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김규환 입력 2019.05.10 06:31 수정 2019.05.10 10:41
[서울신문]중국 전기자동차 스타트업(창업 벤처)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전기차 시장의 급성장세를 바탕으로 전기차 스타트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데다 중국 정부의 보조금 삭감이 비야디(比亞迪·BYD) 등 전기차 메이저들과는 달리 이들 스타트업을 파산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의 전기차 열풍에 힘입어 스타트업 붐이 일어나면서 현재 중국에 등록된 전기차 제조업체는 2년 전보다 무려 3배나 증가한 486곳에 이른다. 전통 자동차 메이커뿐 아니라 글로벌 자동차업체, 첨단 기술을 장착한 정보기술(IT)업체 등이 너도나도 중국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2011년부터 전기차 시장에 진출한 업체들은 아이폰 조립 업체인 대만 훙하이정밀(鴻海精密)을 비롯해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그룹, 부동산 대기업인 헝다(恒大)그룹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전기차 스타트업에 투입된 금액은 180억 달러(약 21조 5000억원)에 이른다. 이중 ‘중국의 테슬라’로 불리는 웨이라이(蔚來)와 웨이마(威馬)자동차, 헝다그룹의 궈넝(國能) 등 10개 기업이 150억 8000만 달러를 독차지했다.
웨이라이는 검색엔진 바이두(百度)와 인터넷 서비스업체 텅쉰(騰訊) 등으로부터 10억 달러를 투자받아 2014년에 설립됐다. 웨이라이는 2020년까지 미국 내 자율주행 전기차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헝다그룹은 지난 2월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시에 20억 달러 규모를 투자해 헝다신넝위안(新能源·신에너지)자동차를 설립했다. 헝다그룹은 신넝위안자동차를 향후 5년 이내 세계에서 가장 큰 전기차 제조업체로 키운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중국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는 업체들이 급증하는 것에 비해 중국 내 전기차 수요는 미지근한 편이다. 중국 내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100만대를 넘어서며 130만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 전체 자동차 판매량인 2370만대의 4%에 불과하다.
블룸버그는 “전기차 판매량이 100만대를 돌파한 것은 중국 정부의 보조금 덕분”이라며 “중국의 전기차 시장은 크지만 자동차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만큼 거대하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중국의 전체 승용차 판매량은 미중 무역전쟁과 경기둔화의 여파로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전년보다 마이너스를 기록해 중국의 소비심리가 급속히 위축되고 있는 모양새다.
이 때문에 지난 3월 기준 중국 자동차 판매량은 10개월 연속 감소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500개에 가까운 전기차 업체들을 먹여 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전기차 업체들이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통상적으로 1년에 전기차를 몇만대 정도 생산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자동차 전문 컨설팅업체 롤렌드버거의 토마스 팡 애널리스트는 “시장 과열로 조만간 엄청난 파도가 중국 전기차 시장을 덮칠 것”이라며 “전기차 스타트업의 생사를 가를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마당에 웨이라이·웨이마·궈넝·샤오펑(小鵬)자동차 등 10대 전기차 메이커가 판매량의 80∼90%를 소화하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 476개 업체는 20만대에 불과한 생산량을 따먹기 위해 피 튀기는 경합을 벌이고 있다. 이런 정도의 생산 규모로는 이들 476개 메이커는 절대적으로 생산 라인을 풀가동할 수 없는 만큼 머지않아 도태되는 업체가 속출할 전망이다.
실제로 자금 조달 순위 1위에 오른 웨이라이가 인력 감축에 나섰다. 적자가 지속되면서 심각한 자금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웨이라이는 미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있는 북미 지역 본부 직원 70명을 해고하는 등 올 들어 전체 직원의 3%에 해당하는 300명을 감원했다고 중국 인터넷 경제매체 신랑재경(新浪財經)이 지난 6일 전했다.
파라디웨이라이(法拉第未來)는 ‘테슬라 대항마’로 불릴 정도였지만 헝다그룹의 20억 달러 자금 조달이 무산되자 지난해 10월 말 경영 위기에 몰렸다. 헝다그룹 측은 파라디가 자금을 낭비하면서 무리한 요구를 했다고 주장해 지원을 중단한 것이다. 이에 파라디는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20% 임금 삭감과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고 핵심 인력까지 이탈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파라디는 설립 이후 지금까지 단 한대의 전기차 양산에 나서지 못 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전기차 시장의 성장 잠재력은 풍부하지만 결국 경쟁력 있는 업체들만 살아남는 구조가 형성될 것이라는 얘기다.
여기에다 미국의 전기차 선도업체인 테슬라와 독일 폭스바겐 등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중국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는 것도 악재다. 테슬라는 올해 모델 시리즈를 중국 시장에 투입한 데 이어 올 연말에는 상하이에 건설중인 전기차 전용 배터리 공장 ‘기가팩토리3’이 양산에 들어가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중국 공업신식(정보)화부에 따르면 테슬라는 지난해 중국 현지에 1만 4467대의 전기차를 판매했다. 폭스바겐은 전기차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ID’ 시리즈를 선보였다. 미 포드자동차는 중국에서 향후 3년간 출시한 30개 이상의 모델 가운데 3분의1은 전기차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짐 해켓 포드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은 세계 스마트 차량 시장을 이끌고 있고 이는 포드 비전의 핵심 부분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미국·이탈리아 합작 자동차업체 피아트크라이슬러(FAC)를 포함해 도요타와 혼다, 미쓰비시 등 일본 메이커 등 4개사는 중국 광저우자동차그룹(GAC)과 기본적으로 동일한 EV를 판매함으로써 중국 시장에 진출할 방침이다.
중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삭감은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은 스타트업에는 치명상을 입힌다. 중국 정부는 올해 6월부터 전기차 보조금을 기존의 6만 6000위안(약 1150만원)에서 2만 7500위안으로 58%나 크게 낮추기로 결정했다. 중앙정부보다 최대 50% 많은 지방정부 보조금은 더 많이 축소된다.
보조금 삭감을 단계적으로 추진해 2020년에는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을 완전히 없앤다는 게 중국 정부의 방침이다. 저우레이 도쿄 소재 딜로이트토마츠컨설팅 컨설턴트는 “중국 정부의 보조금 조정으로 아직 기술이 덜 발달한 전기차 스타트업이 사라질 것”이라며 “전기차 스타트업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추이둥수(崔東樹) 중국전국자동차승객협회(CPCA) 사무총장도 “중국 내 전기차 시장에는 여전히 공간이 많이 남아 있지만 경쟁력을 갖춘 강자들만의 리그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전기차 시장이 그동안 정부 보조금으로 덕분에 급성장을 맞이해 왔던 점을 감안하면, 전기차 제조업체들은 정부의 보조금 삭감계획에 직격탄을 맞게 되는 셈이다.
특히 전기차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대부분이 자동차전문가가 아닌 정보기술(IT) 전문가 출신인 까닭에 이들이 자동차 제조에 들어가는 비용을 가늠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현상은 투자자 입장에서는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스타트업들은 추가 자금 확보에 대한 불확실성이란 리스크까지 떠안아야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리샹(李想) 처허자(車和家) CEO는 “스타트업들이 내년까지 자금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퇴출 위기를 각오해야 한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스타트업들이 하나 둘씩 문 닫게 되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심리가 더욱 위축될 것”이라며 “이미 자리잡은 업체들도 수익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인 점을 고려하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매력도는 더욱 떨어질 것이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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