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됐는데 남은 건 의지의 문제죠. 이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는 일본 제품을 대체할 테스트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6일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정부가 발표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장 똑같은 소재로 100%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어느 정도 손실을 각오하면 비슷한 소재를 충분히 구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대체품을 투입했을 때 수율(합격품 비율) 저하나 생산차질이 얼마나 발생할지가 관건"이라며 "이전만큼의 이익률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지 공장을 멈춰세워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 "日 독점하는 불화수소 불안, 1년 안에 해소" = 정부가 반도체 부문에서 1년 안에 공급을 안정시키겠다고 밝힌 핵심 품목은 고순도 불화수소를 포함한 5개다. 8개 품목은 5년 내 안정을 목표로 제시했다. 정부는 일본의 대응전략을 의식해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면서 구체적인 품목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일본이 1차 보복에서 수출규제를 단행한 고순도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를 비롯해 블랭크마스크, 실리콘웨이퍼 등 일본 의존도가 높은 품목이 대상으로 거론된다. 최첨단 반도체 식각(반도체 기판인 실리콘웨이퍼를 깎아내 칩을 만드는 공정)에 투입되는 순도 99.999% 이상의 불화수소는 일본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5월까지 국내에 수입된 불화수소 가운데 일본 비중이 43.9%에 그쳤지만 중국(46.3%), 대만(9.7%)에서 수입된 제품은 상대적으로 순도가 떨어져 세정 등에 쓰는 범용 소재다. 반도체 회로를 그리는 데 쓰이는 포토레지스트는 삼성전자가 차세대 육성 사업으로 키우는 10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 이하 EUV(극자외선) 파운드리 공정용 제품이 일본의 수출규제 대상에 들어 있다. EUV용 블랭크마스크는 EUV용 포토레지스트와 함께 일본업체가 100% 독점 생산하는 소재다. 이밖에 일본 정부가 7일 1100여개 전략물자에 대한 허가방식을 다시 정한 '포괄허가취급요령 개정고시'를 발표하는 만큼 대응 품목이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 국산화·공급선 다변화 '투트랙'…"충분히 가능" = 공급 안정화 방안은 공급선 다변화와 국산화의 투트랙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수백 가지에 달하는 반도체 소재를 모두 국산화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지만 공급단가 등을 감안할 때 사업상 수지타산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목표 기간을 1년과 5년으로 나눠 제시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일단 1년 내 안정화 품목은 국산화보다 수입선 다변화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업계에선 불화수소의 경우 중국 등과, 블랭크마스크의 경우 미국 코닝 등과 협력방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SK그룹 계열 반도체 소재업체인 SK머티리얼즈가 올해 말 고순도 불화수소 샘플 생산을 목표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100% 국산화를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수입선 다변화나 최종소재 생산공장 유치 등의 방법을 함께 모색할 경우 1년이라는 기간이 불가능한 계획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 정부-기업간 신뢰 필요해…"반신반의 걷어내야" = 국산화 성과를 위해선 동기부여와 대중소기업간 신뢰구축이 우선과제다. 정부가 연구비 지원과 세제 혜택 등을 내걸었지만 업계는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짙다. 하나의 소재를 개발하는 데 수년이 걸리고, 개발에 성공한다고 해도 대기업이 써줄지 모를 소재 개발에 매달릴 중소·중견기업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기업도 새로운 소재를 투입하려다 잘못되면 테스트 단계에서만 수백억원이 날아가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 정부가 지난달부터 국산화 등을 위한 R&D를 수행하는 기업에 최장 3개월까지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기로 했지만 이날까지 신청기업이 한 곳도 없는 것도 이런 실정 때문이다. 반도체 소재업계 인사는 "평상시라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겠지만 (일본의 보복이라는)경제 논리를 벗어난 비정상적인 사태가 벌어진 만큼 서로 힘을 모아야 할 때"라며 "기왕 하려면 제대로 해서 일본과의 관계가 개선된 뒤에도 다시는 주도권을 뺏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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