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영국의 무역 협상 결렬과 그 의미
앞서 중국의 무역부 인사가 영국과의 무역 회담과 필립 해먼드 영국 재무 장관의 중국 방문을 잇달아 취소시켰습니다. 이는 2021년으로 예정된 영국 해군의 '남중국해 순찰 작전'에 대한 항의입니다.
(퀸 엘리자베스급 항모 전단 그래픽)
영국과 중국의 마찰을 두고 다양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중국에 비해 확연히 약한 영국이 너무 무리해서 국제 경찰 노릇을 하고 있다고 평합니다. 또 누군가는 리버럴 질서를 위해 영국이 나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영국의 남중국해 순찰 활동은 국제 경찰 활동도, 리버럴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고귀한 희생도 아닙니다. 영국의 순찰 작전은 순전히 영국의 국익을 위해 이루어지는 활동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영국의 순찰 작전은 남중국해와 그 부근의 태평양 권역에서 영국의 영향력을 형성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이 이야기에 들어가기 앞서 최근 홍콩 언론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흥미로운 기고를 실었습니다. 아시아의 금융 전문 기자가 쓴 글로, 이 기자는 "영국이 새로운 홍콩이 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추구하는 경제 모델로 아시아 국가들이 자주 거론되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싱가포르이지요. 실제로 영국 제러미 헌트 외무 장관이 직접 싱가포르를 방문하여 노하우를 배우길 원한다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기자는 영국이 나아가는 방향은 싱가포르보다는 홍콩에 가깝다고 분석했습니다. 그 예로 그는 런던이 다른 금융 허브들을 제치고 위안화 클리어링 서비스에서 앞서 나가고 있음을 밝힙니다. 이는 저번에 파이낸셜 타임스에서도 보도됐던 내용으로, 영국 내 위안화 거래량은 하루 750억 달러 수준으로 파운드/유로의 거래량을 초과했습니다. 하지만 단순 환거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로 어떤 거래가 이루어지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판도가 드러납니다. 바로 런던은 현재 홍콩과 함께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대한 채권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는 겁니다.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단순히 인프라 구축 사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숙원 그 자체입니다. 이데올로기라고 봐도 좋을 겁니다. 현 상황에서 일대일로가 성공적이냐, 혹은 실질적 수익성이 있느냐는 문제는 크게 의미 없습니다. 중국 엘리트들은 아시아 세계를 자신들의 광역 경제권으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중국 정부는 총력을 다해 국영 은행들을 동원해 국채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 경제는 점차 활력을 잃어 가고 있으며, 중국 기업과 은행들도 배드 론(악성 대출)에 노출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이 지금의 슬럼프를 딛고 보다 발전된 경제 구조를 가지려면 더욱 효율적인 금융 시장을 갖추어야 합니다. 따라서 중국은 국제 채권 시장으로 개방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채권 시장에서 정말로 진지한 두 플레이어는 바로 런던과 홍콩(HSBC를 통해)입니다. 싱가포르는 이 분야에서는 규모가 작고, 유럽 대륙은 언급할 필요도 없으며, 미국은 중국과 패권 경쟁 중이기 때문에 중국을 고객으로 삼기 힘듭니다. 그래서 남은 플레이어는 자연스레 런던과 홍콩이 되는 것입니다.
일본 아베 총리도 이번에 시진핑을 독대하며 일대일로의 거대한 채권 시장을 가져오려고 했으나, 현재 그 시도는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이 선진국(영국 등) 시장에 값싼 공산품을 제공했던 것처럼 영국 등 선진국은 중국에 전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중국은 다시 영국에 거대 엔지니어링 사업을 제공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일대일로의 양쪽 끝에 위치할 런던과 홍콩은 중국 기반 무역업의 허브로 기능할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협업/경쟁(두 개념이 반드시 충돌하는 건 아님)을 위해서 영국은 자신의 존재감을 중국의 앞마당에 드러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남중국해를 통과하는 무역로는 의외로 굉장히 연약하며, 해상 교역은 영국 같은 섬나라의 안보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에서, 미국은 중국이 '공정한 경쟁'을 하길 원한다고 거듭해서 말해 왔습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WTO 체제에서 중국 같은 반칙 플레이어는 대응하기 힘듭니다. 중국은 높은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외국 기업을 인수하고, R&D 센터를 중국으로 옮긴 뒤 본국에는 유령 기업이나 저렴한 제조업 기반만 남겨 놓습니다.
중국은 지적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사유 재산 개념도 불확실합니다. 중국에서는 무소불위의 힘을 보유한 정부가 개인을 쉽게 어그러뜨릴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여전히 공산주의 국가입니다. 만약 자본주의가 그러했듯이 공산주의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순수성을 버리고 진화할 수 있다면 이런 모습을 갖추었을 것입니다. 중국은 여전히 국가가 생산 수단을 독점하고, 그 생산 수단을 발전시키는 것(기술적 우월성)만이 미래를 거머쥐는 방법이라 믿습니다. 또한 중국은 주권을 가진 각 주체들이 국제적으로 단일한 시스템, 중국의 룰에 의해 세워진 국제 시스템, 즉 일대일로가 실현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프롤레타리아든 아니든) 독재 정부에 의한 생산 수단의 독점과 인터내쇼날, 이는 공산주의 철학의 핵심이자 변증법적 유물론적 세계를 현실에 구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하지만 중국이 지금보다 발전한 경제로 나아가려면, 중국은 반드시 개방되어야 합니다. 중국에서 시장의 역할이 강해지지 않으면 중국은 지금처럼 세계의 (비효율적인) 공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겁니다. 수익성 높은 금융업과 전문 서비스 산업(법률, 회계, 보험 등)은 여전히 홍콩과 영국인들의 수발을 받으면서요.
'Dawn of Eurasia'의 저자 Bruno macaes가 밝혔듯이, 중국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중국이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나라로 끝나는 겁니다. 홍콩, 싱가포르 모두 엄청난 부와 효율적인 첨단 경제를 자랑하는 곳이지만, 홍콩도 싱가포르도 세계 경제 시스템의 중심은 아닙니다. 오히려 세계 자유 무역의 거대한 파도를 타고 솟구쳐 오른 작은 섬에 가깝지요.
중국인들이 말하는 '경제의 중심'이란, 중국이 서구가 주도하는 시장 경제 체제의 일부가 되는 것이 아닌, 중국 자체가 새로운 세계 경제 체제의 중심이자 롤모델이 되는 겁니다. 마치 과거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 기구가 러시아라는 거대한 중앙 시스템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체제를 구상했듯이요.
이러한 중국의 목표는 역설적이게도, 중국의 산업을 고급화하려는 단기 목표와 정면에서부터 충돌합니다.
중국이 세계 경제의 진정한 엔진이 되어 미국을 대체하려면 중국은 개방 경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 말은 중국이 사유 재산을 폭넓게 인정하고 보다 투명한 법적 절차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말은 중국의 진짜 목표로부터 중국이 멀어짐을 의미합니다. 중국이 세계의 가치 있는 밸류 체인을 타고 승천하려면 중국은 세계 경제 체제의 일부가 되어야만 합니다.
미국/영국 같은 나라들도 중국을 완전히 억누르기보다는(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중국이라는 변칙적인 플레이어를 국제 질서 안에 눌러 놓는 것을 주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자국 경제에 해를 끼치는 관세 장벽을 불사하면서까지 중국 경제를 '개방'시키려는 것 또한 이런 점에서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일대일로가 성공하리라고 보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그랜드 플랜'도 제대로 성공하지 못합니다. 특히나 일대일로처럼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탈하려는 목적이 명확한 경우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대일로는 어떤 결과물을 가져오기는 할 겁니다. 중국은 여전히 강대국으로 남을 것이며,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아시아와 유럽과 아메리카는 영원히 변화할 겁니다.
다가오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싸움에서 누가 이기든, 두 나라는 변할 겁니다. 그리고 변화하는 세계에서는 세 개의 결과만이 존재합니다.
1) 변화를 거부하다 도태된다.
2)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변화에 휩쓸린다.
3) 혹은 변화에 적응하고 이득을 얻는다.
3번 옵션은 오로지 민첩하고 운이 좋은 소수의 국가만이 거머쥘 수 있겠지요.
지금 우리는 정말로 역동적이고 흥미로운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출처: 네이버 로코코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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