에서 마주하게 될 날이 머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사회에서 미국이 가지는 가치와 상징은 특별합니다. 아니 특별'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그것을 원조맛집에서 찾을수 없다면 이제는 우리 자신이 스스로 등대가 되어 부러워마지 않았던 그 가치를 '우리 스스로' 이어받을 차례가 아닐까... 그리하여 교과서에 올리기에는 너무나 참담했고 피비린내 나던 우리의 근대사를, 앞으로의 역사로 씻어낼 차례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