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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무협소설 <천지>

● 머니인사이드, 웅달

by 21세기 나의조국 2019. 4. 2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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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불공평하다.

 

이 세상은 언제나 소수에 의해 움직인다.
권력을 가졌든, 재산을 가졌든지 간에 극히 적은 소수(小數)가 우매한 다수(多數)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다수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극히 적은 소수는 언제나 뒤에서 웃고 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일 뿐이다.
자신들의 생존(生存)과 지금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어떻게 하면 유지할 것인가이다.

 

그들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그들의 노력은 집요한 것이어서 그들의 얼굴은 세월이 흐르면서 바뀌어왔지만

그들이 누리고 있는 그 모든 것은 전혀 변하지 않은 채 세대를 이어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지 못한 특이한 능력이 있네.

바로 직감(直感)이지.

직감은 아무런 증거가 없어도 곧 바로 추론을 할 수 있게 하고,

상황에 따른 합리적인 근거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네

 

자신의 잘못을, 노기도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더구나 그 자리에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드물었다.

 

상대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자 그 역시 자신의 잘못을 명백히 인정했다

  

“피할 수 없다면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그 안에서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네.

 

돈의 위력이란 그 어느 것 보다 크다.

권력과 돈은 아주 다른 성질을 가진 것이지만 너무나 친근해 언제나 들러붙기 좋아한다.

권력이란 것이 돈에 기반을 두고 있는 반면에 돈은 권력과 밀착할 때 더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림보다 더 치열한 곳이 상계라 할 수 있다네.

무림에서는 상대에게 패했을 때 자신만 죽으면 되지.

하지만 상계에서는 패했을 때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는 거야.

빈털터리가 되어 스스로 죽지 않으면 남의 집 종이 되어야하는 거지. 가족 모두가 말이야.

아니면 빚 때문에 평생 쫓겨 다녀야 하거나."

 

돈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 번 느끼게 하고 있었다.

결국 불가능이란 말은 돈이 없는 자의 변명일 뿐이었다.

 

처음으로 설중행이 대답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긍정의 의미였다.
설중행은 거짓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거짓말에 서툴러 거짓말을 하기보다 입을 다무는 성격이었다.

 

피곤하다고 해서 쉽게 잠이 드는 것은 아니다. 

너무 피곤하면 오히려 잠들기 어렵다. 

더구나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 잠들기 어렵다.

 

왠지 두 놈이 친근하게 느껴지고 감싸주고 싶은 마음. 

조사를 하는 데 있어 사적인 감정은 버려야 할 첫 번째 원칙이었다.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는 

함부로 움직이는 것이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자신이 알고는 있지만 대답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듣는 이들을 더욱 궁금하게 만드는 일이다.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답할 수 없다는 말에서 벌써 해답은 나오고 있었다. 

 

어설픈 대답은 자네들이 흉수를 색출해 내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아 대답하지 않을 뿐이지. 

 

불확실한 정보는 오해를 가져오고 

그 오해는 때로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네.”

 

여자는 자신의 남자를 택할 때 자신의 성격에 비추어 놀랄 정도로 

다른 태도를 보이며 선택을 할 때가 많아요. 

상민민은 설소협을 네 번이나 주의 깊게 보았어요. 

설소협이 그걸 느끼지 못했을 뿐이죠. 

더구나 설소협을 보던 눈빛의 의미는 여자라면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었어요.”

 

우직했다. 친구들에게는 언제나 어떠한 것이든 양보했다. 

자신의 감정을 속이는 방법도 몰라서 친구들은 그의 표정만으로도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까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대개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기를 끔찍이 아낀다. 

또 사용한 다기는 찻잔을 비롯해 물로 깨끗하게 닦아내는 경우가 별로 없다. 

대개는 물로는 그저 찌꺼기를 헹구어 내는 정도고 

오히려 마른 천으로 정성스레 닦아내는 것이다.

 

특히 도자기로 만든 다기라면 더욱 그러하여 

그러다 보면 다기에 오랫동안 조금씩 다향이 배어들게 되고 

오래되어 색깔이 변한 것일수록 더욱 소중한 다기로 생각하는 것이다.

 

순간 상만천은 무어라 반박을 하려다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차피 부인한다 해서 믿어줄 리도 없을 터이고, 

더구나 변명을 하다 보면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유능한 상인은 폭리를 취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손해 보는 거래는 일방이 부득이한 상황에 처하거나 

급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래란 서로 유리하다고 생각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서로 이득이 있다고 생각할 때 거래를 하는 것이다.

 

조금씩... 그리고 되도록 천천히 씹는 버릇이 생겼다. 

아무리 부드러운 음식도 천천히 오래 씹어야 속이 편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한 거친 음식보다 부드러운 음식일수록 소화하기 어렵다는 사실도 깨달았지."

 

"돌아갈 곳이 없는 아이가 버림을 받았을 때 

갈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내 편이 아니라면 적이라는 생각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오. 

자신보다 똑똑한 사람이나 의견을 인정 못하고 

언제나 경쟁상대로만 인식하는 그 버릇에서부터 비롯되겠지만 말이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흉허물은 되도록 덮어주는 것이 친구의 도리다.

결국 그저 말이 나가지 않도록 하고 모른 척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 결론을 내렸지."
소문은 안으로 끌어안고 있는 것이 최상이다.

 

아무리 만인에게 존경받을 만한 덕망과 지식을 갖춘 인물이라도 

한순간 미망(迷妄)에 빠지면 올바른 판단과 선택을 하기 어렵다.

 

특히 권력과 부를 추구하는 자들은, 

그리고 그 맛에 중독되어 버린 자들은 그래서 믿을 것이 못된다.

 

젊다는 것은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충동에 치우쳐 성급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단점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휴우… 물이 고이면 썩는다고 본회는 그동안 너무나 안정적이었소. 

인간이란 존재는 수시로 적을 만들어 싸우려는 이상한 버릇을 가지고 있어 

평화로움에 대해 금방 권태를 느끼곤 하오.

 

자신의 의견을 내세워 다툼을 하지 않고 

누군가의 의견에 동조해 이득을 취해왔던 것이다. 

그것이 그가 적을 만들지 않는 방법이었고, 

거래를 본업으로 하는 상인이 취하는 적합한 방법이었다.

 

자네는 욕심이 많지. 아니 욕심이라기보다는 

언제나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정열과 패기를 가지고 있지. 

자네의 강인한 의지와 인내심은 언제나 나를 감탄하게 만드네."

 

 동료 또는 친구 간의 대화에서 가장 기분 나쁜 것이

 '나는 내 식대로 하겠다. 싫으면 마쇼'라는 식의 

고집으로 인한 대화의 단절이다. 

 

근거나 논리와는 거리가 먼 이런 식의 무모한 고집과 결정은 

가끔 주위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비밀이나 치부가 드러날 때 

그것을 가만히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역정을 내는 묘한 버릇을 가진 동물이다.

 

위험이 닥치면 동물적인 본능이 시키는 대로 가만있는 것이 좋다.

위험이란 것은 몸부림칠수록 빠져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신은 불행을 안고 사는 사람이에요. 

그 불행으로부터 자꾸 피하거나 도망치려고 하면 

죽을 때까지 그 불행을 안고 살아야 할지 몰라요. 

당신이 그 불행을 떨쳐버릴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죠."

 

당신의 불행은 당신이 만들지는 않았지만 

바로 당신의 그 어리석음 때문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당신은 당신을 직시하고 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예요."

 

여자는 어리석게도 첫 정을 준 사내를 언제나 그리워하죠.

그리고 자꾸 그 사내의 형상을 자신이 만들어 가는 바보죠.

그 사내의 본래 모습과는 다르게

언제나 자신만의 사내모습을 만들고 그리워하는 거예요."

여자는 그렇다.

본래의 그가 어찌되었든 여자는 그리워하는 사내를 자신의 상상만으로

그리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 사내에게 완전히 버림받을 때까지 말이다.

 

저렇게 좋아하는 단순한 친구가 부럽기도 했다. 

어차피 어떻게 살든 한 평생인데 

저렇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았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은 지식이나 능력보다는 삶에 대한 가치관이 더 중요했다. 

위기가 닥쳤을 때 그것에 대해 불평을 하거나 원망을 한다면 그는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다. 

 

허나 그 위기를 정확히 파악하고 올바르게 대처한다면 

오히려 뜻밖의 기회가 될 수 있고, 최소한 그 위기에 피동적으로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닌 

능동적으로 상황을 변화시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외모나 풍기는 기품, 목소리 등으로 상대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외모나 기품으로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외모나 기품은 첫인상을 좌우하기도 하지만 상대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데 

아주 결정적인 무기도 되는 것이다.

 

병법에 있어 최선책은 자신이 나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그것을 최대한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내 손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으로 상대의 전력을 약화시키는 방법은 

주 간단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왕후장상(王侯將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라온 환경은 사람의 본성이나 외모마저도 바뀌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외모로는 전혀 파악할 수 없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 자라면서 자신도 모르게 가지게 되는 기질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짠 완벽한 계획이라도 

그 계획대로 완벽하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인간에게는 언제나 계산할 수 없는 변수(變數)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인간은 때때로 감정에 휩쓸리거나 돌발적인 행동을 저지르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계획에서 틈이 벌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다만 벌어지기 시작한 틈을 깨달았다면 어떻게 메우느냐 하는 문제보다 

그 벌어진 틈을 어떻게 유리하게 이용하느냐하는 것이 현명한 자가 택할 행동이었다.

 

대화가 아니었다. 대화란 주고받는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이어 나갔다.

 

운중의 성격은 매우 강한 것 같으면서도 매우 여린 구석이 있다. 

차갑고 냉정한 듯 하지만 누구보다 친구를 위하고 참아주는 너그러움도 있다. 

결정을 하면 무섭게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있는가 하면 

결정하기 위해 머뭇거리는 성격도 가지고 있다.

 

지금 나는 아무도 도와줄 수 없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나는 그저 용인하고 있을 것이네. 

누구를 돕지도, 말리지도 않을 것이고 또한 간섭하지도 않을 것이네. 

그저 지켜볼 뿐이지."

 

"천지(天地)는 누구의 독점물이 아니네. 모든 사람의 것이지."

부대끼고 살아가는, 천지간 존재하는 모든 사람(人)의 것이고, 

또한 그 안에서 인간들 간 어떠한 갈등과 분쟁이 있더라도 

이 세상은 언제나 순리대로 가는 법이다.

 

승부란 이겨야 하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승자가 되고 볼일이다. 

승자는 모든 것을 얻고 패자는 모든 것을 잃는다.

 

여자는 믿을 것이 못 된다. 

여자란 때로 자신의 목숨보다 사랑에 목을 매달기 때문이다. 

여자의 입이란 비밀을 가슴에 담고 있지 않는다. 

특히 남의 말이라면 더욱 그렇다.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단지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역지사지란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가 처한 상황에서, 

그리고 상대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감정까지도 이해할 때 

완전한 역지사지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란 때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네. 

특히 자신과 별 관계없는 사람에게 말이지.

 

태어나는 그 순간 삶이란 그저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 가야하는 숙명적인 삶이다. 

주어진 삶 속에서 희노애락을 느끼며 자신과 똑같이 주어진 삶을 사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다만 주어졌다고 내팽개치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삶이기에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삶이다.

‘자아존재’의 의미는 주어진 삶 속에서 자신이 찾는 것이다.

 

자네는 소문 중에서 사실로 확인된 것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아마 서호에 돌을 던져 잉어를 잡을 확률만큼 될까?”

 

세상은 간혹 불가능하다고 보이는 승부도 의외의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서열은 객관적인 예측을 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하지만 아무리 적은 부분이라도 

그 이면(裏面)이 존재하고, 가끔 그것이 괴물처럼 고개를 드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 느끼게 되고 때로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협상에 있어서 성공여부는 상대에게 믿음을 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추산관 태감은 확실히 놀라운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한 정보력이 있다는 의미도 되었지만 

또한 작금의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자신은 물론 용추 같은 사람들은 불확실한 변수를 극도로 싫어하는 버릇이 있다. 

불확실한 변수는 아주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전체의 일을 망가뜨릴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욕심은 화를 부른다. 항상 가진 것보다 적게 쓰는 습관을 배우도록 하거라."

“너희들은 모두 꿈을 가지고 있겠지?”

“그 꿈을 이루고 난 뒤에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세상일이란 자신의 관점에서 옳다고 여기는 것도 시기적으로... 

또는 다른 관점에서 옳지 않은 일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완벽한 자(尺)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부는 먼 곳을 보고 있었다. 

넓은 안목으로 인간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있었다.

 

인간이 주어진 삶에 대해서 불평하고, 자학하고…

부모나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것은 옳은 삶의 자세가 아니다. 

주어진 것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다.

 

사람의 욕심이란 이렇다. 

내실을 다지며 기회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 성급히 승부를 던진다. 

더욱 어리석은 것은 준비 안 된 성급한 승부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일이다. 

현명한아니 참을성이 깊은 자는 결코 성급한 승부에 모든 것을 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다.

 

삶이나 문파의 흥망성쇠는 언제나 원을 그리듯 돌고 돌기 마련이다.

한번의 결과가 영원한 결과가 될 수는 없다.
다만 준비하는 자가.... 철저하게 준비하는 자가 웃을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의 일에 있어서 절대적인 것은 없네. 

항상 자신이 옳다고 믿고, 자신의 눈으로 확인을 했다 해도 

종종 믿지 못할 일도 일어나는 법이지.”

 

사실 그렇다. 사람이 절대적이라 믿고 있는 일도 시간이 지나고 

또 다른 면을 알게 될 때에는 절대적이 되지 못한다. 

더 나아가 절대적인 확신은 종종 절대적인 불신으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권력의 정점에서 물러난 인물이 그 후로도 존경을 받는 일은 그리 흔치 않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물은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너를 위해 모든 죄악을 저지르면서도 자신을 합리화하는 사람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친구와의 의리나 신뢰 따윈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람이다.”

 

사람이란 뭔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거나, 

뭔가 얻고자 하는 욕심이 있을 때, 

그리고 그것을 혼자 힘으로 달성하거나 얻기 힘들 때 

비로소 타인과 협력하게 되는 것이다.

 

참는다는 것은 언제나 고통을 주지만 

참고난 후에는 자신이 목적한 바를 달성할 수 있다. 

침묵하는 것 역시 인내다.

 

나는 지금까지 이 운중보가 나를 가두어 두고 있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운중보를 떠나면 자유로워질 것이라 생각했어. 

하지만 나는 운중보가 아니라 바로 저 금조롱과 같은 곳에 갇혀 있었던 게야.”

 

스스로 가두어놓고 있던 운중의 마음이 열렸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제 운중이 침묵으로 일관하지 않을 것이란 의미였다

 

살아야 할 이유를 잃어버린 인간이 선택할 길은 오직 하나뿐이라네. 

나는 지금껏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았지만 그만큼 고통도 컸다네. 

또한 앞으로 더 산다 해도 그리 신날 일도 없을 것 같으이….” 

 

끝까지 참는 자가 모든 것을 얻는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

 

무릇 인생에서 불운이란 그냥 한 번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네. 

불운은 겹쳐서 오는 것이지. 더 불행한 것은 처음 닥친 불운 탓에 스스로 

또 다른 불운을 자초하는 걸세. 그래서 더욱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지

 

인간에게는 만용과 오기, 그리고 독선이 있어 

자신의 불운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단 말이네.”

 

현명한 사람은 자신에게 닥친 불운이나 불행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이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만회하려 하다가 

더 큰 불행에 빠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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